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 - 개인과 조직을 이끄는 균형의 힘
김윤태 지음 / 성안당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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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각에서는 조선 왕조가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균형'이라는 힘이 매우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p. 5)'

리더십 전문가 김윤태의 <조선 왕, 그리고 리더십>은 500년 역사의 조선 왕 스물일곱 명 중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선조, 광해군, 영조, 정조 이상 아홉 명의 왕을 선택해, 시대적으로 다른 환경과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성과를 얻어냈는지, 한 시대를 이끈 왕들의 리더십을 관찰한 책이다.


출중한 능력의 무장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는 대업을 이루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선택 상황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냉정했어야 했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십이 부족했다.

태종은 아버지 이성계에게 부족했던 강인한 책임감과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능력을 갖췄다. 그래서인지 조선 왕조를 안정시키려 후계를 준비했고, 후계자에게 위협이 될만한 걸림돌을 제거하는 악역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조선의 왕 중 가장 사랑받는 세종은 소통과 위임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신하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정책을 결정했고 실행 단계에서는 주저 없이 신하들을 믿고 맡겼다. 또한 천민일지라도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해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 대표적 인물이 조선의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관노 출신의 장영실이다.

권력에 눈이 멀어 피로 왕권을 찬탈한 세조, 명분과 정당성이 없어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집권 내내 정권에 대한 도전을 끊임없이 받았다. 어떤 리더라도 옳지 않은 수단과 방법은 결코 용납될 수 없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서열 3위였던 성종은 정치권력의 타협에 의해 임금이 됐지만 그 약점을 견제와 균형으로 극복했고, 신하들의 그 어떤 지나친 직언도 수용한 관대한 리더였다. 하지만 조화와 안정을 추구하다 보니 개혁적인 선택은 하지 못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보름 만에 한양을 버리고 몽진蒙塵을 떠난 선조는 무능한 군주로 각인되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세력이 없었던 선조는 붕당을 활용하여 왕권을 유지하는 뛰어난 정치 감각을 갖춘 정치꾼이었으며 이황, 이이, 이순신 등 인재를 알아보는 출중한 능력을 가진 왕이었다. 무능과 유능함의 경계에 있었다. 하지만 선조는 자기 확신이 부족해 이리저리 휘둘리며 인재를 인정하고 세워주는 포용력이 없는 리더로 한계를 드러냈다.

광해군은 명분이 아니라 실리를 취하는 변화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유연한 사고를 가진 현명한 리더였다. 하지만 서자라는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고 정치 집단과의 소통에 실패해 내치를 이루지 못하고 쫓겨났다. 뛰어났지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왕이었다.

'탕평, 균역, 준천'이라는 눈부신 정책을 펼친 영조는 백성들과 직접 소통하고,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 군주였다. 무수리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일했다. 사도세자를 죽게 한 실패한 아버지였지만 조선 후기의 르네상스는 영조로부터 시작됐다.

열한 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참혹한 죽음을 목격하는 인간적 슬픔을 가진 정조는 문학, 과학, 의학, 무예 등 다방면에 뛰어난 리더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가진 정조는 200년 전에 평등을 꿈꾸며 노비를 없애려 한 개혁가였다. 그렇지만 민중에 의한 바텀업이 아니라 왕이 추진한 탑다운 방식의 변화는 한 사람의 의지로는 이룰 수 없는 한계를 드러냈고 기득권의 반발도 넘어서지 못해 실패했다.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해 백성에게 다가간 군주 정조가 죽자 조선의 암흑기가 시작됐다.


'광해군의 의중은 명분이 아니라 조선을 위한 실리였다. 우방인 명나라는 달래고 후금은 자극하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전략으로 강대 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으려 한 약소국 군주의 노력이었다. (p. 256)'

주변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은 광해군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광해군이 펼친 실리외교를 지금 현실에선 찾기 어렵다.

'광해군이 신하들의 경고를 흘려들은 것은 한 여인 때문이었다. 광해군을 동궁 시절부터 모신 상궁 김개시(金介屎)였다. '똥 시(屎)' 자를 써 김개똥이라 부르던 천민 출신의 상궁이다. (...) 일개 상궁이 궁 안의 모든 일들에 관여했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진 조선판 비선 실세였다. (p. 260, 261)'

비선 실세가 국가를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우리는 이미 한 번 경험했다. 리더가 무능할 때, 다시 말해 리더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을 때 비선 실세가 등장하곤 한다. 비선 실세라는 소수에 의해 국가 경영이 결정될 때 위험한 이유는 한 사람이 모든 분야에 능통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국가 경영에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필요하다.


조선은 지배 계층으로 자리한 사대부들의 나라였다. 그들에겐 백성을 존경하거나 돌보는 리더십은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대한민국에 우리는 살고 있다. 더 이상 신분과 권위에 대한 존중을 큰 가치로 여기는 시대가 아니다.

아직도 왕인 양, 사대부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리더라면 곤란하다. 책임보다 권한에 집착하고 대중들의 지지와 신뢰를 잃는 리더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가 아니다. 헌신적인 리더, 다양성을 존중하고 포용력을 갖춘 리더... 그리고

'백성들과의 소통을 통해 정책을 수립하려 했던 세종과 영·정조의 애민을 본받아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가 리더가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국민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정치인이나 지도 층에게 박수를 보낼 일은 없을 것이다. (p. 357 에필로그)'

왕들의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아 시대적 환경과 상황에 맞는 리더십이 올바로 선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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