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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소네트집
다이앤 수스 지음, 황유원 옮김 / 김영사 / 2026년 3월
평점 :
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
무언가에 의한 강력한 한 방을 맞은 느낌이다.
고전적인 소네트 형식을 빌려와 가장 날 것의 인생을 담아낸 파격적인 작품이다.
솔직히 시를 읽는 내내 앞으로 되돌아가 다시 읽었던 순간이 셀 수도 없이 많다.
" 도대체 뭐라는 거야?, 무슨 뜻이야?"
시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언어의 강력한 차용에 매번 놀랐다.
이 소네트집 읽기를 끝내고 '다이앤 수스'에 대한 검색을 여러 번 했다.
이 시집의 원제인 'frank'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시인의 친구이자 예술적 동료였던 '프랭크 스탠퍼드'에 대한 오마주이며,
다른 하나는 '솔직한, 숨김없는'이라는 형용사적 의미다.
한국어판 제목인 '한 손엔 똥을, 한 손엔 소원을'은 서양의 오래된 속담인
"Wish in one hand, shit in the other, and see which one fills up first"
에서 따왔다.
'아무리 간절한 소망이 있어도, 결국 손에 먼저 만져지는 것은 비루하고 구체적인 현실, 즉 고통, 배설물' 이라는 냉소적이면서도 지독하게 현실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소네트는 본래 엄격한 각운과 14행의 형식을 가진 귀족적이고 전통적인 시 형식이다. 수스는 이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안의 내용을 마약, 가난, 죽음, 성, 질병 등 가장 하류의 언어로 채워 넣었다.
이 시집은 시인 자신의 삶을 관통한다. 미국 미시간주의 가난한 노동자 계급에서 자란 유년 시절, 뉴욕에서의 방탕하고 위험했던 젊은 날, 에이즈로 죽어간 친구들, 그리고 홀로 아들을 키워낸 세월이 교차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시인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는다. 고통을 전시하기보다, 그 고통이 자신을 어떻게 빚어냈는지 솔직하게 고백한다.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프랭크'라는 존재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지향하는 '거침없는 예술적 태도' 그 자체를 상징한다.
시에 대한 평론에서 작가 '요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시라기보다는 어떤 짐승을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소네트라는 안전한 철창이 있지만 어쩐지 당장이라도 이 틀을 뜯어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쾌감으로, 나는 숨죽인다. 한없이 연약한 단어들로 만들어진 이 짐승의 문장에서 낮은 진동이 느껴진다. 으르르르."
이 문장을 읽으며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다이앤 수스의 시는 누군가의 멱살을 잡고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가는 야수 같다. 그 시작은 공포스럽고 과격하지만 그 진흙탕 위로 쏟아지는 햇살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14행이라는 절제된 형식은 자칫 감정 과잉으로 흐를 수 있는 고통의 서사를 팽팽하게 잡아주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그녀의 시를 읽으며 알 수 없는 결핍을 느꼈다. 시 전체를 관통하는 그 결핍의 근원은 어디서 온 것일까?
시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 결핍의 근원을 어렴풋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돈이 없고, 아버지가 없고, 안정적이 삶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결핍을 슬퍼하는 대신, 그 빈자리를 터질 듯한 은유와 리듬으로 채워나간다.
"한 손엔 소원을 빌지만, 결국 다른 손의 똥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비루한 생애를 향해 그녀는 "그래도 그것이 너의 삶"이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며 위로를 건넨다.
"소네트는, 가난처럼, 없이도 살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한 손에는 소원을 쥐고,
다른 손에는 똥을 쥐는 거다.
가난은, 소네트처럼, 훌륭한 선생님이다"
시를 읽으며 전통적인 시 형식이 현대적 소재와 만났을 때의 폭발력을 느낀다.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하는 강인한 문장들 속에서 스스로 해방감을 느끼며,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예술가들의 숙제를 한꺼번에 풀어내 버리는 폭발력을 감지한다.
가장 낮은 곳의 언어로 쌓아 올린 수스의 시에서 가장 높은 곳의 예술적 성취를 마주하게 된다.
언어가 문장이 되어 강력하게 피어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