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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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네 편의 글은 작가 정지아의 이야기, 작가가 술잔을 부딪치며 사람들과 만난 곳,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작가만의 유머가 담긴 글이어서 웃음 짓고 읽지만 꼭 코끝이 찡해지고 만다.

술은 친구를 불러 모은다. 구례 정 작가의 집을 드나드는 친구들은 손님을 데려온다. 술은 그 손님과 사이를 좁혀놓는다. 세상이 아무리 아득하고 어두워도 술을 마신 사람의 감각은 훤히 열려 잎사귀가 땅에 내려앉는 소리마저 보인다.

사정이 있어서 그리 살 수 없어서 원하는 삶, 한이 된 삶을 살아보고픈 소망을 술에 담아내기도 한다.
'알코올중독이었으니 참으로 귀했을 소주를 부어 만들어준 계란밥, 그 밥을 장손도 아니고 동생의 딸에게 건네준 그 마음 때문에 어쩐지 나는 큰아버지를 미워할 수가 없다. 그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그도 어쩌면 손주에게 계란밥 만들어주고 고구마 구워주는 따스하고 평범한 남자로 살고 싶지 않았을까? (p. 105)'

삶에 무게가 가슴에 얹혀 있다면 그것을 내려보내는 소화제는 술이다. 아이리시 위스키는 붉은 가슴으로 가슴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다는 수줍은 고백도 하게 하고, 아버지가 담근 뱀술은 한 학기 등록금 대출을 가능하게 한 교수님 배려의 깊음을 더 깊게 만들어버린다.

달았던 술이 어떤 땐 쓰고, 쓴 술이 어떤 땐 달다. 마음에 담고 있던 말도 술의 힘을 빌리면 서슴없이 말할 수 있다. 그래서 해묵은 오해를 풀어낸다. 상처를 드러내며 울고 그 상처에 술을 부어 보듬으며 같이 울고 웃는다. 술은 관계의 유통기한을 연장시켜 놓는 힘을 발휘한다.


무엇이 정지아 작가를 술꾼이 되게 만들었을까? 사람이란다.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소설이란 사람의 이야기니까. 그런데 아직도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을 잘 모른다. 모른다기보다 어렵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술 없이 말을 시작하고, 술 없이 누군가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게 나는 이 나이 먹도록 어렵다. 그래서 술을 마신다. (pp. 310, 311)'

술은 마시지 않는 나야말로 정작 사람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데, 먼저 말을 걸지 못할뿐더러 누군가의 삶에 엮기는 걸 힘들어하는데... 그래서 정지아 작가는 술은 마신다는데... 그렇담 사람이 좋은 나도 이제 나도 술을 마셔야 하나?

정지아의 글에, 에세이 <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에 술 향기가 가득하다. 이야기에 취한다. 정지아 작가와 연을 맺은 사람들, 그들 이야기에 또 취한다. 혹시 취해서 쓴 글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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