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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샤넬 - 코코 샤넬 전기의 결정판
앙리 지델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23년 4월
평점 :
장돌뱅이인 알베르 샤넬은 아내가 죽자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세 딸아이를 작은 마을 오바진의 고아원에 내버렸다.
'그리고 그 딸들은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못한다……. 딸들의 이름은 열세 살의 쥘리아, 열두 살의 가브리엘과 여덟 살의 앙투아네트이다. 가브리엘, 20년 후에 전 세계인은 바로 이 소녀를 코코 샤넬이란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 (p. 8)'
전기 작가 앙리 지델은 철저한 조사와 연구 그리고 곁에서 가브리엘을 지켜본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코코 샤넬의 파란만장한 삶을 꾸밈없이 재창조해냈다.
친구인 프랑스 시인 장 콕토가 본 코코 샤넬은...
'... 매력적이면서 호감을 주고 인간적인가 하면 혐오감을 주기도 하며 때론 너무 지나쳐 보이기도 하는 여성, 분노, 짓궂은 말, 창작력, 변덕스러움, 극단적 성격, 친절함, 유머, 관대함 등이 샤넬이라는 독특한 인물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p. 260)'
가브리엘은 디아길레프 니진스키, 보리스 코치노, 세르게이 리파르, 스트라빈스키,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콕토, 라디게, 막스 자코브, 사티, 오릭, 미요, 풀랑크, 라빌 등 동시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사귀었고 남모르게 후원했다. 끝까지 독신으로 살았지만 샤넬 곁에 남자가 없었던 건 아니었다.
가브리엘에게 항상 용기를 주며 후원했던 에티엔 발장. 캉봉거리에 '샤넬 패션'이라는 간판을 걸도록 은행에 신용대출을 주선한 영국인 정치가이자 사업가인 아서 카펠, 가브리엘은 평생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여겼다.
'"그를 만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었어. 나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는 존재를 만났던 거지. (…) 그는 타인의 신세만 지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삶인지를 깨우쳐주었어." (p. 116)'
어린 시절의 불행이 비슷해 마음이 끌린 러시아의 드미트리 대공. 새카만 머리털에 거무죽죽한 안색, 남부 지방의 아주 강한 억양을 가진 땅딸막한 남자, 내면의 열정으로 빛나는 짙은 눈빛이 다가서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 가브리엘은 르베르디가 다른 시인에 비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을 원통해 했고, 죽을 때까지 그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은밀한 만남을 가졌다.
지적인 말 한마디, 재치가 넘치는 표현, 정확한 판단력을 갖춘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공작. 바람둥이에 양심의 가책 따위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하지만 예술가였기에 사랑한 광고 디자이너 폴 이리브까지... 가브리엘이 사랑을 나누었던 남자들이었다.
'그 순간, 빨간색 실크 태피터로 만든 커다란 커튼을 발견한 샤넬을 천을 이리저리 만져보다가 커튼을 떼어달라고 했다.
"이걸로 만들면 아주 잘 어울릴 거야." 어리둥절해 있는 모녀 앞에서 그녀가 말했다.
몇 시간 후, 가브리엘은 무도회 드레스를 즉석에서 만들었는데,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마리 엘렌의 친구들이 모두 누가 만든 거냐고 물을 정도였다. (p. 442, 443)'
고아원에 버려졌던 시절과 뮤직홀의 마스코트 가수였던 이전의 삶이 싫어서 가브리엘은 자신의 삶을 재창조했고, '일하는 여성을 위한 옷'이란 패션 철학으로 여성의 삶도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만들었다.
꼭대기가 원통형이고 작은 챙이 눈 위까지 내려와 삐딱하게 눈썹 부위까지 푹 눌러쓰는 종 모양의 모자를 만들었고, 엉덩이 부분을 낙낙하게 만들려고 옆선에 주름을 넣어 다소 눈에 띄게 만든 '샤넬라인' 원피스도 만들었다. 여성의 생활환경을 충분히 고려한 샤넬의 구상은 몸에 꼭 맞는 옷이 아니라 여성의 결점을 가려주는 헐렁한 옷이었다.
가브리엘은 진짜 보석과 인조 보석을 섞어 달고 다녔다. 가브리엘에게 장신구는 단순한 옷과 조화를 이루어 분위기를 살려주는 도구일 뿐이었다.
기다란 리본에 가위를 매달아 목에 건 샤넬은 자신이 '지나친 치장'이라며 혐오스러워했던 쓸데없는 장식을 가위로 제거해버렸으며, 레이스, 코르셋, 속옷, 심을 넣어서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입고 땀을 흘리는 여성에게 새로운 여성의 실루엣을 만들어 육체의 자유를 주었다.
가브리엘은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래서 휴식은 없었다. 사업가로서 철칙은 '언제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패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가브리엘이 이뤄낸 혁신은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상과 일에 대한 열정이 그녀만의 디자인 감각과 만난 결과였다.
허무에 빠져있기보다는 실패하는 편이 낫다고 여긴 가브리엘은 '메종 샤넬'을 닫은지 15년이 지난 일흔한 살에 다시 열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녀의 나이가 여든일곱 살이 된...
'1971년 1월 11일 일요일, 리츠 호텔의 방에서 죽음이 그녀를 엄습했다. 일요일, 하필이면 오로지 일이 살아가는 이유였던 여자가 가장 싫어하는 날이었다. (...)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죽는 게 이런 거구나." 깨달음의 순간에 힘겹게 하는 말, 위 대한 시대의 로마인들이 했던 그 말....... (p. 478, 479)'
신혼여행을 떠나며 공항 면세점에서 아내에게 결혼 후 처음으로 건넨 선물이 샤넬 향수였다. 만난 지 4개월 만에 결혼했다.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직 모르는 나에게 이 단순한 육면체 모양의 유리병에 담김 금빛 액체는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C'라는 철자 두 개가 교차되어 있고 사각형의 새하얀 병에 검은색으로 CHANEL 이란 글자를 또렷이 새긴 단순함이 매력적인 샤넬 N°5를 아내는 좋아했다.
'가브리엘은 오바진 수녀원에 있을 때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미사 시간에 채색 유리창에서 두 개의 C를 보고는 공상에 잠기곤 했는데, 거기다 물랭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코코 Coco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우연까지 겹치지 않았던가. 따라서 두 개의 C를 운명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그녀로서는 향수의 앞날과 C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p. 225,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