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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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를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회라 볼 수 있을까? No! 주저함 없이 나는 병든 사회라고 딱 잘라 말할 자신이 있다.

이태원에 축제를 즐기러 간 젊음 159명의 삶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죽음으로 안타깝게 끝맺었다. 그러한 참사가 발생했을 때는 뭔가 잘못이 있었을 텐데, 없다고 한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죽었다는 뜻이다.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이 되면 같은 상황이 벌어졌었지만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비정상이다.

엊그제 우리는 아카데미 수상작 배우와 작별했다. 우리가 그토록 자랑하던 문화 하나를 잃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어서 마음이 저리다.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는 자,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자, 직업윤리를 망각하고 자극 기사를 상품으로 내놓고 클릭수 장사하는데 혈안이 된 자 등이 힘을 합쳐 린치를 가해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끊게 만들었다. 우리 사회가 더 안타까웠던 건 구경하는 자들은 많았지만 손 내밀어 힘내라고 제발 죽지는 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 틈에 끼어있었다. 진짜 사랑이 없는 우리 한국 사회, 이런 걸 병든 사회라고 말하지 않는가 말이다.


'싸우는 심리학자' 김태형 소장은 <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에서 왜 우리 사회가 비정상인 사회가 되었는지를 진단하고 진짜 사랑을 하는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의견과 생각을 내놓는다.


상대방이 아닌 자기중심적인 사랑이라면 그건 가짜 사랑이다. 스토킹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상품으로 간주해 등가교환을 하려 한다면 그것도 가짜 사랑이다. 사랑의 가치를 매기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받으려는 사랑은 가짜 사랑이다. 과도하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명예를 얻고, 과시하려는 불건전한 욕망이 뿌리내리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불행에 빠진 사람을 선택해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바꾸려 하는 구원자적 사랑도 가짜 사랑이다. 결국 자신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불같은 사랑도 욕망이 건전하지 않다면 욕망이 앞선 사랑이니 가짜다. 부부의 사랑도,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형제간의 사랑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로 대상을 이용한다면 모두 가짜 사랑이다.

'에리히 프롬이 정당하게 지적했듯이, 부모는 '사회의 대리인'이다. 사회가 건강하면 부모도 건강하고 사회가 병들면 부모도 병든다. 한국인들의 심리를 나쁜 쪽으로 몰아가고 정신건강을 파괴하는 주범은 부모가 아닌 병든 한국 사회이다. (p. 106)'

저자는 가짜 사랑을 하거나 사랑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사회라고 진단한다.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주류 심리학이 사랑에 관한 문제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을 저자는 비판한다. 불건전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한 주범이 병든 사회임에도 사회 개혁보다는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그 책임을 몰아가니 그렇다.


돈이 없으면 생존 불안, 존중 불안이 심화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불안이 존재하는 한 이기적 사랑, 가짜 사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불안과 공포를 없애야만 하는데 개인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사회 또는 국가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먹고사는 생존의 불안 때문에 갑질에 저항하지 못하고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포기한다. 이런 불안이 없어졌다면 정의롭지 못한 인간에게 머리 숙이지 않아도 된다. 정의로움 편에 서니 허물 덮을 일도 없고 허물을 덮으려는 자들이 사라진다.

돈 많은 사람의 과시행동을 참는 이유는 척을 지지 않고 지내는 게 유리해서인데, 이것 역시 생존 불안이 해결되면 수모를 참으면서까지 관계를 이어갈 이유가 없어져 과시행동을 더 이상 참지 않는다. 과시하는 권력에 잘 보이려는 자들도 없어진다.

돈으로 사람의 가치나 지위를 평가하는 풍조가 사라지면 돈 많은 사람을 선망하지 않게 된다. 클릭수 장사로 무리해서 돈을 벌 이유가 없으니 클릭수 장사하는 데 혈안이 된 자들도 눈에 띠지 않게 된다.

국가나 사회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고 보장해 그 불안이 사라지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권력 과시나 갑질을 할 수 없고 자랑을 할 수도 없으며, 타인들이 자기를 존중해 주지도 않는다면 미친 듯이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거의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생존 불안이 해결되면 돈이 선물해 주었던 병적인 쾌감을 더는 누리지 못하게 되고,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 그리고 돈을 중심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병적인 풍조 역시 현저하게 줄어든다. (p. 243)'


사랑은 우리의 본성이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그 사랑이 중요하다. 고립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사랑이요 어울려 사람답게 살아가게 하는 것도 사랑이다. 가짜 사랑은 우리 인간과 어울리지 않는다. '부자 되세요~'란 허망한 욕망에서 해방되고, 개인 간의 다툼이 사라지고, 불평등이 해소된다면 우리는 돈이 아닌 인간을 가장 귀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열망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람답게 살기를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다 사랑하면서 살기를 바란다. 모두가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모두가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그것이 인간이 주인 된 세상이고 진짜 사랑이 가능한 이상 사회다. 우리가 이 땅에 이상 사회를 건설하는 그날이 오면, 마침내 사랑의 문제는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다. (p. 244)'

그래서 일 년 전 잃은 이태원에서 축제를 즐기던 젊음도, 엊그제 우리 곁을 떠난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였던 그 사람도 우리의 본성인 진짜 사랑이 귀하게 여기게 될 터이니 다시 그들을 잃는 일은 없게 될 것이다. 묻지마 살인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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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의 세계 - 저울과 자를 든 인류의 숨겨진 역사
제임스 빈센트 지음, 장혜인 옮김 / 까치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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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따뜻한 물을 반 컵씩 두 번에 나눠 마신다. 화장실 앞에 놓인 체중계에 올라간다. 한 달 전부터 불어난 몸무게가 3킬로그램이나 된다. 다시 홈트에 박차를 가하기로 결심한다. 오늘 날씨와 온도를 확인하고, 동작마다 시간을 재면서 스트레칭을 한다. 배고파서 밥을 먹는다기보다 정해진 시간에서 밥을 먹는다. 11시 30분에 아점을 먹는다. 타이머를 3분으로 맞추고 전자렌지에 밥을 데운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거리와 걸리는 시간을 미리 알아두었다가 출발한다. 하루에 12,000보 걷기로 했으니 그 기준으로 정해놓은 곳까지 걸어갔다가 턴한다. 오후 5시 30분, 저녁 먹을 시간이다. 밤 10시 30분이 되면 잠자리로 간다. 적어도 7시간 이상 자겠다고 스스로 약속했으니 그럴려면 11시 정도엔 잠들어야 한다. 내 하루에 측정이 가득하다.

'내가 분명한 방식으로 측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측정은 분명 나의 삶의 중심이며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측정을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사용한다. 나의 일상은 업무, 운동, 생산성의 일반적인 척도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p. 377, 나가며)'


<측정의 세계>는 저자 제임스 빈센트가 가진 측정 단위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책이다. 저울과 자를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리고 과학, 수학과 어울려 측정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1장에서 4장까지 다룬다.

5장에서 8장까지는 측정과 사회의 관계를 살펴본다. 미터법 제정과 프랑스 혁명의 관계, 미국의 개척자들이 지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그린 역사, 통계의 엄청난 힘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미터법을 따르지 않는 영국과 미국식 척도의 배경을 설명한다. 그리고 9장에서는 표준값 정의의 의미 마지막으로 10장에서 현대사회에서 측정의 힘이 얼마나 큰 영향을 발휘하는지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일화가 역사를 재미있는 동화로 바꾼다.


'측정은 언어나 놀이처럼 인지의 초석이다. 우리는 측정으로 세계를 구분하는 방법에 관심을 두게 되고, 직선이 끝나거나 저울이 기울어지는 지점에 주목하게 된다. 측정은 현실의 한 부분을 다른 부분과 비교하고 그 차이를 드러내면서, 앞을 향한 발판을 놓는다. (p. 15)'

인류는 자기 몸을 가장 먼저 측정 도구로 삼았다. 손을 벌려 한뼘으로 가늠했고, 팔꿈치에서 손끝까지를 재서 큐빗이라고 이름붙였다. 측정해서 교환하고, 댓가를 지불한다. 내가 체중계에 올라가듯이 측정을 건강관리에 이용하기도 한다.

권력자는 통치를 정당화하는데 측정을 도구로 사용한다. 이럴 경우 측정은 권력에게 이득을 주었고 힘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학업 성취도를 측정해 줄 세우는 사용한다. 기업은 성과를 측정해 보상에 차등을 두어 지급한다. 측정된 숫자는 복잡해서 머리 아플만한 것들을 없애고 단순화해 한결 편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숫자는 결과를 주고, 문제를 "감정에 덜 흔들리게 만들면서도 지적으로 더욱 다루기 쉽게 해주기 때문이다." (p. 362)'


측정된 통계를 맹신해 진실로 취급할 때 비극이 발생하기도 했다. 삶과 죽음을 측정하는 우생학이 그것이다. 우생학자 헨리 고더드는 IQ가 낮은 사람을 바보, 천치, 멍청이로 분류했고 이를 변하지 않는 잠재력으로 여겨 이들에게서 모든 교육 기회를 박탈했다.

'고더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지능이 원래 그러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고 환경이 좋아도 정신이 나약한 사람을 정상인으로 바꿀 수는 없다. 빨간 털 동물을 까만 털 동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p. 267)'

이러한 생각은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을 정당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우생학을 교리로 여겨 미국과 유럽에서 수십만명이 불임 수수을 받아야 했고, '살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간주된 사람들이 유럽 '청소'라는 명목하에 살해되었다. 캘리포니아 교도소에서는 비교적 최근인 2014년까지도 수백 명의 여성들이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이렇듯 측정에 명암이 존재한다면 무엇을 측정해야 할까? 아니 측정이 우리에게 필요하기나 한 걸까? 저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소한 척도 하나를 소개한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제4악장 '환희의 송가'를 듣는 일이다. 인생에서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거나 주목할만한 성취를 했을때에만 들기로 결심했단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런 행복을 느낄만한 일들이 점점 드물어지고 당연히 환희의 송가를 듣지 못하게 됐다. 재미삼아 시작한 일이 저자를 구속하게 된 것이다.

글머리에 소개한 나의 하루에서 보다시피 나도 저자와 비슷한 자기측정 관계를 갖고있다. 그러한 하루가 건강에 도움이되고 짜임새있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 틀 안에 자신을 가두기도 한다. 환희의 송가를 부르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내 주변에서 측정된 각종 숫자와 통계로 성취를 높일만한 방법을 조언한다. 폭력처럼 느낄정도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온다. 생각해보자. 모든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고대 이집트인들은 영혼도 측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수천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측정할 수 없는 가치들을 재보라는 강요는 여전하다.

'오늘날 우리가 측정을 다루는 방식에는 여전히 이와 비슷한 마술적 사고가 남아 있다. 우리는 측정이 객관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숫자를 숭배하고, 삶의 모든 문제를 통계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는 한다. 그러나 때로 세상 속 어떤 것의 위치를 측정하면, 그 표시 자체가 더욱 힘을 얻고 측정 대상은 오히려 배경으로 물러나기도 한다. 계획이 목표를 삼켜버리고 애초에 원한 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 측정 위에 세워진 사회, 측정이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는 측정이 어떤 목표에 기여하는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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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 질문
이화열 편역 / 앤의서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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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이 아닌 새로운 시각을 지니는 것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

인생이란 여정 가운데 문득 나에게 질문하기 시작한 건, 마음을 다잡고 책을 읽으면서였다. 여정의 반을 훌쩍 넘어서야 '넌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라는 질문을 하다니... 그나마 이곳까지 별 탈 없이 왔으니 망정이지 미로에 빠졌다면? 끔찍하다. 되돌아갈 수 없는 여행이어서 더욱 그렇다.


'오랫동안 내 완벽한 아침 식탁은 시사잡지 <트 익스프레스'Express>의 부록이 배달되는 주말이었다. 부록의 맨 마지막 페이지에 실리는 <프루스트의 질문 Questionnaire de Proust>을 읽는 즐거움 때문이다.' - 에세이스트 이화열

이화열 편역의 <프루스트의 질문>은 마르셀 푸르스트가 질문에 답을 적은 노트다. 프랑수아즈 사강, 움베르토 에코, 카미유 클로델, 우디 앨런, 스티븐 킹, 맷 데이먼 등 셀럽들이 적어놓은 답도 있다. 철학적 질문부터 재미있는 질문까지 위대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100개가 이 앨범에 담겨있다.


첫 번째 질문, 당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덕목은?
'진지함, 만약 내가 경망스러워진다면 덕목도 바뀔 것이다.' 프루스트의 답이다.
카미유 클로델은 '없다. 모든 덕목은 권태롭다.'라고 답했다.

나의 답은 '신독(愼獨)'이다. 삼갈 '신愼'에 홀로 '독獨', 출처는 <대학>으로 '스스로 속이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신독에 완성은 없고 계속 노력해야겠지만 좌우명으로 삼아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삶을 살고자 '신독(愼獨)', 이 말의 뜻을 품고 살아간다.

중략

백 번째 질문,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은가?
'주피터의 단검에 찔려 죽듯이 벼락에 맞아 죽고 싶다.' 소설가 미셀 투르니에
'스코틀랜드의 강가에서 좋은 와인 한 병을 움켜쥐고.' 영화배우 엠마 톰슨

뜻밖이라 여길지 모르겠지만 (죽음도 뜻밖에 일어나는 일이니) 난 이미 이 질문의 답을 여러 번 생각했다. 제정신인 상태에서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고 아내와 아이들에게 작별 인사를 나눈 다음 잠자다가 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은? 아직 이른 질문이라고 생각하나. 생각해둬서 나쁠 건 없으니 생각해 보길... 생각할 때마다 바뀐다. 그래서 이 앨범에는 질문에 세 번까지 답을 적도록 여백이 마련돼있다.


자신에게 질문하지 않는 인생은 안갯속을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게 없으니 그렇다.

질문은 앞에 깔린 안개를 걷어내준다. 흐릿했던 것들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한다. 질문은 질문을 데리고 온다. 이젠 질문에 답하며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나와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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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꿀 테크놀로지 2024 - 닛케이가 전망한 기술 트렌드 100
닛케이BP 지음, 윤태성 옮김 / 시크릿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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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지난해 9월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 1세대 모델을 공개했다. 그로부터 15개월이 지난 며칠 전 옵티머스 2세대 모델 영상을 공개했다. 스쿼드를 하기도 하고, 달걀을 손가락으로 집어 옮기는 등 정교한 움직임이 눈에 띄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발도 신고 있다. 지형에 맞는 신발을 신으면 모든 지형에 적응 가능하다는 뜻이다.


닛케이의 매년 발행하는 시리즈 <세계를 바꿀 테크놀로지 2024>는 AI, 건축/토목, 전기/에너지, 모빌리티, 의료/건강/식농, 라이프 & 워크 스타일, IT/통신 이렇게 7개 분야를 추적해 2024년 주목해야 할 기술 100개를 소개한다.

시간을 조금 더 건너뛰어 2030년 기대되는 테크놀로지를 살펴보자. 1위는 '운전자가 없는' 자동차를 도로 등에서 자율주행하는 기술인 '완전 자율주행(모빌리티)'이다. 레벨을 5개로 나누는 데 현재 운전자가 탄 상태에서 어느 정도 자율주행 가능한 레벨 3 수준에 와있다.

2위는 디지털 공간 위에 작업 현장을 재현하는 '산업 메타버스(라이프 & 워크 스타일)'기술이다. 메타버스를 통해 숙련자가 원격 작업을 함으로써 인력과 숙련공 부족을 메울 수 있다. 3위는 간호, 요양에 쓰이는 '간호 로봇(의료, 건강, 식농)'이다. 이동 보조, 배설 지원, 지켜보기, 커뮤니케이션, 목욕, 요양 업무 지원이 가능하다.

4위는 2030년 실용화 될지도 모를 '핵융합(전기, 에너지)'이다. 1g의 연료로 석유 8톤에 해당하는 막대한 에너지를 얻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기술이다. 5위는 자외선과 적외선을 에너지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투명 태양광 발전용 패널(건축 토목)'로 벽면, 천창 등 유리를 설치할 수 있는 곳에 대체 가능한 기술이다.

그밖에 순위 5위에는 들지 못했지만, 거론되지 않은 분야 가운데 AI로 실제와 비슷하게 만든 이미지, 동영상, 음성 등을 탐지하는 '딥페이크 대책(AI)' 기술, (앞서 이야기한 옵티머스에 적용되고 있는) 뇌파 등을 이용해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기술 'BMI(IT 통신)'도 2030년 기대되는 테크놀로지다.


한빛미디어 박태웅 의장에 따르면, 테슬라가 선보인 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두뇌가 AI로 작동하기 때문에 인간이 명령하는 알고리즘 대신 Viosion Sensor로 보면서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한다. 앨런 머스크의 꿈이 증강 인간, 즉 인간의 몸과 컴퓨터를 결합하여 인간을 증강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람 모양의 로봇을 자신의 뇌로 조정하는 슈퍼 휴먼이 되는 것이다. 어떤 행성에서도 살 수 있는 다행성 종, 사이보그다.

박의장은 앨런 머스크 같은 사람을 장기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인류가 멸종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과연 호모 사피엔스가 사이보그로 진화하는 시대가 오는 건가? 몇몇 슈퍼 엘리트들이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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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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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2월 12일 군사 반란이 있던 날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수 900만 명을 돌파했다. 그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전두광의 대사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입니까!"

1811년 12월 18일, 당시 체제에 불만을 품은 서북민 식자층과 굶주림으로 벼랑 끝에 내몰린 촌민들이 홍경래를 중심으로 들어 올린 봉기의 횃불은 실패해 홍경래의 '난(반역)'이 됐다. 반면 1789년, 절대왕정이 지배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향한 제3계급(평민)의 불만에서 비롯된 봉기는 성공해서 새로운 정부와 사회를 건설해낸 역사적 전환점인 사건, 프랑스 대'혁명'이 됐다.


대원수 홍경래를 가까이서 호위하는 안지경은 난이 실패로 끝나자 쫓기는 신세가 돼버린다. 관군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던 중 배질 홀 선장이 지휘하는 영국 배 알세스트 호에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한다. 배를 타고 고생 끝에 대서양의 외딴섬에 다다르게 되는 데, 그곳은 바로 나폴레옹의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이다.

"혁명과 민란은 다른 것이네. 민란은 억압에 일시적으로 항거하는 것이지만 혁명은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것이니까."
안지경은 당혹스러웠다. 하면 홍경래의 난은 폭동에 불과했단 말인가. (...)
경전은 백성을 위한 나라를 치자의 덕목으로 꼽고 있지만, 백성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나라는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위민이 아니고 여민(與民)이라니.
"그럴 수도 있겠지. 많은 혁명이 구제도보다도 못한 신악(新)을 낳으면서 실패로 돌아갔지. 하지만 프랑스대혁명은 다르네. 새로운 세상을 열었으니까." (p. 181)'

그곳에서 나폴레옹을 만나 프랑스 대혁명을 공부하게 된 안지경은 홍경래가 실패한 여러 가지 이유를 짚어보며 프랑스대혁명을 이끌었던 제3신분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마침내 안지경은 홍경래가 못다 한 혁명을 이루기 위해 다시 조선으로 향한다.

'방향은 분명히 하되, 시일을 두고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차분하게 백성들의 반응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며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프랑스대혁명이 그러했던 것처럼. 부르주아와 레종은 어느 날 갑자기 출현한 것이 아니다. (p. 311)


10.26 사건 그리고 그 당시 주도했던 자들이 혁명이라 부르던 12.12 사태의 한가운데 서서, 나는 고3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엔 중요한 시기였겠지만 반란을 꾸민 자들에게 나의 고3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죽이는 혁명으로 서울의 봄이 오는듯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았던 하나회라는 군인 집단이 이를 가로막고 나섰다. 그 이듬해 재수생이었던 나는 지하철역에서 검문 당할 때마다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바닥에 쏟아야 했고 일 년 내내 최루탄을 맡으며 공부했다. 여러모로 수치스러웠고 불편했었다.

1987년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불붙은 6.10 항쟁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6.29선언을 이끌어내 민주주의가 찾아오는가 했지만 군사독재는 여전했다. 더디지만 민주주의는 성숙해져 갔다. 그러나 다시 역사의 퇴행이 시작됐다.


<베니스의 개성상인>, <자산어보>로 익히 알려진 오세영 작가의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는 홍경래의 난과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역사적 Fact에 작가의 상상력 Fiction을 더한 팩션(Faction)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두 사건 모두 억압에 반발해서 민중이 봉기를 한 비슷한 상황인데, 그 결과가 전혀 다름에 의문을 갖는다. 한쪽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한쪽은 비전을 명확히 제시한 것이 그 차이다.

또 하나, 홍경래의 봉기가 실패로 끝나 '난'으로 기록된 것에 실망할 필요가 없다고 소설을 통해 작가는 말한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을 뿐이지 실패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아직 미완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홍경래를 이어 안경직이 나타났듯이 양극화가 심화돼서 불만이 쌓이고 옷을 걸만한 작은 못이 벽에 생기는 순간, 혁명을 이어갈 인물이 계속해서 나올 테니 말이다. 어떤 집단이 가로막고 나서도 민주주의를 향한 제3계급의 봉기는 끊임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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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12-19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주주의에 진정 정답이 있을까요? 리뷰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