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 Time for 클래식
김흥식 지음 / 그림씨 / 2022년 1월
평점 :
클래식 음악을 섭렵한 회사 후배가 있었다. 그저 그런 후배라 여겼는데, 영화 <파리넬리>의 <울게 하소서>를 듣고 너무 인상적이라 음정도 안 맞는 멜로디를 흥얼거리다 우연히 그 후배에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아냐고 별 기대 없이 물었다. 헨델의 오페라 아리아로 울게 하소서란 곡인데... 어쩌고저쩌고 계속 설명이 이어졌다. 후배의 클래식 지식에 깜짝 놀랐고 그 이후로 더 이상 그저 그런 후배가 아니었다. 달라 보였다. 클래식은 사람을 달리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도대체 음악은 왜 듣는 걸까? (...) 하나는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겠지요. (...) 다른 하나는 정신의 정화를 위해서일 것입니다. (p. 289, 290)'
나는 학창 시절에 있어 보이려면 클래식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들은 음악일 뿐이었다. 그나마 KBS 제1 FM에 주파수를 맞춰 들으면 눈만 스스로 감겼던 음악이었다. 즐거움과는 거리가 먼...
회사 후배는 분명 즐거움과 정신의 정화를 위해 클래식을 듣겠지. 클래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뭘까? 졸기만 했던 나와 차이는?
'그러니 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의식하지 말 일입니다. 좋아서 듣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자신이 좋아하는 연주가의 소리가 귀에 들어오게 됩니다. 바로크 음악과 고전파 음악, 낭만파 음악의 구분도 듣다 보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됩니다. (p. 241)'
<A Time for 클래식>은 클래식을 벗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 클래식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시간적(시간대별) 상황과 정서적 상황에 따라 들으면 좋은 음악들을 선별하여 101곡(함께 듣기 129곡 포함 총 230곡)을 소개한다. QR코드를 찍으면 해당 클래식 음악을 듣기가 가능해 짧게나마 음악을 들으며 책 읽기도 가능하다.
아침에 딱 어울리는 곡 중에 하나는 조시프 이바노비치의 <도나우 강의 잔물결>이다.
식사하면서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으며 듣기 좋은 음악은 이탈리아 작곡자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캄파놀리의 음악이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BWV1004>는 방문을 닫은 후 불을 끄고 혼자서 볼륨을 한껏 키워 들어야 이 곡이 왜 뛰어난 음악인지를 느끼게 된다.
쇼팽의 <녹턴>은 말 그대로 '야상곡夜想曲'이니 밤에 들어야 제맛이다.
또한 곡에 대한 해석과 작곡가, 악기에 얽힌 에피소드로 많은 상식을 전해주어 클래식에 친숙해지도록 한다.
<넬라 판타지아>로 친숙한 오보에는 사람의 목소리와 소리 영역이 가장 비슷하고 오케스트라 악기 조율 시 오보에 A음에 맞춘다.
상대성이론은 발표한 과학자 아인슈타인은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아인슈타인 바이올린 연주한 곡들이 수두룩하다.
모차르트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제레레>를 듣고 곡을 암기한 후 집에서 그 음악을 악보에 옮겨 적었다. 그때 나이는 열다섯이었다.
바이올린 교사로 근무했던 비발디는 학생들을 위하여 수많을 작품을 작곡했고, 많을 학생이 연주에 참여하 기회를 주려고 협주곡을 많이 만들었다.
9번 교향곡을 쓰다가 사망한 베토벤, 슈베르트 때문에 9번 교향곡을 쓰다가 자신도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밀러는 9번의 저주를 피하려 9번을 10번 교향곡이라고 하며 작곡했지만 결국 이 곡을 작곡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4악장 마지막에 바이올린 연주자 2명만 남아 연주를 마치는 <교향곡 45번 '고별'〉은 휴가를 갈수 없었던 악단들을 위해 하이든이 기지를 발휘해 작곡한 곡이다. 하이든의 의도를 알아차린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악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었다.
아직도 못다 한 클래식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A Time for 클래식>은 첫 곡으로 0시 0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3악장으로 시작하여 맨 마지막 곡으로 24시 0분(이는 곧 0시 0분이기도 하다)에 다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전곡을 들으면서 맺음 한다. 저자는 이러한 배치 의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학적으로는 동시에, 다른 곡을 듣는 셈입니다. 그러나 그건 평범한 사람의 시각일 뿐입니다. 신의 시간, 자연의 시간, 영원의 시간에서는 두 시간은 겹치면서 독립적입니다. 그러하기에 그 시간에 우리는 '포함되어 있으면서 다른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는 우리들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유'를 누릴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 p. 426, 427)'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히포크라테스의 말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인생의 하프타임을 넘었는데도 클래식을 즐거움을 모르니. 예술은 길다고 하니 끝을 알 수 없는 남은 여정이라도 클래식과 친해볼까? 즐기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풍부한 클래식의 이야기가 그 시간을 앞당겨 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