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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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이 "요즘도 책 읽으며 지내나(요)?"라고 묻곤 한다. '언제까지 그렇게 책이나 읽고 지낼 건가(요)'로 들린다. 뭐라고 대답할까? 길게 답할 여유를 주는 질문이 아니니 짧은 대답을 마련해야 했다.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정의란?' '평등은?' '죽음은?' '올바른 배려란?' '후회하지 않으려면?'... 무수히 많은 그 뒤죽박죽인 것들을 한 번쯤은 내 나름 정리하고 싶었다. 내 생각과 의견이 무엇인지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앎, 그리고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난 책을 읽는다.

'누군가 쓴 것을 내가 읽는다 내가 쓴 것을 당신이 읽는다. 심심해서 외로워서 궁금해서 슬퍼서 읽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만난다. (p. 234)'
나도 많은 사람을 만났다. 문자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의 시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나는 누구일까' '이게 내가 맞나?' 이것도 정리하고 싶은 주제 가운데 하나다. 노재희 작가의 삶을 펼쳐 보여준 산문집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에서 나는 '존재'에 대한 것만 골라 생각했다.


노재희 작가는 어느 날 체온을 재 보았다. 평소보다 1.5도 높아 병원에 갔다. 치사율 50퍼센트의 결핵성 뇌수막염임을 알게 됐고, 40여 일 병상에 누워있는 바람에 일상이 중단됐다. 게다가 20여 일간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당황스러운 순간을 맞닥뜨린 작가는 '나'란 존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다.

'그 이후의 일들은 모두 다른 가족들로부터 듣고 재구성한 기억이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번 듣다 보니 실제로 내가 다 겪어서 기억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것은 실제로 내가 다 겪은 일이다. (p. 38)'

스스로 알고 있는 '나'가 있겠고, 기억이 통째로 날아간 시간은 곁에 있던 사람들이 말해주는 낯선 '나'로 채우고, 어린 시절의 나는 일기장을 펼쳐 '와아아~' 소리치며 내게 달려오는 기억 너머의 '나'들로 메꾸면 짜깁기한 '나'가 완성된다.

또 하나 '나'란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실제로 겪은 '나'가 있겠고, 때론 아름답게 때론 욕심을 부려 기억이 다듬어 놓은 '나'가 있다. 어느 '나'가 진짜 '나'일까. 둘 다일까?


작가의 할아버지 이부연 씨는 1924년 강원도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큰아버지가 소개해 준 김금녀 씨와 혼인날 처음 만나 결혼했다. 우편국에서 일했고 일본군에 징집돼 고생했지만 평생을 항로표지원을 일하다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그 후 30년을 더 사셨다. 아들 셋을 잃었고 자녀 여섯을 키웠다. 뇌졸중인 아내를 자식들 도움 없이 보살피기도 했다.

어린 작가에게 등대지기 할아버지는 자랑이었다. 키가 훤칠하게 크고 웃는 모습도 멋졌다. 그랬던 할아버지는 작아져 줄어들고 쪼그라진 마지막 모습을 작가에게 남기셨다. 작가가 아는 이부연 씨의 삶이다.

'항로표지원 이부연 씨가 생을 마쳤을 때 몇 사람의 지인과 일가친척 말고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 대부분의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p. 105)'

70년 가까이 함께 한 아내는 이부연이란 존재를 어떻게 기억할까? 맏딸인 작가의 어머니는? 이웃들은? 직장 동료들은? 그리고 이부연 씨 자신은? 어느 이부연 씨가 진짜 이부연 씨일까. 모두 다일까?


신은 존재할까? 작가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 자체가 신이 존재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이 확실히 존재한다면 믿을 일이 아니다. 그냥 존재하므로. 또 과학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불완전함으로 두는 반면, 종교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한 섭리로 해결하는 권위를 보이고 오히려 신의 존재 증거로 삼는다.

'자신의 하찮은 일상과 스트레스뿐인 인간관계에서 도망쳐 어딘가로 숨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 162)'

작가는 신의 존재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기도카펫을 깔고 기도하듯 '절운동'을 한다. 20분 동안 하는 백팔배는 머릿속을 가지런히 한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마치 기도한 것처럼.

(중략)

이제부터 노재희 산문 <나무와 함께 정처 없음>을 읽으며 정리해 볼 주제는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이다.

'서른셋까지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면 우리는 몇 살쯤까지 살아야 제대로 살아본 것일까? 그리고 제대로 산다는 건 뭘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p. 87)'

내 맘대로 책을 읽다 보니 작가가 보여주려 했던 것과 많이 빗나간듯하다. 아무렴 어떠랴. 나를 수신인으로 쓴 글이 아닐 텐데... 노재희가 쓴 글을 그냥 내가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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