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로마사 (텐바이텐 로마사) - 천년의 제국을 결정한 10가지 역사 속 100장면
함규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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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규진 교수는 로마가 있었던 유럽이 아니라 고대 로마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로마 역사가 아닌 정치외교학을 전공,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럼에도 로마사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따로 있다. 앞서 수많은 대가들이 써온 로마 역사서를 읽었고 이해했다. 그들, 그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 거인들이 보지 못한 곳을 볼 수 있고, 나름 새로운 시각과 해석을 덧붙여갈 수 있는 자신감이 저자에게 있다.

'Roma non uno die aedificata est.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p. 409)'

함규진 교수의 <10×10 로마사>는 2천 년에 달하는 로마 역사를 영웅, 황제, 여성, 건축, 전쟁, 기술, 책, 신, 제도, 유산, 이렇게 열 가지 주제에 핵심적인 열 가지 장면을 각 주제별로 뽑아 전체 100가지 이야기를 책에 실었다. 100 장면 모두 흥미롭고 대여섯 쪽으로 구성해 로마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을 갖춘 책이다.

남성 이미지의 로마에 '여성'을 주제로 할만한 이야기가 있을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비록 영웅이나 황제의 어머니 또는 아내로 여성을 조명하긴 하지만 리비아처럼 권력 막후의 여성도 있었다. 또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헬레나, 타이스와 같이 성녀로 여성이 등장하기도 한다.

로마의 위대한 문명은 어떤 '책'을 남겼을까. 건축에 사용되었던 과학기술을 총망라한 비트루비우스의 <건축론>, 베르길리우스의 대서사시 <아이네이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은 <신약성서>, 당시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 등 열권의 책을 저자는 꼽았다.

로마가 남긴 '유산'도 흥미롭다. 지금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알파벳의 기본인 로마자, 현대 정치의 원리의 하나인 공화정, 태양력, 대중문화의 시작점인 콜로세움, 병원, 경매 등 모두 로마가 남긴 유산이다.

딱딱한 느낌의 역사라기보다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 책의 재미요소가 하나 있는데, 마치 보드게임하는 이쪽 챕터에서 저쪽 챕터로 다시 또 다른 쪽 챕터로 넘나들며 읽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며 챕터 2-6 '하드리아누스'를 읽다가 '콘술'이란 용어에 막혔다면 안내하는 챕터 9-1을 펼치면 그 개념을 알 수 있다. 또 그 챕터를 읽어나가다가 '공화정'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려 한다면 안내하는 10-5로 잠시 건너갔다가 오면 된다.

로마사의 깊이와 넓이에 더해 로마제국의 비밀을 색다른 방법으로 즐기고 싶다면, 역사를 쉽게 풀어내는 함규진 교수의 <10×10 로마사>를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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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게 말을 걸다
김교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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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의 인생에 선물 같기만 했던 배우자를 서른넷 젊은 나이에 떠나보냈다.

'죽음도 죽음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조금은 두렵지 않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없이, 죽음이라는 것이 마치 초인종 누르듯 그냥 불쑥 찾아왔다. (p. 143)'

두 아이가 남겨졌다. 미술교사이자 작가, 서양화가인 저자가 두 아이와 살아가기 위한 선택은 좋은 강연, 책, 글쓰기였다. 그가 쓴 <명화에게 말을 걸다>는 그림에 말을 걸어 세상에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스스로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풀어낸 성장 에세이다.

'나의 상처를 노출한다는 것은 발가벗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게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그 용기 자체가 이미 능력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주는 일이다. 내 아픔의 고백이 비슷한 슬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백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p. 182)'


폴 고갱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저자는 이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갱이 작품 속에 인간의 모든 삶을 담으려 했음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에게 질문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어지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삶의 모든 문제는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폴 고갱에게 말을 걸어 얻어낸 대답은 '나를 먼저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이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에서 행복이 우리 가까이에 있다고 알려주듯 살아갈 힘의 원천도 모든 질문을 해결할 답도 내 안에 존재한다.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이 그림은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안개는 맹렬하게 요동치는 파도처럼 산을 덮고 있고 남자의 뒷모습은 엄숙해 보이면서도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차 있다. 포효하는 대자연에 맞서려는 듯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마치 인생의 거센 물결같이 거칠고 사납게 위협하는 자연에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집념과 투쟁의 정신으로 작품에 긴장감을 더 해준다. (p. 234)'

저자는 결혼을 '프리마돈나'에 비유한다. 프리마돈나가 혼자 춤을 추는 '솔리스트'보다 더 뛰어난 이유는 남녀가 함께 한 호흡으로 합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완전히 다른 여자와 남자가 만나 서로 힘과 감정을 배려하는 까다로운 삶, 결혼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이제 저자는 '프리마돈나'로 꿈꾸었던 삶을 뜻하지 않게 멈추고 '솔리스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프리드리히의 그림과 말을 섞으며 '안개 바다를 홀로 바라보는 남자'의 뒷모습에서 솔리스트가 된 자신을 발견한다. 혼자 춤추면서 고독이 준 선물을 달게 받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저자의 뒷모습에서 보인다.


딸아이가 서양화를 전공한 터라 집 곳곳에 딸아이 그림이 있다. 나도 딸아이 그림에 말을 걸어보곤 한다. 그런데 아빠로서 궁금한 건 아이가 무슨 감정을 지니고 그린 그림일지, 뭘 나타내고자 했을지, 어떤 영감이 떠올랐을지, 이 아이가 자기 그림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딸아이를 가늠해 보는 말을 걸어본다. 저자와는 다르다.

이제부터 나도 나를 위해 그림에게 말을 걸어볼까? 아이의 미래도 궁금하지만 잠시 접고, 지나온 삶 그리고 지나온 시간보다 훨씬 짧게 남은 나머지 시간을 살아갈 답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마음이 든다.


책을 덮고서도 잔상이 남는 그림은 윌리엄 맥그리거 팩스턴의 <스튜디오를 떠나며>이다. 뒤돌아보는 여인의 눈빛.

'단정하고 자신감 있는 차림새의 여인이 무언가 말을 건네는 듯한 눈빛이다. 이 장면을 보면 우리는 현재의 상황에 맞게 각자 상상할 수 있다. 근심이나 불안의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여인의 단호한 표정이다. 다가올 일들에 대해 전혀 두렵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당당하고 담대한 태도마저 느껴진다. (p. 271)'

그림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문밖으로 나서다 말고 뒤돌아서 그림 속 여인의 눈빛이 우리에게 건넨 말은 마치...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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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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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편의 글은 작가 정지아의 이야기, 작가가 술잔을 부딪치며 사람들과 만난 곳,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만의 유머가 담긴 글이어서 웃음 짓고 읽지만 꼭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술은 친구를 불러 모은다. 구례 정 작가의 집을 드나드는 친구들은 손님을 데려온다. 술은 그 손님과 사이를 좁혀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아득하고 어두워도 술을 마신 사람의 감각은 훤히 열려 잎사귀가 땅에 내려앉는 소리마저 보인다.

사정이 있어서 그리 살 수 없어서 원하는 삶, 한이 된 삶을 살아보고픈 소망을 술에 담아내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이었으니 참으로 귀했을 소주를 부어 만들어준 계란밥, 그 밥을 장손도 아니고 동생의 딸에게 건네준 그 마음 때문에 어쩐지 나는 큰아버지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도 어쩌면 손주에게 계란밥 만들어주고 고구마 구워주는 따스하고 평범한 남자로 살고 싶지 않았을까? (p. 105)'

삶에 무게가 가슴에 얹혀 있다면 그것을 내려보내는 소화제는 술이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붉은 가슴으로 가슴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는 수줍은 고백도 하게 하고, 아버지가 담근 뱀술은 한 학기 등록금 대출을 가능하게 한 교수님 배려의 깊음을 더 깊게 만들어버린다.

달았던 술이 어떤 땐 쓰고, 쓴 술이 어떤 땐 달다. 마음에 담고 있던 말도 술의 힘을 빌리면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해묵은 오해를 풀어낸다. 상처를 드러내며 울고 그 상처에 술을 부어 보듬으며 같이 울고 웃는다. 술은 관계의 유통기한을 연장시켜 놓는 힘을 발휘한다.


무엇이 정지아 작가를 술꾼이 되게 만들었을까? 사람이란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소설이란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아직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모른다. 모른다기보다 어렵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술 없이 말을 시작하고, 술 없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어렵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pp. 310, 311)'

술은 마시지 않는 나야말로 정작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먼저 말을 걸지 못할뿐더러 누군가의 삶에 엮기는 걸 힘들어하는데... 그래서 정지아 작가는 술은 마신다는데... 그렇담 사람이 좋은 나도 이제 나도 술을 마셔야 하나?

정지아의 글에,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에 술 향기가 가득하다. 이야기에 취한다. 정지아 작가와 연을 맺은 사람들, 그들 이야기에 또 취한다. 혹시 취해서 쓴 글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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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3 - 애도의 방식
안보윤 외 지음 / 북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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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어떤 사람들일까? 대상 수상 작가와 인터뷰한 김유태 기자는 '명확하고 선명한 답이 없는 질문을 만들기 위해 자기 생의 일부를 기꺼이 세상에 내어주는 (p. 83)'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번에 수상한 작가들도 작품을 통해 자신들의 삶에 잇대어서 만든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에서 주인공 재아는 처음 만난 사람들의 취향에 거리를 둔다. 재아 자신의 취향이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취향에 계급을 부여한다. 김병운의 <세월은 우리에게 어울려>에서 '나'는 퀴어 삼촌을 둔 친구 장희와 부산을 방문해 죽은 줄 알았던 삼촌을 만난다. 알고 보니 사회의 시선을 피해 숨어있는 삼촌의 삶은 전해 들은 것과 다르게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

김인숙의 <자작나무 숲>에서 작가인 주인공의 할머니는 '쓰레기 호더'다.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자 그동안 모아놓은 쓰레기와 함께 유산을 상속받게 된다. 애지중지 모은 할머니의 쓰레기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가치가 없는 것들이다. 묻거나 태워버린다.

'이것은 내 이야기인가, 할머니의 이야기인가 아니면 소설 속이 야기인가. 참으로 오랜만에, 그러니까 거의 한 세기 만인 듯, 빨간 줄로 죽죽 그었던 문장이 떠오른다. 빨간 줄로 죽죽 그은 후 쓰레기가 되어버렸던 문장. 그건 살인마인 아빠에 대한 문장이 아니라 그토록 생생하다고 호평받았던 할머니의 쓰레기에 관한 문장들이었다. 그 문장을 지금은 외우지 못해 대화로만 기억한다. (p. 203)'

신주희의 <작은 방주들>은 직장 생활의 구조적 부조리 피해 대상인 여성을, 그리고 지혜의 <북명 너머에서>에서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가족을 먹여살리는 주인공 성자가 젊은 시절 희망이었던 언니 조옥을 잃어버리고 기억을 잃은 남편에게서조차 잊히는 여성의 삶을 그린다.


대상 수상 작가 안보윤의 <애도의 방식>은 학생 간에 폭력을, 자선작 <너머의 세계>는 학생과 부모 그리고 교사들이 동료 교사 한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애도의 방식>에서 동주는 승규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해왔다. 동전을 던져 '앞'인지 '뒤'인지를 묻고 틀리면 때린다. 동전의 앞뒤를 결정하는 건 승규 마음이다. 동주가 이런 승규의 결정을 순순히 따르는 건 굴종이다. 이어지는 폭력은 신체에 고통을 준다. 평소와 같이 승규가 동전을 내밀자 동주는 승규가 임의로 바꿀 수 있는 '앞' '뒤'가 아닌 '호랑이'라고 대답한다. 바로 이때, 동주는 주먹을 피해 앉았고 승규는 공사 중이던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다.

이제 학교폭력을 당해왔다는 사실이 살해 동기가 된다. 동주가 혐의를 벗는 방법은 부정이다. 이제까지 시달렸던 굴욕과 고통은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뉴스로 학폭을 전해 듣지만 사건이 변질돼 우리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또 이슈가 되면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댄다. 그리고 또 잊고...

'애도(mourning)란 사랑하는 이의 죽음에서 오는 슬픔을 일컫는다. 정신분석학에서 '성공적인' 애도란 상실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실감의 비애 속에 함몰되지 않고 남은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p. 76)'

피해자는 잊을 수 없어 굴욕과 고통은 해결되지 않는다. 모호한 상태로 남아 애도에 성공하지 못할뿐더러 승규의 죽음으로부터도 벗어나지 못한다. 삶의 일부분을 매듭짓지 못해 새로운 삶을 살기도 어렵다.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구조적인 힘과 논리에 개개인은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작가들은 명확하고 선명한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을 한다. 답이 없으니 이제까지 살아온대로 관성을 유지하며 살 것인가? 그렇다면 작가들은 또 우리에게 질문할 것이다. 멈추고 가던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우리가 갈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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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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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는 한국문학 번역가인 안톤 허의 일과 삶을 담은 에세이다.
'그래서 말한다. 번역은 쉬울지 몰라도, 번역가는 힘들다고. 나는 한국문학 번역가다. (p. 25)'

해외 작품을 우리글로 옮기는 작가도 그리 흔치 않을텐데, 우리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다니, 정말 드물겠다고 짐작했는데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한영 문학번역가는 세 명 남짓이다. 게다가 영어권에 한국문학 작품이 일 년에 열 권만 출판돼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저자 안톤 허의 대단함은 지금부터다. 다 알다시피 그는 지난해 자신이 번역한 <저주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두 작품이 부커상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올랐다. "TWICE! (두 권이나!)" 일 년에 열권 남짓 번역돼 출간되는 작품 중, 세 명 정도의 한영 문학번역가가 있다 치고... "TWICE! (두 권이나!)"말이다. 안톤 허는 부커상 역사상 더블 롱리스팅이 된 세 번째 작가다.

이런 대단한 작가의 삶을 읽는다는 것, 그가 하는 일은 안다는 것, 그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 이 진리를 십 대 때 알았더라면,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한 번뿐인 소중한 이십 대 시절을 그처럼 무의미하게 낭비하진 않았을 텐데... (p. 63)'

이런 당당함은 또 뭔가. 내 아이들이 이런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프린스턴대학교 강연 가운데 언어가 권력 도구로 쓰인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제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접근이어서 흥미로웠다.

우선 왜 대기업 지원자가 TOEIC으로 영어 실력을 입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대기업의 모든 사원들이 반드시 영어 실력이 출중할 필요가 있을까? TOEIC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비싼 과외나 유학을 보낼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원자의 경제 계층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아닐까라는 것이 저자가 품은 생각이다. 영국에 존재하는 귀족처럼 한국에는 영어 귀족층이 존재한다.

'전미번역상 수상자 테자스위니 니란자나 교수는 <번역의 위치화 Siting Translation>라는 저서에서 번역의 식민주의적 뿌리 및 식민지 현지 통번역가들이 '언어 하인'으로 간택되는 방식에 대해 논합니다. (p. 214)'

지주로부터 소작인들의 관리를 위임받은 마름이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보다 더 한국인을 괴롭힌 앞잡이들처럼 지배자의 언어를 중간에서 선점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 편에겐 군림하지만 결국 힘 있는 자의 하인이 됨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리다. 즉 번역이 도착어의 시중드는 행위가 돼서는 안된다는 편에 저자는 서 있다. 번역가가 언어에 열등감을 가진다면? 옳지 않다.


한국문학 번역가로서 번역 일을 하며 겪은 저자의 경험담은 국수주의, 차별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담론으로 이끌어 낸다. 관습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저자의 낯선 모습이 신선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작가란 연락을 먼저 하기보다 받는 입장의 다소 수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듯해 안톤 허의 삶이 그의 글이 좋았다. 흔치않은 삶을 만나는 경험도 특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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