빚 갚는 기술 - 돈 한 푼 안 들이고 채권자 만족시키기 고전으로 오늘 읽기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선주 옮김 / 헤이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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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이 있다. 그것도 잔뜩. 내가 사는 집도 은행이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 그런 연유로 달마다 꼬박꼬박 지분 소유주에게 소정의 돈을 자동으로 보낸다.

'지금 이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독자들은 무엇보다도 이 책의 제목에 끌렸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뭐? 빚 갚는 기술이라고?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그런데 그 유명한 발자크가 썼다고?' (p. 153, 역자 후기)'

나도 이 책의 제목에 끌렸다. 빚을 짊어진 사람이라면 당연하지 혹하지 않았을까? 특히 역자의 말처럼 '돈 한 푼 안 들이고...'와 '발자크'에 꽂혀버렸다.


'삼촌은 아주 젊어서부터 정식 수입이 한 푼 없어도 엄청난 수입이 있는 사람처럼 살면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만한 편견, 철학적 어투를 빌리자면, 우리 사회의 어마어마한 도덕적 결함의 우위에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p. 13)'

소설 <빚 갚는 기술>의 주인공인 삼촌은 빚을 지고도 갚지 않으면서 60년을 모든 쾌락을 누리면서 살다간 비범한 인물이다. 삶의 마지막도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만찬을 하면서 마감했다. 삼촌은 자식도 없었고 아내라는 신분도 인정하지 않았다. 빚 때문에 여차하면 감옥 생뜨펠라지에 들어갈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빚 갚는 기술>은 '빚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실용적인 지침서'로서 삼촌이 완성한 '돈 한 푼 안 들이고 빚을 갚고 채권자를 만족시키는 기술'을 삼촌의 부탁을 받아 조카가 기술한 내용이다.

'갚을 빚이 많아질수록 신용은 늘어난다. 감당해야 할 채권자들이 적어질수록 돈 생길 곳은 줄어든다. (p. 35)'와 같은 빚에 대한 '삼촌의 명언'과 참신한 생각을 시작으로 '빚이란 무엇인지'를 26가지로 나누어 흥미롭게 해석한다.

'24. 사회적 빚: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빚. 이웃 사람과 놀음을 하면서 생겨나는 빚으로 그와 놀음을 계속하기 위해서 그에게 계속 빌리는 빚이다. (p. 51)'

이어서 감가상각, 채권자, 채무자, 신체 속박, 집행관에 대한 독특한 정의, 채무자에게 필요한 자질들, 채무자가 구비할 조건, 생활 방식 그리고 도덕성에 대해 사회 풍자를 곁들여 통찰력 있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편지 전달비, 마차비는 요즘의 내게는 사치일 뿐이다. 옷이 닳을까 봐 외출도 삼가고 있다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p. 181, 부록 2 _ 발자크가 동생 로르에게 보낸 편지)'

살아생전에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은 고흐와 달리 발자크는 살아있을 때 문학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작가였다.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처럼 젊은 시절인 20대부터 평생 빚을 지고 살았다.

'그런데 이사하는 집이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 있다. '정문은 당연히 있어야 하지만 여차할 경우 도망갈 수 있는 후문까지 겸비한 집' (p. 161)'

빚을 진 이유를 보들레르는 '기후도 안 맞는 파인애플이 주렁주렁 달린 정원, 철에 안 맞는 장식의 별장 등 발자크의 취향이 독창적이었고, 괴이한 발상으로 일상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발자크는 빚 때문에 글을 쓰는 '글 쓰는 노동자'였다.


빚은 잔뜩 짊어진 채무자로서 나는 <빚 갚는 기술>을 읽는 내내 빙긋 웃으며 유쾌함을 유지했다. 평생 채무자였던 발자크도 웃음기 띤 얼굴로 득의양양하게 소설을 쓰지 않았을까? 빚으로 눌린 마음이 정화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수도...

''얼씨구, 빚으로 한바탕 잘 놀았네, 그려.'
빚으로 신나게 사물놀이 한판 하고 난 느낌을 전하는 이 책으로 독자들도 발자크처럼 꿈틀대며 빚을, 돈을 낭만화할 수 있는 생활을 하기를…. 까짓것 그저 (p. 159)'

빚 있는 자들이여~~~ 꼭 읽어보시길, 읽는 동안만이라도 채무자로서는 절대 느끼지 못할 통쾌함을 원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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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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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면 떠오르는 인물, 아이작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이, 찰스 다윈,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모두 유럽인들이다. 그라만 콰시, 베로니카 로드리게스,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는? 딱 봐도 유럽인이 가질만한 이름이 아닌 이 생소한 인물들도 과학의 역사에 큰 역할을 했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 이유를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이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유럽만이 아닌 전 세계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과학 역사책에는 없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관을 바로잡아준다.


'이 책에서 나는 전 세계 역사의 핵심적인 순간에 맞춰 근대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지가 되던 15세기 무렵에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쭉 살필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16세기의 새로운 천문학에서 21세기의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의 주요 발전을 탐구할 것이다. (p. 14)'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관련 문헌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신대륙에 다다르면서 그곳에서 발견되는 표본들과 원주민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고대 문헌의 모순을 알게 됐다. 이렇듯 다른 문화와의 접촉은 천문학과 수학 연구에 혁명을 몰고 오기도 했다.

18세기 초 제국의 지지를 업고 탐험에 나선 항해는 물리학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안데스산맥 탐험은 지구의 모양에 대한 뉴턴의 주장을, 태평양 항해는 태양계의 절대적인 크기를 확인시키는 등 이론적 질문들을 측량과 같은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식물의 분류 체계도 칼 린네에게만 업적의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인물들이 이 작업에 기여했고, 식물학 지식을 얻으려고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을 폭력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러시아, 청 왕조 등에서 널리 논의됐던 개념이다. 다윈도 인정한 사실이다. 당시 다윈주의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진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개념 덕분이었다. 19세기 말 다윈 이론의 적용은 동식물을 넘어 국가에 적용되어 잔인한 정복과 침략의 근거로 쓰였다.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혁명과 반식민지 운동 등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은 과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함께 일하면서 발전을 이뤄낸 상대성과 약자 역학과 같은 현대 물리학이 냉전의 시대를 끝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과학자들이 각 국가별로 핵무기 프로그램에 동원되면서 과학은 성장했지만 국제 협력은 분쟁의 시대로 바뀌었다. 유전학도 국가의 관심으로 성과를 이루었지만 소수 민족 집단을 공격 목표로 삼는 국가 형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오늘날 과학 연구의 세 가지 주요 어젠다인 인공지능, 우주 탐사, 기후 과학을 다룬다. 과학의 미래를 위해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힘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그 시작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부터다. 매우 불평등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과학은 전 세계의 문화적 교류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 여기에 과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 널리 퍼진 왜곡된 역사는 과학에도 스며있었다.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사에서 배제되었던 과학자들을 들추어 내, 그동안 우리가 서양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도전하는 책이다. 이제까지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과학을 일궈냈듯 미래 과학의 답도 역시 협동이다. 그러니 당연히 차별과 혐오, 불평등은 미래 과학의 크나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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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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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작가의 연작 소설집 <땅거미가 질 때... >에 실린 네 편의 소설에 대한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느낌이다.
'보내주신 네 편의 작품을 읽고 이것들이 복수의 시간대와 장소들, 사건들, 사람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과 그렇게 남지는 않았지만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에 대한 묘사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설들이 제게 보여주는 것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을 '모빌리티'라는 키워드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p. 212, 대화, 안은별 )'

단편소설 네 편에 이어 정지돈 작가의 에세이,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글 한 편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땅거미가 질 때... >에 실렸다. 이 세 편의 글에서 유추해 보고 또 '대화'에서 안은별 문화연구자가 이미 밝혔듯, 네 편 소설은 '모빌리티'라는 개념으로 전개된 이야기들이다.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글도 '모빌리티'의 덧붙임이기도 하고.

이동 수단을 뜻하는 '모빌리티'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관계 맺는 방식으로 질문을 넓혀 다양한 생각거리를 끄집어낸다. 그러니까 멀고 가까움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통신이란 '모빌리티'를 수단으로 멀고 가까워지는 심리적 거리도 포함한다.


'모빌리티'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첫 번째로 떠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침 두 사람의 '대화'에서도 같은 주제가 등장한다. '소수자의 모빌리티'다

요즘 아들과 딸, 두 아이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해 운전을 가르치는 중이다. 이 아이들이 아빠의 심기를 살피며 열심히 운전 연습을 하는 이유는 이동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대중교통수단을 비교적 잘 갖춘 동네에 살면서도 불편한 모양이다.

'우리의 이동이 차별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건조 환경이 이미 대단히 차별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데, 건조 환경의 기획자들이 상정한 좁은 범위의 '정상적'인 신체들은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특권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차별적인 구조를 자연화하고, 그것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p. 195)'

도시가 나와 우리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성인을 타깃으로 아무 불편 없이 이동하도록 맞춤 설계됐는데도 말이다. 그 특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누린다. 당연한 이동 권리를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는 지하철 역에서 시위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특권을 당연하게 누리느라 무관심하기에 관심을 끌고자 '전장연'은 출근 시간을 택했다. 절박하다. 오히려 그들이 특권을 요구하는 냥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소수자는 모빌리티와 관계된 차별적 경험을 한다.

통신 수단도 심리적 거리를 좁힌 일종의 '모빌리티'다. 예전에는 가까운 이웃만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이제 시도 때도 없이 멀리 사는 사람들까지도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 나의 사생활로 들어온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정지돈의 연작소설 <땅거미가 질 때... >를 읽으며 생소한 '모빌리티'에 주목했고 이 키워드와 연관해서 '많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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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쪽으로 가다
오남수 지음 / 브.레드(b.read)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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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욕심을 부리는 장르 중에 하나가 여행책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많은데 시간과 비용 때문에 제한되니 책으로라도 여행하고 싶은 마음에서이리라. 특히 로드트립은 자동차가 됐든 바이크가 됐든 시간, 경제적 여유에 건강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하니 마음먹기가 더 어렵다. '40년간 자동차로 누빈 미국 서부 로드 트립'이란 부제의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뿌리칠 수 없었다.

'미국 서부는 최고의 자동차 여행지다. 도로가 한산해 마음껏 달릴 수 있고, 길가에 멈추고 싶은 풍광이 빼어난 장소가 속속 등장한다. (...) 게다가 유명한 옐로스톤과 요세미티, 글레이셔 국립공원 외에도 수많은 국립공원이 저마다 위용을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자연 이 선사하는 안식과 행복은 그 어떤 물질적 사치에 비할 바 아니다. (p. 11, 12)'

저자 오남수는 어린 시절 <김찬삼의 세계일주무전여행기>를 읽고 여행이란 로망을 간직했다. 미국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여행의 참맛을 알았고, 종이 지도를 펴든 채 자유로운 자동차 로드 트립을 시작한다. 저자가 실제 여행한 일정대로 친절한 Travel Note와 함께 미국 서부 7개 루트를 소개한다. 소개한 루트대로 일정을 짜 여행해도 될 정도다.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후 빡빡한 일정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 많은 인파에 질렸었다. 당연히 다시 여행을 한다면 복잡한 곳은 피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저자는 그런 곳을 중심으로 안내한다.

'시간이 남거나 일정이 틀어져 우연히 발견한 곳, 지도를 펼쳐놓고 다년간 여행을 다닌 나의 감으로 찾아낸 현지인도 모르는 곳도 아낌없이 소개했다. (p. 12)'

묵을 곳, 비용을 줄이는 법, 어느 때에 가면 좋을지,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곳 등 꿀팁을 아낌없이 알려준다.


'내 인생 마지막으로 긴 여행에 나선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도 나는 미국의 몬태나주와 북캘리포니아의 멘도시노, 인파는 많지만 추억이 많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p. 9)'

아쉽게 스친 도시 멘도시노, 저자에게 다시 가고 싶은 곳의 으뜸인 곳이다. 목조주택이 드문드문 보이고 해안선의 운치가 더해진 아담하고 예쁜 도시. 활발하던 벌목 산업이 금지되면서 유령도시가 되었다가 히피를 피해 온 예술가들이 정착해 도시 규모에 비해 갤러리가 많다. 커뮤니티가 단단해 이주 승인, 가게 오픈 등이 까다로워 인구가 늘지 않는 단점도 있지만 그 덕분에 시간을 잊은듯한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었다.


'오래전 영화지만 지금까지도 수려하고 목가적인 풍광으로 자주 회자되는 <흐르는 강물처럼>과 <가을의 전설>로 대표되는 것이 몬태나의 풍경이다. (p. 27)'

<흐르는 강물처럼>을 봤다면 영원히 잊지 못할 아버지와 두 아들이의 플라이낚시 장면을 촬영한 곳이 플랫헤드 호수다. 이렇듯 여행지마다 간직한 영화 또는 셀럽들의 이야기로 여행과 수다거리가 풍성해진다. 여행을 함께한 이들과 공유한 추억은 또 어떻고... 유대를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남자 넷은 화장실 표지 앞에서 한바탕 웃었다.
'Men to the Left.' because, 'Women are Always Right.'
"이들이라고 별수 있겠어." (p. 124)'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것을 즐기고 경험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여행만 한 것이 있을까? 짐을 꾸려 떠나보자.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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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비싼 재채기 Aachoo! - 비올리스트와 함께 떠나는 미술 인문 여행
최경희 지음 / 빛너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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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리스트 최경희 작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벨라스케스, 루벤스, 얀 브뤼헐은 본 순간 현기증을 느꼈고 클림트의 '키스'에서는 완전한 압도를 경험한다.

'하나의 작품에 들어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몰입해서 늦은 밤과 새벽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미술가 평전에 푹 빠졌다. 그렇게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지역의 신문사에 칼럼을 연재했던 기록이 차곡차곡 쌓였다. (p. 7)'

최경희의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재채기 Aachoo!>는 신문사에 연재했던 화가와 작품에 관한 글을 묶은 미술 인문학 책이다.


표지의 그림이자 책 제목에는 뱅크시의 그래피티, Aachoo!에 얽힌 이야기가 담겼다.

'영국의 브리스톨은 뱅크시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은 경사진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동네 골목길 곳곳의 벽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뱅크시의 Aachoo!는 월드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고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이 지역은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p. 29)'

매년 부활절에 달걀굴리기 대회가 열리는 브리스톨의 토터타운은 영국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이다. 뱅크시는 이 경사진 길의 구조를 활용하여 '재채기하는 할머니'를 건물에 그려 넣었다. 실감 나는 재채기에 마치 건물이 기울어진 듯 착각을 일으킨다. 뱅크시의 그림 덕분에 집값은 18배나 치솟았다. 뱅크시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뿐 아니라 취약계층인 노인을 그림에 등장시킴으로서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저자는 명화가 수난당하는 사건을 나열하며 명화가 우리에 미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그러고는 뱅크시, 달리, 뭉크, 클림트, 고흐, 고갱, 모네의 삶을 펼쳐낸다.

고흐는 다섯 명의 여인을 사랑한다. 이미 정혼한 남자가 있는 열아홉 살의 외제니를 시작으로 일곱 살 연상의 미망인 케이 보스 스트리커.

'고흐는 그녀(스트리거)가 있는 곳을 찾아가 활활 타오르는 램프 속에 그의 손을 집어넣었다.
"이 손이 타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p. 121)'

젊음도 아름다움도 없었던 가련한 매춘부 시엔, 고흐를 믿어주고 진심으로 사랑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한 마르고트 베게만, 고흐의 아이를 가졌지만 중절 수술하고 떠나버린 세가토리. 사랑하는 연인과의 행복한 삶을 잃어버린 고흐는 작품의 세계를 피난처로 삼고 그곳으로 더 파고든다.

작가들의 성장과정과 인간관계에서 얻은 가치가 어떻게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랑했던 연인들을 어떤 장면으로 자신들의 그림에 담았는지를 아는 것은 이들 일곱 명의 예술가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어지는 '밀레의 만종',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보티첼리의 '르네상스'의 숨겨진 스토리는 그림에 오랫동안 눈길을 멈추게 한다.

기품 있는 교양과 타고난 미모는 베아트리체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14세 때부터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했고, 견디다 못해 이를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아버지를 살해했고 22살의 나이에 베아트리체 첸치는 그녀의 아픔을 아는 수많을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자신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베아트리체의 마지막 모습을 귀도 레니는 그림으로 남겼다. 이 작품은 '스탕달 신드롬'을 탄생시킨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도 사실은 1662년 엘리자베타가 그린 그림이다. (...) 이 그림의 탄생 배경에는 그림 속 베아트리체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류 화가의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p. 209, 210)'

슬픈 사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그림의 원작자로 밝혀진 여류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이다. 엘리자베타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이용해 술을 마시면서 폭력을 일삼았는데, 엘리자베타와 그림 속의 베아트리체의 불행은 너무나 닮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양한 스토리로 작가에게 인간적으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고, 미술작품을 풍부한 감정으로 감상하는 방식이다. 사전 지식이 없어 지루할 뻔한 미술은 이제 재미있고 공감하는 세계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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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ola63 2023-03-2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서평 감사합니다. 아주 많은 힘이 나고 글을 쓴다는 것에 감사하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