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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 인간은 왜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가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평점 :
'노스탤지어는 "어떤 지나간 시절이나 되찾을 수 없는 상태로의 귀환, 또는 그에 대한 그리움이나 과도하게 감상적인 동경"의 감정이다. (p. 14)'
내가 고향을 떠난 건 열두 살, 그러니까 국민학교 5학년 1학기를 마치고서였다. 인천으로 이사했다. 지금 기억하기로 그때는 고향 친구들이 무척이나 그리웠다.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편이어서 새로 다니게 된 학교도 교회도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되면 고향 고모님 집에서 머물며 놀다 오곤 했다.
오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계절의 어떤 특징적인 날씨를 마주할 때마다 그 날씨의 고향을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열두 살 때만큼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짙지는 않다. 그냥 추억으로 소비할 뿐이다.
<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는 역사학을 전공한 감정사학자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가 노스탤지어라는 감정의 역사를 파헤친 책이다. 400년 동안 존재한, 그렇지만 그 누구도 설명한 적 없는 노스탤지어란 감정을 다각적이고 풍부한 연구를 통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학적으로 그려낸다.
'노스탤지어의 사연은 17세기에 시작된다. 1688년 스위스의 의사 요하네스 호퍼 Johannes Hofer가 노스탤지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면서부터다. 호퍼는 그리스어 노스토스 nostos(귀향)와 알고스 algos(고통)에서 착안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떠나온 곳에서 싸우던 유럽의 용병들을 괴롭히는 장애를 노스탤지어라고 최초로 명명했다. (p. 26)'
언어가 다르면 인식하는 감정도 다르듯 노스탤지어의 감정은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또한 노스탤지어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주 많이 변했다.
노스탤지어는 우울증, 수면 장애 등 정신 증상을 일으키는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노예들과 함께 이 질환은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1900년대 집단 이주의 시기를 맞아 군인들은 식민지로, 난민들은 전쟁과 학살, 역병을 피해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떠났다. 이 같은 집단 이동은 숭고한 질환인 향수병을 불러왔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노스탤지어는 별것 아닌 엄살로 치부되었다.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자유로운 이동은 국경을 느슨하게 하며 세계화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고향을 묶어주는 감정은 묽어져갔다. 육체와 정신에 더는 위협적이지 않은 노스탤지어가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걸 광고 책임자들은 간파했다. 지갑을 열어 물건을 사게 하는 힘이 노스탤지어에 있었다.
이렇듯 노스탤지어란 감정이 개인의 감정을 유쾌하게 했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좌파든 우파든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표심을 이끌어내는데 활용하고 남용했다. 21세기에 노스탤지어는 포퓰리즘과 무지성에 관련 지어졌다.
올리버 색스는 노스탤지어의 새로운 전기 열어주었다. 병을 회복하는데 관여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노스탤지어는 이제 더 이상 질병이 아니었다.
'노스탤지어는 자존감을 북돋고, 삶에 의미를 더하며, 사회적 유대감을 키우고, 문제가 있을 경우 도움과 지지를 구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며, 심리적 건강 및 안녕을 증진하고, 외로움이나 권태, 스트레스, 불안을 줄일 수 있다. 나아가 현재는 노인들의 기억력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며, 심리적 안녕을 강화하고 우울증을 개선하는 중재술로도 쓰일 정도다. (p. 368)'
19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우리 두 아이는 서울 등촌동에서 6~7년을 살았다. 그 후 이사한 곳에서 초등학교 5, 6학년까지 그리고 지금 이곳으로 이사 와 쭉 살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노스탤지어를 느낄만한 곳은 어디일까? 없지 싶다. 언젠가 아이들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치며 기억을 더듬어준 적이 있었다. 별로 감흥이 없었다.
우리 세대가 흐트러진 감정을 추억 소비로 추스른다면 우리 아이들은 다른 방식으로 감정을 다스리지 싶다. 우리 세대는 과거의 경험을 불러내는 노스탤지어의 힘으로 외로움을, 현재의 불만을, 미래의 불안을 잠재운다. 아이들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기엔 경험한 추억이 빈약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스탤지어를 재창조한다. 뉴트로, 자신들에게 맞게 재해석해 불러오는 뉴트로를 즐긴다.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가 그 한 예이다. 기존의 노포를 그 아이들의 새로움으로 더해 놓고 그곳에 모인다. 그들의 노스탤지어는 '과거를 재정립하고 변화에 대한 지지를 얻는 데 쓰이는 도구 (p. 413)'이다. 지금 노스탤지어를 질병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다. 어리석거나 유아적인 감정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우리 아이들에 의해서 노스탤지어는 변화무쌍하고 다종다양한 형태로 계속 그 놀라운 힘을 보여주며 행복감을 높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