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 정지돈 첫 번째 연작소설집
정지돈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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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작가의 연작 소설집 <땅거미가 질 때... >에 실린 네 편의 소설에 대한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느낌이다.
'보내주신 네 편의 작품을 읽고 이것들이 복수의 시간대와 장소들, 사건들, 사람들,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과 그렇게 남지는 않았지만 상상하거나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에 대한 묘사라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설들이 제게 보여주는 것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주인공(?)을 '모빌리티'라는 키워드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p. 212, 대화, 안은별 )'

단편소설 네 편에 이어 정지돈 작가의 에세이,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글 한 편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가 <땅거미가 질 때... >에 실렸다. 이 세 편의 글에서 유추해 보고 또 '대화'에서 안은별 문화연구자가 이미 밝혔듯, 네 편 소설은 '모빌리티'라는 개념으로 전개된 이야기들이다. 안은별 문화연구자의 글도 '모빌리티'의 덧붙임이기도 하고.

이동 수단을 뜻하는 '모빌리티'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관계 맺는 방식으로 질문을 넓혀 다양한 생각거리를 끄집어낸다. 그러니까 멀고 가까움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통신이란 '모빌리티'를 수단으로 멀고 가까워지는 심리적 거리도 포함한다.


'모빌리티'라는 키워드와 관련해 첫 번째로 떠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마침 두 사람의 '대화'에서도 같은 주제가 등장한다. '소수자의 모빌리티'다

요즘 아들과 딸, 두 아이가 운전면허 시험에 합격해 운전을 가르치는 중이다. 이 아이들이 아빠의 심기를 살피며 열심히 운전 연습을 하는 이유는 이동에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대중교통수단을 비교적 잘 갖춘 동네에 살면서도 불편한 모양이다.

'우리의 이동이 차별적으로 경험되는 것은 건조 환경이 이미 대단히 차별적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인데, 건조 환경의 기획자들이 상정한 좁은 범위의 '정상적'인 신체들은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 특권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 차별적인 구조를 자연화하고, 그것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데 가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p. 195)'

도시가 나와 우리 아이들처럼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성인을 타깃으로 아무 불편 없이 이동하도록 맞춤 설계됐는데도 말이다. 그 특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누린다. 당연한 이동 권리를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는 지하철 역에서 시위를 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특권을 당연하게 누리느라 무관심하기에 관심을 끌고자 '전장연'은 출근 시간을 택했다. 절박하다. 오히려 그들이 특권을 요구하는 냥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소수자는 모빌리티와 관계된 차별적 경험을 한다.

통신 수단도 심리적 거리를 좁힌 일종의 '모빌리티'다. 예전에는 가까운 이웃만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면, 이제 시도 때도 없이 멀리 사는 사람들까지도 불쑥불쑥 전화를 걸어 나의 사생활로 들어온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정지돈의 연작소설 <땅거미가 질 때... >를 읽으며 생소한 '모빌리티'에 주목했고 이 키워드와 연관해서 '많은 생각을 이어갈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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