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오페라 - 아름다운 사랑과 전율의 배신, 운명적 서사 25편 방구석 시리즈 2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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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대, 스페인 세비야 인근 교도소 지하 깊숙한 곳에 혁명 주도자 '플로레스탄'이 갇혀있다. 왕당파 교도소장 '피차로'는 개인 감정 분풀이로 플로레스탄을 납치해 가둔 것이다. 플로레스탄의 아내 '레오노레'는 사랑하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피델리오'라고 이름을 바꾸고 남자인 척 신분을 감춰 복수를 꾀한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내 남편을, 남편을 내 가슴에...
... 내 가슴에 안을 수...
내 아내를, 내 아내를 내 가슴에 안을 수... (p. 28)'

오페라 <피델리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줄거리로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로 알려진 1805년도 작품이다 (베토벤이 오페라도 작곡했다니... 처음 알았다). 특정한 효과를 위해 트럼펫 연주자가 무대 뒤에서 따로 연주하는 '오프스테이지 트럼펫'이라는 유명한 기법이 자주 사용된 작품으로도 알려져 있다. 트럼펫 소리를 약하게 연주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신비롭거나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해 10월 문화콘텐츠 전문작가인 이서희의 '감동과 희열을 주는' 명작 뮤지컬 서른 편을 소개하는 <방구석 뮤지컬>을 읽었었다. 대표 넘버를 들으며 뮤지컬 작품 내용을 접하는 시간은 즐거움이었다. 뮤지컬에 이어 이서희 작가가 오페라 이야기를 정리해 내놓았다.

'이 책에는 각 작품의 줄거리와 각 곡의 가사, 인문학적 해석까지 덧붙여 25편의 명작 오페라를 실었습니다. 또한, <방구석 뮤지컬>처럼 QR코드를 삽입하여 대표곡을 듣고 즐길 수 있도록 구성하였습니다. (p. 6, 프롤로그)'

뮤지컬의 음악은 팝, 재즈 등 스타일이 다양한 반면, 오페라는 오페라 음악만을 사용한다.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와 대사를 하며 연기하지만 오페라는 대사가 없고 노래에 중점을 두고 연기한다. 뮤지컬은 원작이 소설이나 영화가 대부분이어서 조금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오페라는 다르다. 역사적인 주제나 다소 심오한 이야기를 다룬다.

이런 이유로 작품의 줄거리를 모르다면 뮤지컬 보다 오페라는 훨씬 지루하고 낯설다. 알려진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 어느 작품인지 정도는 알지만 작품 내용은 잘 모르는 게 대개의 경우다.


투란도트 공주는 어떤 남자도 자신을 소유하지 못하리라 맹세했다. 그녀와 결혼하려면 공주의 복수가 담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풀지 못한다면 죽음이 기다릴 뿐이다. 페르시아 왕자 사형 집행장에서 투란도트를 본 칼리프는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진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칼리프는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수수께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수수께끼를 푼 칼리프에게 투란도트는 계략을 꾸미지만 결국 둘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사랑하게 된다.

'허나 비밀은
밀봉되어 있어,
어느 누구도
내 이름을 알 수는 없다

그렇다, 그대의 입술 위에
내가 알려주리라 (p. 275)'

푸치니의 3대 명작 가운데 하나인 오페라 <투란도트>의 대략이다. 푸치니는 투란도트의 결말을 짓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 까닭에 제자 알피노가 스승을 위해 <투란도트>를 완성,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했다고 한다.

창피스럽게도 이렇게 널리 알려진 <투란도트>임에도 중국 공주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오페라였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일고 알게 됐다. 이뿐만일까? <방구석 오페라>에 소개된 스물다섯 편 명작의 제목은 익히 들어 익숙하지만 그 스토리는 생소하기 짝이 없다.


뮤지컬 넘버를 들으며 <방구석 뮤지컬>을 읽은 결과로 뮤지컬과 친해졌다면, 가사와 함께 QR코드로 오페라 대표곡을 들으며 <방구석 오페라>를 통해 역사나 인생의 역경을 표현하는 문학적 서사에 빠져드는 경험이 가능하다.

이서희 작가가 오페라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눈물을 흘리며 혼돈과 감동을 느꼈듯이, 한 권의 책이 우리에게도 작가와 똑같은 순간을 선사할지도 모른다.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우리에게 가이드가 되어 주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지금껏 경험해 온 사랑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겪게 될 사랑을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p. 315,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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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4 - 청룡을 타고 비상하는 2024를 기원하며!
김난도 외 지음 / 미래의창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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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토끼띠 해를 맞아 <트렌드 코리아 2023> 부제는' 토끼가 더 높이 뛴다. 도약하라!'라는 의미의 'RABBIT JUMP'였고, 2023년 트렌드를 아우르는 첫 키워드는 '평균실종'이었다. 양극화가 가속화되면서 사회의 전형성, 기준성이 사라져 상품, 서비스, 소비형태, 조직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평균을 가늠하기 어려워진 한 해였다.

시장의 양극화로 기업은 프리미엄층 또는 알뜰살뜰한 '체리슈머'형 소비자를 겨냥한 양자택일 전략을 추구했다. 자신을 실제보다 어리게 보이고자 하는 '네버랜드 신드롬'을 앓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저출산으로 중요한 아이가 돼버린 '알파세대'가 시장에 큰 영향력 행사했다.

뉴트로는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소비문화로 자리 잡았다. 변화를 겪은 노동시장 시스템으로 일터가 송두리째 달라지는 '오피스 빅뱅'이 일어났고, 리오프닝 이후 온라인 기반에 밀려났던 오프라인 공간이 가상공간과 연계하며 변신해 '공간력'이 강력해졌다.

회복된 대면으로 '인덱스 관계'가 다시 중요해졌으며, 취향에 맞는 한 분야를 파고드는 젊은 세대들의 '디깅모멘텀' 현상은 늘어났다.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 기업은 없던 수요를 창출하는 '뉴디멘디드 전략'을 앞다투어 선보였고, 데이터 혁신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가 처할 상황을 미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선제적 대응 기술'이 적극적으로 적용된 한 해였다.


2024년은 여러 용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용이며, 상서롭고, 가장 사랑받은 청룡의 해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근사치까지 작업을 완성해놓는다고 해도, 사람이 마무리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수준을 갖추기 어렵다. 이런 취지에서 용띠 해에 어울리는 이번 책의 부제를 화룡점정의 의미를 담은 'DRAGON EYES'로 정했다. (p. 8)'


2024년 전체를 묶는 첫 키워드는 'Don’t Waste a Single Second: Time-Efficient Society 분초사회'다. 소유에서 경험으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이동하면서 사람들의 시간관념이 달라졌음은 물론 사용 시간의 밀도 또한 매우 높아졌다. 하지만 분주함 속에서 사색을 위한 여백의 시간은 더 소중하게 될 것이다.

시간의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소비행동에도 변화가 뒤따른다. 실패 없는 소비를 빨리하기 위한 선택은 'You Choose, I’ll Follow: Ditto Consumption 디토소비'다. 스타나 인플루언서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는 소비와 달리 주체적 추종 모습을 띠는 것이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디토소비의 확산으로 기업은 시그니처 상품이나 브랜드를 갖춰야 하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해질 것이다.

시간의 기회비용이 커진 분초사회에서 유효한 전략은 'Expanding Your Horizons: Spin-off Projects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기존의 인지도를 활용하면서 새로운 영역에 진출하여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프로젝트로 각광받게 될 것이다.

개인화되는 사회, 게다가 시간마저 부족해진다면 'Supporting One Another: 'Care-based Economy' 돌봄경제'는 아주 중요한 이슈가 된다. 돌봄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시기가 됐음을 뜻한다.
''아이'를 돌보는 것은 '부모의 커리어'를 돌보는 것이고, '고령자'를 기술을 통해 보살피는 것은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주는 일이다. '직원'을 배려하면 '조직의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된다. (p. 373)'


기성세대와 다른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젊은 세대는 사뭇 다른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트렌드를 만든다.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최고의 자아 'Aspiring to Be a Hexagonal Human 육각형인간'을 선망한다. 계층의 고착화로 완벽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이 트렌드는 활력이면서 한편으론 절망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프다.

두 번째 젊은 트렌드는 도파민과 파밍을 결합한 'On Dopamine Farming 도파밍'이다. 새롭고 재미있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픈 젊은 세대의 행동이다. 자칫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극적인 도파밍에 빠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명상이나 남을 도울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의 균형을 이뤄야 할 것이다.

청년 세대의 결혼이 늦어지고 미혼율도 높아지는 현실에서 가사 노동과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Not Like Old Daddies, Millennial Hubbies 요즘남편 없던아빠'가 등장한다. 이런 트렌드에 기성세대가 취해야 할 태도는 동의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지와 지원뿐이다. 나름 주어진 여건 아래서 행복 추구의 방편으로 그들이 선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은 어떤 트렌드에 주목해야 할까? 고객이 느끼는 가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됨에 따라 'Getting the Price Right: Variable Pricing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이 가능해졌다. 기업 입장에서 시장 변화에 민첩하게 반응해야 하고, 소비자가 납득할 만한 가격 차별화 전략이 필요해졌다.

지역과 도시가 고정된 곳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우러져 마치 물같이 흐르는 'ElastiCity. Liquidpolitan 리퀴드폴리탄', 유연한 장소로 변화한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곳이 살기 좋은 리퀴드폴리탄이다.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지능의 발달로 'Rise of 'Homo Promptus' 호모 프롬프트'가 사회 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인간 고유의 창의성으로 인공지능 활용을 극대화하고 메타인지 능력을 갖춘 사람이 미래를 주도하게 될 것이다.


20대 아이가 둘 있는 부모로서 '젊은 트렌드' 세 가지에 관심이 쏠렸고, 그 가운데 '육각형인간' 트렌드에 가장 마음이 쓰였다. "나 오늘부터 '갓생god+生' 살 거야"라는 아이들의 외침이 양극화가 점점 더 심화되는 사회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아프다. 올드머니의 문화와 취향 등 라이프스타일을 소비하려는 심리적 연장선상이란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의사라는 직업만으로도 부족하다고 한다. 집안이 부자인지, 키는 큰지, 외모는 평균 이상인지 같은 것들이 더 따라붙어야 한다. 한 줄로 세우는 환경에서 자랐다고 아이들까지 한 줄로 세우려는 어른들의 심보, 뭐든지 돈으로 환산해 비교하는 등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담을 쌓아놓았으니 아이들이 견뎌야 하는 압박이 너무 무겁다. 치열한 경쟁과 자기 검열의 스트레스 끝에 육각형인간의 모습이 있다는 점이 그 책임에서 우리 부모 세대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육각형인간이 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하고 희화화하며 즐기는 놀이 정도로 여기는 것이라면 다행이고 좋겠지만, 육각형인간이라는 완벽함을 진심으로 선망하고 모방하려는 것이라면 아이들 욕망의 끝은 불행하다. 강남에서 정신과 의원을 운영하는 김정일 박사의 책 <강남은 거대한 정신 병동이다>에 의하면 육각형인간에 가장 근접한 사람들이 많다는 강남이란 곳에서 정신병적 현상이 심심찮게 목격된다니 말이다.

육각형인간이 되었다손치더라도 그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사회가 또는 부모 세대가 제시하는 일그러진 이상형을 쫓아가느라 나다움을 잃고 그 나다움에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 채 지나치며 인생을 허비할까 봐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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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 - 음악이 있는 아침
조희창 지음 / 미디어샘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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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희창은 음악 강의와 공연 해설을 하는 음악평론가이다. 저자는 365일 그날에 벌어진 음악적 사건을 이 책에 담았다. 날짜마다 네다섯 개의 사건을 추렸고 이를 바탕으로 그날의 음악을 정했다. 선정된 음악은 유튜브 QR코드로 들을 수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January 1,

조희창 평론가가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선정한 곡은 Amazing Grace다. 1월 1일 이 음악이 처음 발표됐다. 언제 들어도 울컥하게 만든다. 이 노래의 가사를 지은 성공회 사제 존 뉴턴은 노예무역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큰 풍랑에 휩싸여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은 존 뉴턴은 목숨만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신께 매달렸다.

'놀라운 은혜 얼마나 감미로운 소리인가, 나 같은 비참한 사람을 구해주셨네. 한때 길을 잃었으나 지금은 길을 찾았네. 한때는 앞이 어두웠지만, 지금은 볼 수 있다네... (p. 22)'


그다음 날 January 2

글렌 굴드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여름, 절친이 나에게 베푼 접대 캠핑에서였다. 절친은 천재성과 더불어 그의 기행을 전해주었다. 글렌 굴드는 서른한 살 때 공연한 후 18년 동안 대중 앞에 서지 않고 녹음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완벽한 연주를 원하는 결벽증 때문이었다. 연주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가 하면, 아버지가 만들어준 의자를 평생 들고 다니며 연주했다. 의자가 낮아 건반이 눈높이에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피아노 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절친이 보여줘 처음 본 연주 영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1월 2일이 음악계의 변방, 캐나다 출신의 그렌 굴드가 미국 데뷔 연주를 한 날이다.
'굴드는 자신의 연주에 대해 "방해받지 않는 바람의 날개에 사뿐히 내려앉는 음악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깃털처럼 가벼운 터치와 영통한 드릴 장식, 어이없이 빠르거나 대책 없이 느린 템포가 강렬한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든다. (...)
굴드의 연주는 인간의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 다. 영상물을 보면서 음악을 들으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p. 23)'


크리스마스 December 25

히틀러는 어려서부터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에 흠뻑 빠졌다. 그런가 하면 바그너는 많은 여성에게 흠뻑 빠져 한 여자에게 머물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리스트의 딸 코지마를 만나 결혼한다. 12월 25일은 코지마를 위한 33번째 생일 선물로 <지크프리트 목가>를 초연한 날이다.

'루체른 호수가 내다보이는 스위스의 트립센 별장에 있던 코지마는 새로운 음악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이 깼는데도 꿈에 있는 듯했다. 곡이 끝나자 리하르트가 아이와 함께 방에 들어와서 방금 연주한 곡의 악보를 생일 선물로 건넸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라고 코지마는 적었다. (p. 396)'

바그너는 생전에 반유대주의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또 히틀러는 그의 광팬이었다. 이런 이유로 코지마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 바그너의 음악이지만 이스라엘에서는 그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


어제 October 20

'그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은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로 시작하는 멋진 시를 만들었고, 시와 곡이 어우러져 가곡 <동무생각>이 탄생했다. (p. 327)'

1986년 10월 20일은 한국 최초의 가곡 <동무생각>을 작곡한 박태준 선생이 사망한 날이다. 대구 계성학교 학생 태준은 같은 교회에 다니던 여학생을 좋아했다. 훗날 교사가 된 박태준은 같은 학교 교사인 시인 이은상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푸른 담쟁이를 뜻하는 청라 언덕을 배경으로 삼았고, 그 언덕을 다니던 여학생을 백합에 비유했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라고 노래했다. (p. 327)'
어제 하루 종일 입에 맴돌았던 노래다. 이 책에서 QR코드로 소개된 음악을 아침에 들었던 탓이다. 흥얼거리며 고등학생 시절 동무(?) 생각으로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결심하고 평소 눈여겨 본 여학생을 버스 종점까지 쫓아갔다가 돌아올 회수권이 없어 집까지 걸어왔던... 그 여학생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루를 음악으로 시작하고 싶다면... 그리고 행복한 상상으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면... 날마다 <조희창의 하루 클래식 365> 한 페이지씩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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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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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옷차림을 위해 한 철의 기상을 알려주는 일기예보 보다, 내 삶을 대비하기 위한 더 큰 호흡의 '시대예보'를 시작합니다. (p. 23)'

마인드 마이너인 저자 송길영이 예보하는 미래는 핵가족을 넘어 핵개인의 시대다. 저자는 사회가 자연스럽게 변화해 나가는 방향을 만드는 축으로 '지능화'와 '고령화'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말한다. 정보의 비대칭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권위가 AI의 도움으로 '지능화'된 사회에서는 예전처럼 인정받기 어렵다. '고령화'는 나이듦, 양육과 돌봄 등 기존의 개념을 흩트린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갈 새로운 존재가 핵개인이다. 과연 핵개인은 누구일까? 새롭게 탄생한 이들과 같이 살아가야 할 핵개인의 시대, 그 시대를 어떻게 대비해할지 저자 송길영이 예보하는 시대를 들여다보자.


핵개인 시대의 세계는 글로벌화와 가상화로 모든 경계가 희미해지는 바람에 상상의 영역이 확장된다. 선 긋기보다는 다양성을 포용한다. 권위는 혐오의 감정이 돼버리고 수평적 관계로 나아간다. 사회문화적으로 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관성이 풀려 남성적, 여성적이라는 표현이 꺼려지듯 관행적 표현과 차별적 인식을 형성하는 언어가 사회에 맞추어 재정의된다.

출퇴근 없는 AI는 핵개인의 동료이자 비서이기도 하다. 근면함과 순응성은 AI를 따라갈 수 없으니 핵개인에게 불필요하다. 그보다는 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아낌없이 알려주는 생성형 AI, 축복일까? 재앙일까. AI를 생존의 기술로 선택한 핵개인에게는 당연히 축복이다. 핵개인에게 노동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도구를 갖춘 핵개인에게 직장은 '플랫폼 프로바이더'이고 직장인이 자신은 '콘텐츠 크리에이터'이다. 자유롭게 독립적 커리어를 만들어 나간다. 다른 분야에서 동시에 활동하는 복수의 정체성을 갖는다. 비교하며 갈등을 겪기보다는 자신의 선택에 가치를 담는다. 채용이 아리나 영입의 대상이 된다.

핵개인은 가족의 관계성을 재정립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20년 양육의 되갚음이 더 이상 효도로 미화되기 어렵다. 뒤틀린 아버지의 권위를 바로잡고, 딸은 더 이상 엄마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돌봄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도리이지만 그렇다고 내 삶이 돌봄의 자원이 될 수는 없다. 가족의 역학이 재정의 과정을 거친다. 나이듦도 마찬가지다. 돌봄에 의지하지 않고 나의 삶을 잘 사는 자립으로 가족 서로의 의무를 덜어간다.

'핵개인들은 '타자'를 맞이할 때에 그 태도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그들은 낯선 이를 경계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도 자신이 타자가 될 수 있음을 겁내지 않고, 새로운 타자를 만났을 때에도 주저함이 없습니다. 결론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다양성이 생태계의 희망입니다. (p. 272)'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핵개인의 시대, 자신이 쌓아둔 고유성과 진성성의 내러티브는 핵개인에게 필수 전제다. 핵개인의 문해력은 문자뿐만 아니라 숫자, 이미지, 영상을 포괄한 디지털까지로 영역이 넓어진다. 양육과 돌봄이라는 마음의 빚짐과 실천의 되갚음도 가족의 한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적용한다.

'서로가 진심을 다하고 그 성과를 존중하면 먼 길을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의 능동적 결정권을 서로 존중해 주었을 때 이 시대의 개인들은 자기 삶과 사회 모두에 책임을 다하는 핵개인으로 거듭납니다. (p. 324)'


다가올 핵개인 시대에 나의 삶이 우선 적용될 챕터는 '제4장 효도의 종말, 나이듦의 미래'였다. 이 책에서 이슬아의 자전적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가져와 내리사랑과 효도의 되갚음, 그 종속적 관계를 서로 존중하고 대등하게 인정하는 핵개인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관계를 제시한다.

효도가 대를 잇는 이연된 보상 체계를 끊고 싶다. 아이들은 무엇을 원할까? 어디까지 부모에게 의존하고 어느 정도 되갚음 하고 싶을까? 아마도 부모로서 내리사랑을 끊기는 어렵지 싶다. 하지만 돌봄을 아이들에게 기대고 싶지 않다. 이런 주제로 아내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나이 든 사람'이라는 단어에 따라붙는 것은 '돌봄', '노쇠', '지원' 등 힘듦이 연상되는 말들이 아이들 머릿속에 자리 잡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핵개인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에 너무 힘겨운 짐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돈 때문에 타인을 위해 시간을 써왔으니 이제부터라도 나만의 서사를 만들며 나의 삶을 잘 살려고 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마지막에 스스로에게 고백하고 싶은 말...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멋진 사람이 나이가 든 것'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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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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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내가 해직 언론인에서 보도국장이 되어 뉴스를 재건하고 그리고 사장이 되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키기 위해 싸웠던 5년의 상세한 기록이다. MBC가 어떤 노력을 거쳐 '만나면 좋은 친구'로 돌아왔는지, 좋은 뉴스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언론계 혹은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지, 30년 한눈팔지 않고 살아온 언 본인으로서 소신을 담아 기록했다. (p. 7, 책머리에)'

저자인 전 MBC 사장 박성제는 언론을 통제하고 싶어 하는 권력의 속성,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 역할과 공영방송이 왜 필요하고 왜 지켜야만 하는지를 이 책에 그의 바람과 함께 담았다.


권력은 입 다물지 않고 권력을 감시하며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질문하는 언론을 두려워한다. 권력이 통제하려고 하는 언론, MBC, KBS, YTN은 시민들의 판단과 상관없이 권력 입장에서 볼 때 질문하는 방송사들이다. 나머지 방송사들을 손 대지 않은 이유는 입 다물고 받아쓰고 있거나 언제라도 그렇게 할 자신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좋은 언론은 아니다.

'그렇다면 좋은 언론은 어떤 사명을 추구해야 하는가. 많은 언론인들이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 나는 거기에 '인권을 수호하고, 전쟁이 아닌 평화를 지향하며, 지구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을 더하고 싶다. (p. 200)'

정치적 또는 기계적 중립 그리고 객관적이라면 좋은 언론일까?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유족을 만난 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누군가 정치적 중립을 위해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습니다." (p. 196)'

기자 출신 언론인 전 MBC 사장 박성제는 말한다. '중립'은 그럴듯해 보이는 비현실적인 개념이라고. 그 말속에는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진실 앞에 중립은 없다'라고. 진실 보도를 위해 필요한 건 중립과 균형, 객관성이 아니라 정직함, 투명성, 용기, 합리성 그리고 민주주의 신념 등이 규범과 윤리가 돼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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