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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반쪽사 - 과학은 어떻게 패권을 움직이고 불편한 역사를 만들었는가
제임스 포스켓 지음, 김아림 옮김 / 블랙피쉬 / 2023년 3월
평점 :
과학하면 떠오르는 인물, 아이작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이, 찰스 다윈, 알베르토 아인슈타인. 모두 유럽인들이다. 그라만 콰시, 베로니카 로드리게스, 사티엔드라 나트 보스는? 딱 봐도 유럽인이 가질만한 이름이 아닌 이 생소한 인물들도 과학의 역사에 큰 역할을 했지만 우리는 모른다. 그 이유를 제임스 포스켓의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이 유럽만의 특별한 문화적 산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은 유럽만이 아닌 전 세계에 걸친 여러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이 책은 과학 역사책에는 없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한 쪽으로 기울어진 세계관을 바로잡아준다.
'이 책에서 나는 전 세계 역사의 핵심적인 순간에 맞춰 근대과학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지가 되던 15세기 무렵에서 시작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쭉 살필 예정이다. 그 과정에서 16세기의 새로운 천문학에서 21세기의 유전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의 주요 발전을 탐구할 것이다. (p. 14)'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학자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관련 문헌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신대륙에 다다르면서 그곳에서 발견되는 표본들과 원주민의 과학적 지식을 통해 고대 문헌의 모순을 알게 됐다. 이렇듯 다른 문화와의 접촉은 천문학과 수학 연구에 혁명을 몰고 오기도 했다.
18세기 초 제국의 지지를 업고 탐험에 나선 항해는 물리학의 성장을 뒷받침했다. 안데스산맥 탐험은 지구의 모양에 대한 뉴턴의 주장을, 태평양 항해는 태양계의 절대적인 크기를 확인시키는 등 이론적 질문들을 측량과 같은 실용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 식물의 분류 체계도 칼 린네에게만 업적의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인물들이 이 작업에 기여했고, 식물학 지식을 얻으려고 노예가 된 아프리카인들을 폭력으로 위협하기도 했다.
찰스 다윈의 진화도 18세기 후반에 이미 러시아, 청 왕조 등에서 널리 논의됐던 개념이다. 다윈도 인정한 사실이다. 당시 다윈주의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진화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개념 덕분이었다. 19세기 말 다윈 이론의 적용은 동식물을 넘어 국가에 적용되어 잔인한 정복과 침략의 근거로 쓰였다.
20세기 전반에 일어난 혁명과 반식민지 운동 등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은 과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함께 일하면서 발전을 이뤄낸 상대성과 약자 역학과 같은 현대 물리학이 냉전의 시대를 끝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과학자들이 각 국가별로 핵무기 프로그램에 동원되면서 과학은 성장했지만 국제 협력은 분쟁의 시대로 바뀌었다. 유전학도 국가의 관심으로 성과를 이루었지만 소수 민족 집단을 공격 목표로 삼는 국가 형성의 도구가 돼버렸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오늘날 과학 연구의 세 가지 주요 어젠다인 인공지능, 우주 탐사, 기후 과학을 다룬다. 과학의 미래를 위해 세계화와 민족주의라는 두 힘 사이에서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할까? 그 시작은 역사를 바로잡는 일부터다. 매우 불평등한 관계였다 하더라도 과학은 전 세계의 문화적 교류의 결과라고 이해하는 것, 여기에 과학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 널리 퍼진 왜곡된 역사는 과학에도 스며있었다. <과학의 반쪽사>는 과학사에서 배제되었던 과학자들을 들추어 내, 그동안 우리가 서양 과학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도전하는 책이다. 이제까지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과학자들의 협력으로 과학을 일궈냈듯 미래 과학의 답도 역시 협동이다. 그러니 당연히 차별과 혐오, 불평등은 미래 과학의 크나큰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