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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한옥 - 도심 속에서 다른 삶을 짓다
행복이 가득한 집 편집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23년 10월
평점 :
'한옥이라는 단어에서 '한韓'은 '하나'라는 의미도 있지만 '한가득', '한 아름'과 같이 '전체'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한가운데' '한낮'처럼 '정점'을 뜻하기도 한다. 하늘도 하나고 땅도 하나이며, 우주도 하나다. (...) '옥屋'은 하늘에서 집 안으로 화살이 날아와 박힌 모습을 표현한 글자다. 화살은 하늘의 기운을 땅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조상이나 신을 집에 모시는 것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두 한자의 의미를 결합하면 한옥은 '시작이면서 모든 것이기도 한 생명 정신을 담은 집'으로 이해할 수 있다. (p. 5, 들어가며)'
건축사무소 '착착 스튜디오' 김대균 대표의 '들어가며' 글에 공감하는 되는 부분을 이어 더하면, 한옥에 '시간의 촉감'이라는 멋진 표현을 입힌다. 한옥을 짓는데 쓰이는 나무, 흙, 한지, 기와 따위의 재료가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맛을 내기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낡았다고 여기는 반면 한옥은 오래될수록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과 결이 같다.
이런 이유로 한옥의 운치에 매력을 느껴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가지고들 있다. 하지만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탓에 여러 가지 면에서 한옥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그런 욕망을 한 달 살기로 대체하기 일쑤다.
한옥살이의 꿈을 접지 않고 자신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추어 한옥을 고쳐 짓고 새로 지은 사람들이 있다. 그동안 <행복이 가득한 집>에 소개한 '한옥' 가운데 추리고 뽑은 스물네 채의 집과 그 집 주인 사연을 <더 한옥 THE HANOK>에서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디자이너 양태오의 계동 한옥, 이 집은 건축가 김영섭이 살았던 곳으로 지은지 100년이나 됐다. 새 주인 양태오는 두 채의 아담한 집을 한 곳은 사무실 겸 생활공간으로, 다른 곳은 부모님이 머무는 공간이자 게스트하우스로 꾸몄다. 자신의 취향 대로 고쳐 라이프스타일에 알맞게 탈바꿈했다.
미술 평론가 유경희는 서촌 한옥을 기본적인 대강의 옛것들은 살려둔 채 새것과 연결하여 전통적이면서 모던하게 새로 지었다.
'"... 이런 공간이면 좋겠다는 기준도 명확하고요. 일단 시적詩的이어야 해요. 어둠이 섞인 빛에 로망이 있지요. 약간 어두운 데 가만있으면 서서히 형체가 드러나는 곳 있잖아요. 그런 곳에서 책을 읽는 일,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사치이자 럭셔리예요..." (P. 115)'
그런가 하면 류호향 선생의 경기도 광주 함양당은 아름다운 차 향기가 가득하고 사람들이 오가는 문화 공간인 곳이다.
'차에는 이를 아름답게 마실 수 있는 다법이 존재하고, 이를 행하는 것은 수련과 같다. 하지만 어디서든 차를 마실 수 있기에 장소의 경계는 중요하지 않다. 이와 비슷하게 한옥에는 창과 문이 나뉘어 있지 않다. 바람이 다니면 창이고, 사람이 다니면 문인 것이다. (p. 145)'
차(茶)에 집중하면 스스로 고요함을 자각하는 류효향 선생의 일상이 차와 같은 이유다.
영월 더한옥헤리티지하우스는 현재 일부 오픈 운영 중인 한옥 호텔이다. 2027년에 최종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옥 전통 건축 기법을 사용했고, 건물 높이에 차등을 주었다. 그 결과 영월이 품고 있는 자연을 온전히 담아내 한옥 미학의 매력인 차경借景을 살려냈다.
대궐 같지는 않았지만 한옥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아직도 그 집 모양을 기억 속에 갖고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소 외양간, 그 옆에는 엎드려 만화책 보곤 하던 사랑방, 앞마당에서 주로 얼굴을 씻었고, 뒤뜰 장독대로 가려면 부엌을 지나가야 했다.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마루, 마루에 쌀뒤주가 놓여있었고 마루 뒤쪽으로 난 쪽문을 열어젖히면 담장에 감나무 한 그루가 걸쳐있었다. 대들보가 드러난 마루에 누어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다.
상상만 해도 그때 마셨던 공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심호흡하게 된다. 막힌 공간이 아니라 외부공간이 집안 가운데 떡하니 들어와 있으니 답답함은 없고 흙냄새 맡으며 흙장난이 가능한 곳이었다.
'어리석음을 깨닫는 집'이란 뜻으로 신영복 선생이 이름을 지어주신 지우헌, 디자인하우스가 운영하는 한옥 갤러리로 북촌 한옥 마을에 있는 곳이다. 전시된 작품 감상, 전통차와 책 읽기 그리고 한옥 체험까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이 간직된 한옥 모습은 아니겠지만 그때 분위기만큼은 한껏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에 간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