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재채기 Aachoo! - 비올리스트와 함께 떠나는 미술 인문 여행
최경희 지음 / 빛너울 / 2023년 3월
평점 :
품절
비올리스트 최경희 작가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벨라스케스, 루벤스, 얀 브뤼헐은 본 순간 현기증을 느꼈고 클림트의 '키스'에서는 완전한 압도를 경험한다.
'하나의 작품에 들어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와 스토리텔링에 몰입해서 늦은 밤과 새벽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의 미술가 평전에 푹 빠졌다. 그렇게 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지역의 신문사에 칼럼을 연재했던 기록이 차곡차곡 쌓였다. (p. 7)'
최경희의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재채기 Aachoo!>는 신문사에 연재했던 화가와 작품에 관한 글을 묶은 미술 인문학 책이다.
표지의 그림이자 책 제목에는 뱅크시의 그래피티, Aachoo!에 얽힌 이야기가 담겼다.
'영국의 브리스톨은 뱅크시가 태어난 곳이다. 이곳은 경사진 골목길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동네 골목길 곳곳의 벽에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다. 뱅크시의 Aachoo!는 월드 뉴스를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고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이 지역은 유명 관광지로 거듭났다. (p. 29)'
매년 부활절에 달걀굴리기 대회가 열리는 브리스톨의 토터타운은 영국에서 가장 가파른 언덕이다. 뱅크시는 이 경사진 길의 구조를 활용하여 '재채기하는 할머니'를 건물에 그려 넣었다. 실감 나는 재채기에 마치 건물이 기울어진 듯 착각을 일으킨다. 뱅크시의 그림 덕분에 집값은 18배나 치솟았다. 뱅크시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뿐 아니라 취약계층인 노인을 그림에 등장시킴으로서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저자는 명화가 수난당하는 사건을 나열하며 명화가 우리에 미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그러고는 뱅크시, 달리, 뭉크, 클림트, 고흐, 고갱, 모네의 삶을 펼쳐낸다.
고흐는 다섯 명의 여인을 사랑한다. 이미 정혼한 남자가 있는 열아홉 살의 외제니를 시작으로 일곱 살 연상의 미망인 케이 보스 스트리커.
'고흐는 그녀(스트리거)가 있는 곳을 찾아가 활활 타오르는 램프 속에 그의 손을 집어넣었다.
"이 손이 타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p. 121)'
젊음도 아름다움도 없었던 가련한 매춘부 시엔, 고흐를 믿어주고 진심으로 사랑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한 마르고트 베게만, 고흐의 아이를 가졌지만 중절 수술하고 떠나버린 세가토리. 사랑하는 연인과의 행복한 삶을 잃어버린 고흐는 작품의 세계를 피난처로 삼고 그곳으로 더 파고든다.
작가들의 성장과정과 인간관계에서 얻은 가치가 어떻게 작품에 녹아들었는지, 그리고 그들이 사랑했던 연인들을 어떤 장면으로 자신들의 그림에 담았는지를 아는 것은 이들 일곱 명의 예술가들에게 다가가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어지는 '밀레의 만종',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보티첼리의 '르네상스'의 숨겨진 스토리는 그림에 오랫동안 눈길을 멈추게 한다.
기품 있는 교양과 타고난 미모는 베아트리체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였다. 14세 때부터 아버지한테 성폭행을 당했고, 견디다 못해 이를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소용없었다. 결국 아버지를 살해했고 22살의 나이에 베아트리체 첸치는 그녀의 아픔을 아는 수많을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대에서 이슬로 사라졌다.
자신이 처형당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모인 군중을 슬프고도 아름다운 눈빛으로 돌아보는 베아트리체의 마지막 모습을 귀도 레니는 그림으로 남겼다. 이 작품은 '스탕달 신드롬'을 탄생시킨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도 사실은 1662년 엘리자베타가 그린 그림이다. (...) 이 그림의 탄생 배경에는 그림 속 베아트리체처럼 불행한 삶을 살았던 여류 화가의 슬픈 사연이 숨어 있다. (p. 209, 210)'
슬픈 사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그림의 원작자로 밝혀진 여류 화가 엘리자베타 시라니이다. 엘리자베타의 아버지는 딸의 재능을 이용해 술을 마시면서 폭력을 일삼았는데, 엘리자베타와 그림 속의 베아트리체의 불행은 너무나 닮았다.
저자는 우리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예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다양한 스토리로 작가에게 인간적으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고, 미술작품을 풍부한 감정으로 감상하는 방식이다. 사전 지식이 없어 지루할 뻔한 미술은 이제 재미있고 공감하는 세계로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