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이 있던 날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수 900만 명을 돌파했다. 그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전두광의 대사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1811년 12월 18일, 당시 체제에 불만을 품은 서북민 식자층과 굶주림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촌민들이 홍경래를 중심으로 들어 올린 봉기의 횃불은 실패해 홍경래의 '난(반역)'이 됐다. 반면 1789년,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향한 제3계급(평민)의 불만에서 비롯된 봉기는 성공해서 새로운 정부와 사회를 건설해낸 역사적 전환점인 사건, 프랑스 대'혁명'이 됐다.


대원수 홍경래를 가까이서 호위하는 안지경은 난이 실패로 끝나자 쫓기는 신세가 돼버린다. 관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중 배질 홀 선장이 지휘하는 영국 배 알세스트 호에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배를 타고 고생 끝에 대서양의 외딴섬에 다다르게 되는 데, 그곳은 바로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이다.

"혁명과 민란은 다른 것이네. 민란은 억압에 일시적으로 항거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니까."
안지경은 당혹스러웠다. 하면 홍경래의 난은 폭동에 불과했단 말인가. (...)
경전은 백성을 위한 나라를 치자의 덕목으로 꼽고 있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나라는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위민이 아니고 여민(與民)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많은 혁명이 구제도보다도 못한 신악(新)을 낳으면서 실패로 돌아갔지. 하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다르네. 새로운 세상을 열었으니까." (p. 181)'

그곳에서 나폴레옹을 만나 프랑스 대혁명을 공부하게 된 안지경은 홍경래가 실패한 여러 가지 이유를 짚어보며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었던 제3신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마침내 안지경은 홍경래가 못다 한 혁명을 이루기 위해 다시 조선으로 향한다.

'방향은 분명히 하되, 시일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차분하게 백성들의 반응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프랑스대혁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부르주아와 레종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p. 311)


10.26 사건 그리고 그 당시 주도했던 자들이 혁명이라 부르던 12.12 사태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엔 중요한 시기였겠지만 반란을 꾸민 자들에게 나의 고3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죽이는 혁명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듯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하나회라는 군인 집단이 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듬해 재수생이었던 나는 지하철역에서 검문 당할 때마다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바닥에 쏟아야 했고 일 년 내내 최루탄을 맡으며 공부했다. 여러모로 수치스러웠고 불편했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불붙은 6.10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6.29선언을 이끌어내 민주주의가 찾아오는가 했지만 군사독재는 여전했다. 더디지만 민주주의는 성숙해져 갔다. 그러나 다시 역사의 퇴행이 시작됐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자산어보>로 익히 알려진 오세영 작가의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는 홍경래의 난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Fact에 작가의 상상력 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두 사건 모두 억압에 반발해서 민중이 봉기를 한 비슷한 상황인데, 그 결과가 전혀 다름에 의문을 갖는다. 한쪽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한쪽은 비전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 그 차이다.

또 하나, 홍경래의 봉기가 실패로 끝나 '난'으로 기록된 것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소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패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아직 미완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홍경래를 이어 안경직이 나타났듯이 양극화가 심화돼서 불만이 쌓이고 옷을 걸만한 작은 못이 벽에 생기는 순간, 혁명을 이어갈 인물이 계속해서 나올 테니 말이다. 어떤 집단이 가로막고 나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제3계급의 봉기는 끊임없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우행 2023-12-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에 진정 정답이 있을까요? 리뷰글 잘 읽었어요.
 
나, 영원한 아이 (양장) - 2019 세종도서 교양부문
에곤 실레 지음, 문유림.김선아 옮김 / 알비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곤 실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까운 변두리 툴룬에서 태어났다. 미술을 배운 시간을 빈 미술학교에 입학해서 중퇴하기까지 3년에 불과하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빈 분리파'가 되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표현법을 마련한다.

빈 미술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에곤 실레의 그림은 특별하지 않은 '잘 그린' 풍경 그림이었다. 점차 자신만의 내면과 선을 잇는 그림을 그리게 되고 클림트의 영향에서도 벗어나 표현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가가 된다.

'그의 주요 주제는 '인간의 실존을 둘러싼 모든 것들' 혹은 '나 자신을 찾아가는 투쟁'이었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에 대해 탐구하고, 인간 내면의 관능적인 욕망에 대해 연구하고, 그로부터 인간의 육체를 그의 불안과 의심의 반영인 듯 왜곡되고 뒤틀린 형태로 묘사했다. 인물을 그릴 때 작품의 배경은 백지상태로 두어 그의 고독과 단절감을 드러내었다. (p. 150)'

회화는 진실만을 보여줘야 한다고 실레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이 그리고 사회적 윤리가 꺼려 하는 인간 본래의 욕망, 성(性)과 죽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을 만약
두 개의 감정으로 나눈다면,
웃거나 우는 것 (p. 30)'

1914년에 일어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에디트와 결혼했다. 그녀는 배속에 아이를 가진 채 독감에 걸렸고 이로 인해 죽었다. 그 시대에 이단아였던 에곤 실레도 곧이어 스물여덟 살에 그의 아내를 따라서 세상을 떠났다.


'궁극적인 감각, 그것은 종교와 예술 아닌가.
자연은 중간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신이 존재하는 곳이며, 나는 그를 강하게,
더욱더 강하게, 저 끝까지 느끼고 있다.

나는 '현대' 예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나는 '영원한' 예술만이 존재할 뿐이라 믿는다. (p. 141, 자화상을 위한 스케치 중에서)'

나의 편견에 기댈 때, 에곤 실레의 그림은 퇴폐적이고 외설적이어서 거부감이 든다. 게다가 그의 글과 시는 낯설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텍스트를 잘 다루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실레의 조국 오스트리아에서는 그의 그림을 전시할 때 그의 글도 같은 비중으로 전시한다고 한다.


'글은 에곤 실레가 자신을 표현하면서 그림만큼 중요한 표현 수단이었고, 시를 통해서 그림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세밀한 감성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드러냈다. 시는 그의 또 다른 캔버스였다. (p. 148)'

에곤 실레의 시를 읽고 그림을 보며 나는 자코메티와 그의 작품이 떠올렸다. 메마른 듯 뒤틀린 선과 색 그리고 글이 에곤 실레의 실존이라면, 자코메티의 실존은 꽉 찬 세계의 짓눌려 평생 침식당해 약하디 약하고 마른, 불안한 존재다. 두 실존이 겹쳐 보였다.

'사람은 자기가 느껴본 만큼만 세상을 볼 수 있다고들 말합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에곤 실레가 보는 세상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글을 번역하는 건, 에곤 실레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을 보고 글을 읽는 우리. 그리고 이 세상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p. 5, 옮긴이의 말 - 김선아)'

나도 살아있어 죽은 에곤 실레의 실존을 읽고 본다. 영원히 아이로 기억되는 에곤 실레의 실존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에 실린 소설은 모두 집에 관한 이야기다. (p. 290)

대학 졸업 후 얻은 직장은 집에서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었다. 어찌어찌하다 늦어지면 집에 못 들어갈 때가 잦았다. 부득이하게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해 자취를 했다. 거여동, 당시 그 동네는 아파트는 없고 다세대, 다가구 주택이 대부분이었다.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인근의 공수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제법 사는 동네였다.

전세로 방을 얻은 첫 번째 집은 반지하였다. 집주인도 세입자였는데 내게서 받은 전세금으로 자신들의 전세금에 보탰다. 남편은 환경미화원이었고 아내도 일을 했다. 혼자 생활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여자 집주인이 빨래를 해주곤 했는데 남편이 이를 문제 삼아 부부 싸움을 하는 눈치였다. 이사한 지 3개월 만에 다른 집을 알아봤고 이사했다.

이번엔 반지하에서 한 층 올라간 1.5층이었다. 그 집 주인도 세입자였고 내 전세금은 첫 번째 집과 마찬가지로 쓰였다. 남자의 직업은 이웃한 곳에 있는 공수부대의 군인으로 계급은 중사였다. 3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야 집주인이 세입자가 아닌 집으로 이사했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혜진의 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은 집에 관한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에 대한 묘사라기 보다는 집에 사는 사람들, 집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관계에 더 가까운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집과는 무관해 보이는 그런 것들을 통해서만 겨우 집이라는 공간을 설명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이 책은 집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p. 290)

'어디 사세요?'라는 물음에 대답이 즉각적일 수 없다. 대화의 흐름상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OOO에 살아요'란 대답으로 우선 장소를 특정할 수 있다. '아파트도 있고 주택도 있는 동네네요?' 이쯤 되면 집의 형태를 알려줘야 한다. '아파트는 아니고 주택이에요. 다세대.' '요즘 주택도 집값이 제법 나가죠?' 이 질문엔 주거형태를 알려줘야 한다. '전세예요' 또는 '월세예요'

'어디 사세요'라는 집과 관련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 대답 속에 사회적 모순, 개인의 욕망 등 모든 상황과 역학관계가 다 들어있다.

(중략)

<산무동 320-1번지>에서는 세입자와 세입자의 관계를 다룬다. 호수 엄마는 남편과 함께 재개발 동네에 빌라를 여러 채 갖고 있는 집주인 장 선생의 일을 대신한다. 장 선생이 엉망인 이 동네에 오는 것을 꺼려 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을 대신해 월세 독촉을 하고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관리를 잘 하며 사는지 살피는 대가로 호수 엄마는 세를 일부 덜 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절박한 호수 엄마와 세입자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다. 장 선생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 허름한 동네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여기 싹 철거되고 아파트 들어서면 우리가 할 일이 남아 있을 것 같아요? 돈 있는 사람들 세 주고 나면 월세 받으러 다닐 일도 없지. 여러 말할 거 없어요. 재개발 안 되는 게 우리한텐 고마운 일이야. 아닌 말로 재민 엄마 당장 나가겠다고 하면 세입자를 또 무슨 수로 구해요. (p. 169)'


<축복을 비는 마음>의 인선은 양 사장 밑에서 팀을 이끌며 집 청소하는 일를 한다. 어느 날 까탈스러운 신입 경옥을 통해서 양 사장에게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알아차린다. 인선은 더 알게 되는 게 불편하다. 당연시 여겨왔던 일의 정체를 마주하는 것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인선에게는 그 억울함도 상쇄할 만한 마음이 있다.

'경옥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집을 청소할 땐 마음이 너무 불행해지지 않으냐고 물었다. 받는 돈은 똑같은데 몇 배나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 억울하지 않으냐는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하는 거죠, 뭐.
인선이 답했고 경옥이 물었다.
축복요? 무슨 축복요?
깨끗하게 청소해 드리는 만큼 좋은 일 많이 생기시라고 빌어주는 거죠. (p. 270)'


부동산 공화국, 우리는 살아가는 곳이다. 집을 빼놓고는 그 무엇도 이야기할 수 나라에 살고 있다. 친지, 친구, 이웃... 그 어떤 타인을 만나도 하고 싶은 질문은 '어디 사세요?'다. 그 대답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태여 여러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김혜진은 집의 소유와 거주, 임대인과 임차인의 이분법 외에 일어날만한 관계와 마음의 주고받음을 찾아내 이야기한다.

세입자의 집에 방 하나를 임차해 살았던 그때, 돌이켜 보면 조카처럼 여겨 빨래해 주던 집주인 아주머니의 넉넉한 마음과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술이나 한잔하자며 방문을 두드리던 형뻘의 특전사 중사와 그의 아내와 함께 나누던 유쾌한 이야기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관계에 가난을 비교하거나 내려다보며 업신여김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이 책을 통해 각자가 간직한 유일하고도 개별적인 집을 한 번쯤 떠올릴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어떤 시절에 내가 머물렀던 집들은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단련시키며 기꺼이 나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pp. 290, 2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 - 혼자라서, 때로는 함께여서 좋은 이탈리아 여행
신연우 지음 / 하모니북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럽 여행의 완성은 이탈리아라고 흔히 말하고 한다. 몇 년 전 동유럽 패키지여행에서 같이 다녔던 일행 중 서유럽을 먼저 다녀온 부부도 같은 말을 했다.
"서유럽은 꼭... 그중에서 이탈리아는 꼭 한번 가보세요."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은 아니다'라는 김영하 작가의 말은 여행 책에 집착하며 여행을 대신하는 나에게 적당한 핑곗거리를 주었다.
'그래 몸은 하난데 어떻게 그 많은 도시를 다 다녀오겠어...' 그래도 이탈리아 가보고 싶다. 힝~~~


'걸음은 느리고 주변을 둘러보느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신연우의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는 이탈리아의 소도시 25곳의 이야기와 사진을 함께 담은 책이다. 여행이 그곳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라면, 신연우 작가는 걸음이 느리다고 하니 남들보다 그 도시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눴을법하다.

'계획과 무계획의 중간 어디선가 헤매는 일상을 사는 나는 여행의 방식도 다르지 않다.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기보다 대략적인 틀 안에서 움직이다 보니 여행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발길 가는 데로 다닌다. 모르는 도시는 모르는 대로, 아는 도시는 아는 만큼만 욕심부리지 않고 담고 싶은 만큼만 사진에 담아 집으로 돌아온다.
아쉬움은 여행 사진을 정리를 하면서 채운다. 몰랐던 정보도, 못 가본 장소도 사진 속을 더듬어가며 찾는다. 오늘도 나는 기억의 파편을 모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를 도와주던 사람들, 보고 싶은 친구들, 믿기지 않았던 풍경으로 채워진 이탈리아 여행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린다. (p. 8​, 이탈리아에 풍덩)

마침 읽었던 여행 책 가운데 이금이 작가의 <페르마타, 이탈리아> 생각났다. 겹치는 도시는 세 곳이었다.

가난한 자의 성인이라 일컫는 '성 프란체스코'의 발자취를 느끼고자 순례자의 발길 머물게 하는 '아시시'
'누구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삶의 어느 지점일 수도 있고, 여행 중에도 찾아온다. 그럴 땐 아시시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어보자. (p. 25​)'


색으로 기억되는 사랑스러운 중세도시 '시에나'.
'테라 로사, 테라 지알라로도 불리는 시에나는 엄버, 오커라는 컬러와 함께 인류가 사용한 첫 번째 안료로 전 세계의 동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시에나는 채굴했을 때는 노란 갈색, 가열하면 적갈색을 띠는 안료로 르네상스 시대에 이것을 생산하던 '시에나'에서 유래했다. 수많은 컬러 중 인류와 함께 한 색으로 덮인 도시라니 꽤나 낭만적이다. (p. 63)'

이탈리아 부츠 뒤꿈치에 자리한 '알베로벨로', 이곳은 동화 속 마을 같은 트룰로라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전쟁나무의 조각이라는 의미의 이름과는 달리 하얀 벽 위에 납작한 회색 돌 지붕을 올린 건물에서는 왠지 귀여운 스머프나 난쟁이가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반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제각각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 사이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금세 하루가 지나갈 것이다. (p. 194)'

앞다투어 자신들의 여행담을 들려주려 하는 두 작가를 테이블 앞에 있다. 난 '그랬어? 그런 일이 있었어?' 맞장구치고. 책을 읽는 것이 수다 떠는 느낌이랄까? ㅎㅎ


머문 도시를, 그곳의 사람들을 여행자가 볼 때, 적당한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나의 일상이 벌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을 읽듯 작가도 도시 밖에서 서서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지 않았을까? 도시의 사연에 감동이 밀려오면 책을 잠시 덮고 생각에 잠기듯, 눈을 감고 그 도시에 작가만이 칠할 수 있는 색을 입히며 이야기를 각색하지 않았을까?

이탈리아 25곳 도시가 신연우라는 이방인에게 웃으며 환대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어느 날, 이탈리아 소도시>였다. 그리고 사진 덕분에 내 발이 아닌 내 눈으로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오게 한 책이었기도 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각조각 미학 일기 - 미학생활자가 바라본 미술, 음악, 영화
편린 지음 / 미술문화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런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상황일 수도 있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일 수도 있다. 아무튼 입이 다물어져 '말할 수 없는' 순간, 그래서 정적이 흐른다. 하지만 그 정적의 반대편에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어떠한 말이라도 동원해 '말하고 싶은' 욕구다.
'미학은 바로 그 이중적인 충동에 두 발을 딛고 선 학문입니다. (p. 9)'

저자는 미학이 원한圓環 구조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말하고 싶고 그러나 말할 수 없는, 그럼에도 말하고 싶고 그러나 말할 수 없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을 때 쓰는 '아름답다'라는 말 해당된다. '미학은 바로 이 '아름답다'라는 패배 선언 안에 꾹꾹 눌러 담겨 있는 세계와 인간의 함축을 연구하는 학문 (p. 9)'이라고 저자는 미학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면 할수록 표현하려는 욕망은 더 간절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시, 소설, 음악, 춤, 그림과 같은 예술과 철학으로 간절함을 표현하고 규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미학에 관심을 가진 건 오래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읽고 나서였다. 문화유산을 해석하는 그의 방식과 글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도대체 무엇을 공부한 사람일까 궁금해 찾아봤다. 미학이었다. 그가 멋지니 그가 전공한 미학도 뭔지 모르지만 멋졌다. 미학을 알고 싶었다.

딸아이가 대학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면서 미학에 대한 관심은 더 커졌다. 미술과 관련 있는 학문인듯싶었기 때문이다. 아니었다. 아니 내가 알고 있는 미학은 너무 좁은 의미였고 미학은 더 크게 아우르는 학문임을 미학생활자 편린의 <조각조각 미학 일기>을 읽고 알게 되었다.

'미학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학문'입니다. (p. 6)'

서울대학교에서 미학을 공부한 저자 편린은 백오십여 명의 독자들에게 매일 연재하던 글을 다듬어 이 책에 옮겨 놓았다. 암호, 단서, 편지 이 세 가지 키워드에 각각 세 개씩 미술, 음악, 영화를 바라보는 미학적 사유를 아홉 꼭지로 구성했다. 키워드 별로 하나씩만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난해한 질문에 대답하고자 하는 첫 번째 조각, '암호'
앤디 워홀, <브릴로 박스> × 아서 단토

그래도 미학의 핵심은 미술이지 싶다. 그래서 질문, 예술이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이것도 예술이야?'라고 할만한 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세제 브릴로를 담은 박스와 닮은 앤디 워홀의 작품 <브릴로 박스>.

저자는 현실과 꿈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예술 작품을 정의하는 예술 평론가 아서 단토를 데려와 이를 설명한다. 평범하고 예술의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어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미적 경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브릴로 박스>는 예술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으로 인해 꿈만 같았던 예술이 현실(세제 박스)과 똑같아져 꿈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이제 '깨어 있는 꿈 <브릴로 박스>'을 꾸게 됐다.

'예술은 깨어 있는 꿈을 꾸는 일이다. (p. 55)'

예술 작품 <브릴로 박스>의 해석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가 깨어 꿈을 꾸듯 작품의 의미를 해석하면 미완 상태인 예술 작품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것도 예술이야?'가 '이것도 예술이야!'가 된다. 앤디 워홀은 일상을 예술로 만들어버렸다. 그 일상을 예술로 받아들여 새로운 일상을 창조한다면 우리는 이미 예술가다. 워홀은 우리를 해석하는 미학자로 만들어버렸다.

'예술의 종말은 예술가들의 해방이다. 그들은 이제 어떤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지 않은지를 확증하기 위해 실험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미리 말해 줄 수 있다. p. 57)'


사회의 구조적 억압에서 해방되는 결정적인 둘째 조각, '단서'
토끼 굴이 얼마나 깊은지 보여주마 워쇼스키스, <매트릭스> × '시뮬라크르'

유토피아에 산다면 불만이 없을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들이 인간을 위해 만든 가상현실 세계가 실재를 뛰어넘는 시뮬라크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불행해질 권리를, 선을 원하기 전에 악을 원하는 존재다. 레오가 매트릭스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해 맞서듯 우리 인간 앞에 놓인 현실이 유토피아와 같더라도 기만당하지 않으려고 한다.

유토피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존재가 인간이다. 그 유토피아는 하나가 아니다. 하나하나이다. '그렇다면 그 유토피아'들'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요? 바로 미세한 차이 그 자체인 나와 내 주변의 존재의 사이에, 그리고 그 자체로 주변적 존재인 나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p. 185)'


예술과 윤리의 관계를 사유하는 셋째 조각 '편지'
이창동, <밀양> × 자크 데리다

우리는 다른 인간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다면 신은 우리를 대신해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영화 <밀양>의 메시지는 고개를 젓는듯하다. 자크 데리다의 애도, 용서, 구원 개념은 '환대'라는 개념을 토대로 하는데 그 개념에서도 완전한 환대는 불가능하다. 신에 의해서도 법의 정의에 의해서도 불가능하다.

그런데 완전한 환대의 그런 불가능은 오히려 '더 나은 환대'를 생각하는 원동력이 된다. 불가능한 용서는 용서라는 행위를 간편하게 사용하는 (신애의 아이를 죽인 살인자가 신에게 용서받았다고 하는) 것을 막는다. 용서를 매듭짓지 않고 유보한 것이기에 완전한 용서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기도 한다. 애도의 불가능성이 더 인간적인 애도로 이끌듯이 말이다. 극복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책을 받아 읽은 다음, 서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책을 읽고 덧붙여 기록을 남기는 것이니 후기나 독후감에 더 가까운 글을 남기곤 한다. 대부분은 책을 다 읽고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작가의 글에 기대어 내 방식으로 글을 남긴다.

그런데 이 책은 다 읽긴 했는데 나의 글투로 정리할 수가 없었다. 몇 번은 더 집중해서 읽어야 내 나름의 정리가 가능할듯하다. 마땅히 그런 다음 후기를 남겨야 하는데 마감일을 지켜야겠기에 서둘렀음을 실토한다. 그래서 남긴 글이 창피하게도 중구난방이다.


내가 원하던 책이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다. 관심을 가졌던 미학에 대한 지식의 범위와 해석의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기다. 곁에 두고 읽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