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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어스 - 지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페리스 제이버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평점 :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는 무엇일까? 코끼리? 고래? 챗 GPT에게 물었다. 미국 오리건 주에 있는 꿀버섯(Honey Fungus)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약 2,500~8,500년 동안 자란 이 버섯은 약 9.6제곱 킬로미터에 걸쳐 퍼져 있다. 축구장 약 1,350개 만한 크기다.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의 생각은 좀 다르다. 1960년대에 처음 주장한 '가이아 Gaia 가설'로 '지구상에서 가장 큰 생명체는 지구 그 자체'라고 밝혔다. 미국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가 발전시킨 이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암석, 물, 대기와 같은 무생물과 생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생물이 거주하는 데 최적의 상태를 만들면서 유지하도록 스스로 조절하는 생명체'다.
'가이아 가설의 핵심은 생명이 지구를 변모시키고 지구의 자기조절 과정에 중요한 일부로 통합되어 있다는 개념이며, 이는 시대를 앞서간 선견지명이었다. (p. 26)'
저자 페리스 제이버는 <비커밍 어스>에서 지구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탐구한다. 그리고 지구의 가장 초기 생명체이자 가장 작은 미생물이 암석, 물, 대기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들보다 더 크고 복잡한 생명 형태인 균류, 식물, 동물 등이 암석, 물, 대기에 어떤 변모를 일으키는지, 세 번째로 최근에 지구에 등장한 인간종이 지구를 얼마나 빠르게 변화시켰는지를 다룬다.
'이 책을 나는 위대한 목격이라 말하고 싶다. (...) 우리가 사는 이 행성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어떤 시간을 거쳐 왔는지에 대해서, 살아있는 지구에 대해서, 과학적 증명과 사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우리 공생까지도. (천선란, 이 책을 향한 찬사)'
지하 300미터도 넘는 깊이에서 미생물들이 바위를 흙으로 바꾸고 있다. 비버는 북미 생태계의 모양을 잡았고, 북미에서 인간의 역사와 지질의 모양을 잡았다. 이렇게 만든 토양 생태계를 인간은 쟁기를 들고 땅을 갈아 심각하게 교란한다.
플랑크톤이 바다와 지구 자체의 화학을 조절한다. 켈프 숲은 해수면 아래로 들어오는 햇빛의 분포, 해류의 속도와 방향, 바다눈이 가라앉는 속도에 영향을 미쳐 물속 기후와 서식지를 만든다. 인간종은 플라스틱으로 플랑크톤의 탄소 운반 능력을 방해해 지구의 기온과 기후를 조절하는 생물지질화학 순환을 훼손한다.
수많은 박테리아, 조류, 지의류, 플랑크톤이 응결핵을 만드는 단백질을 생성해 강한 바람, 상승기류에 따라 대기로 올라가 하늘에 자리를 잡고서 비구름을 만들고 강우와 함께 지구 표면으로 돌아온다. 대기 중에 산소는 불꽃의 원천이 되었다. 불은 숲의 나무를 솎아주고 해충을 막는 등 회복력 있는 생태계를 만든다. 불을 의지로 일으켜서 사용할 줄 알게 된 인간종은 에너지의 제약을 초월해 기후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지금도 지구라는 생명체는 대기나 해양, 땅속 구성 물질을 정교하게 조율하고 있으며 대기의 산소, 바다의 염분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구의 온도를 조절한다.
약 45억 년 지질 시대를 45미터로 따질 때 인간종은 작은 동전의 두께만큼 거리인 마지막 2밀리미터를 남겨두었을 때 출현했다. 새내기인 인간이 지구라는 생명체의 암세포가 돼버렸다. 경쟁보다는 공생에 초점을 두고 진화를 거듭해온 생명체 지구에 말이다.
지구라는 생명체는 이제까지 지내온 45억 년 동안과 똑같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지구에 머물며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안락한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할 것이다. 인간종이 계속 암세포 역할을 한다면 이를 물리칠 수 있는 항암 능력까지 갖추게 될 테고. 그러니 인간종이 사라진다 해도 지구라는 생명체는 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여러 번 인류 멸종보다 규모가 큰 대멸종도 이겨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 인류는 지구를 바꿀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춘 존재다. 하지만 그 능력에 한계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지구라는 생명체와 통합된 하나의 실체라는 것도.
'"... 저 밖에 지적인 생명체 가 아주 많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고향 행성을 떠날 수 없고 우리도 그렇습니다. 생명은 행성 자체의 발현이고 지금 살고 있는 행성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p. 373, 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