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 - 한국문학 번역가 안톤 허의 내 갈 길 가는 에세이
안톤 허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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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는 한국문학 번역가인 안톤 허의 일과 삶을 담은 에세이다.
'그래서 말한다. 번역은 쉬울지 몰라도, 번역가는 힘들다고. 나는 한국문학 번역가다. (p. 25)'

해외 작품을 우리글로 옮기는 작가도 그리 흔치 않을텐데, 우리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다니, 정말 드물겠다고 짐작했는데 역시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한영 문학번역가는 세 명 남짓이다. 게다가 영어권에 한국문학 작품이 일 년에 열 권만 출판돼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저자 안톤 허의 대단함은 지금부터다. 다 알다시피 그는 지난해 자신이 번역한 <저주토끼>, <대도시의 사랑법> 두 작품이 부커상 롱리스트(1차 후보)에 올랐다. "TWICE! (두 권이나!)" 일 년에 열권 남짓 번역돼 출간되는 작품 중, 세 명 정도의 한영 문학번역가가 있다 치고... "TWICE! (두 권이나!)"말이다. 안톤 허는 부커상 역사상 더블 롱리스팅이 된 세 번째 작가다.

이런 대단한 작가의 삶을 읽는다는 것, 그가 하는 일은 안다는 것, 그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부모님 말은 절대 들어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은 자기 인생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다. 실수를 해도 자신의 실수를 하는 것이 낫다. 인생을 망쳐도 내 손으로 망쳐야 한다. 이 진리를 십 대 때 알았더라면, 가장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한 번뿐인 소중한 이십 대 시절을 그처럼 무의미하게 낭비하진 않았을 텐데... (p. 63)'

이런 당당함은 또 뭔가. 내 아이들이 이런 자신감으로 세상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프린스턴대학교 강연 가운데 언어가 권력 도구로 쓰인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이제까지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접근이어서 흥미로웠다.

우선 왜 대기업 지원자가 TOEIC으로 영어 실력을 입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다. 대기업의 모든 사원들이 반드시 영어 실력이 출중할 필요가 있을까? TOEIC 점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비싼 과외나 유학을 보낼만한 여유가 있어야 한다. 지원자의 경제 계층을 파악하려는 의도가 아닐까라는 것이 저자가 품은 생각이다. 영국에 존재하는 귀족처럼 한국에는 영어 귀족층이 존재한다.

'전미번역상 수상자 테자스위니 니란자나 교수는 <번역의 위치화 Siting Translation>라는 저서에서 번역의 식민주의적 뿌리 및 식민지 현지 통번역가들이 '언어 하인'으로 간택되는 방식에 대해 논합니다. (p. 214)'

지주로부터 소작인들의 관리를 위임받은 마름이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보다 더 한국인을 괴롭힌 앞잡이들처럼 지배자의 언어를 중간에서 선점해, 전달하는 과정에서 한 편에겐 군림하지만 결국 힘 있는 자의 하인이 됨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리다. 즉 번역이 도착어의 시중드는 행위가 돼서는 안된다는 편에 저자는 서 있다. 번역가가 언어에 열등감을 가진다면? 옳지 않다.


한국문학 번역가로서 번역 일을 하며 겪은 저자의 경험담은 국수주의, 차별 등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담론으로 이끌어 낸다. 관습과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저자의 낯선 모습이 신선하다. (나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작가란 연락을 먼저 하기보다 받는 입장의 다소 수동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 아닐까라는 고정관념이 깨지는듯해 안톤 허의 삶이 그의 글이 좋았다. 흔치않은 삶을 만나는 경험도 특별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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