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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생활
모리스 메테를링크 지음, 김현영 옮김 / 이너북 / 2023년 7월
평점 :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에세이 <꿀벌의 생활>은 자연관찰문학으로 이 책을 읽는 매력은 꿀벌의 신비로운 세계를 바탕으로 저자가 펼치는 상상력과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운 문학적 재능으로 펼치는 묘사에 있다.
'여왕은 바짝바짝 속을 태우며 결행의 날과 시간을 선택한다. 그리고 출입구의 그늘에서, 거대한 감청색 항아리 같은 하늘의 끝에서 황홀한 아침이 혼례를 올릴 공간에 넘쳐나기를 기다린다. 이슬의 흔적이 나뭇잎과 꽃들을 추억으로 적실 때, 쇠약해져가는 여명의 마지막 서늘함이 서툰 전사의 팔에 안긴 발가벗은 처녀처럼 단념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저항하듯 낮 동안의 더위를 거스르고자 할 때, 근방에 남아 있는 아침에 핀 제비꽃의 향기가 더욱 강하게 느껴질 때, 여왕은 그런 때를 좋아한다. (p. 174)'
드디어 여왕이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왕은 날아올랐다가 돌아오기를 두세 번 반복하고는 화살처럼 감청색 하늘 꼭대기로 날아오르면 결혼 비행에 나선다.
'우리는 이 벌집을 통해 꿀벌들의 중요한 일상. 즉 분봉의 형성과 출발, 새로운 도시의 건설, 젊은 여왕벌의 탄생과 결투, 결혼비행, 수벌 학살, 동면 따위가 자연의 질서를 좇아 펼쳐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p. 18)'
지성知性의 측면에서 인간 다음으로 축복받은 지구상의 주민은 벌이라는 것이 저자의 상상력이다. 학자들 간에는 꿀벌의 지성을 놓고 왈가불가한 모양이다. 저자는 위의 글에 제시된 꿀벌들의 중요한 일상 모두를 꿀벌 지성의 근거로 내놓는다.
육각 구조의 튼튼한 건축물을 세우기도 하고, 심지어 한 번도 본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인간이 제공하는 것들을 세심하게 재료의 속성을 파악해 활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꿀을 얻기 위해 꿀벌들이 확고하다고 믿는 자연법칙을 끊임없이 흔들어놓는다. 꿀벌들은 이제까지 지켜온 법칙에 따라 위기를 지혜롭게 해결한다. 만약 누군가 우리 주변의 중력, 공간, 빛 혹은 죽음 따위의 법칙을 흔들어 댄다면 우리는 과연 꿀벌처럼 대응할 수 있을까?
인간은 자연의 법칙을 알고 이해하려 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에 지성으로 대응하겠다는 태도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을 때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기보다는 예외로 규정해 무지에서 빠져나간다. 꿀벌들은 다르다.
수벌 살육이라는 처참한 자연의 법칙을, 그 의도를 오인이나 모순으로 여겨 갈팡질팡하지 않는다. 자연의 두 가지 힘, 즉 생과 사를 다스려 자연의 질서를 회복해 나가는 자연을 믿는다. 자연을 상대로 우리의 지성을 증명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꿀벌은 하지 않는다.
꿀벌에게 미래는 신이다. 미래의 불안 때문에 신에게 의지하는 인간보다 꿀벌들의 신에 대한 열망이 훨씬 더 강하다. 섬기고 떠받드는 여왕마저도 미래라는 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자신의 사명에 게을리할 때 여왕을 향했던 애정은 분노와 증오로 바뀐다. 미래를 위해 꿀벌들은 행복과 권리를 포기하며 벌집에서의 삶을 공유하고 활용한다.
'자연에는 물질의 일부분을 더욱 좋은 상태로 향상시키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는, 물질의 표면에 처음에는 생명이라 불리고 다음에는 본능, 그다음에는 지성이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힘을 서서히 침투시키려는 의지, 미지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다그치는 모든 존재를 조직하고 활용하려는 의지가 존재한다. (p. 226)'
자연 앞에서 거만하면 안 된다. 꿀벌 세계를, 생활을 업신여겨서도 안된다. 그 세계를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수벌의 나태함과 일벌들의 불공평한 상황들을 내세워 비합리적이고 몰 지성하다고 결함을 지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원리를 따른다고 결론짓는다면? 인간들의 처지도 이에 못지않다.
'공동생활 전체의 유일한 근원인 땅을 전체 인구의 20, 30퍼센트의 인간들이 힘들게 경작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다른 10퍼센트는 실컷 놀면서, 전자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확물의 가장 좋은 부분을 먹어치운다. 나머지 사람들은 항상 굶주림에 시달리며 쉬지도 못하면서 아무런 보람도 없는 일에 정력을 소진한다. (pp. 245, 246)'
메테를링크는 매일 벌집을 드나드는 양봉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에서 그가 풀어놓는 꿀벌의 일상은 생생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게다가 상상력에 더해진 문학적 표현은 이 글을 읽는 즐거움을 몇 배로 키워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