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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연대의 경제학 - 가부장제 체제의 부상과 쇠락, 이후의 새로운 질서
낸시 폴브레 지음, 윤자영 옮김 / 에디토리얼 / 2023년 10월
평점 :
친구들과 부부동반 모임을 할 때마다 지치지 않고 반복되는 주제는 자식들의 결혼과 자녀 출산에 대한 이야기다. 부모 자격으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고 말할 때 난감한 상황에 이르게 하는 다 큰 아이의 말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는데 우리 모두 의견이 일치한다. 그럼에도 결혼만큼은 했으면 좋겠다고 강요할 수 있지만, 아이를 가지라는 말은 차마 못 하겠다고 입을 모은다.
낸시 폴브레의 <돌봄과 연대의 경제학>은 가부장제와 경제, 사회, 정치를 아우르는 교차정치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으로 돌봄 노동이 얼마나 과소평가되었고, 가족, 경제, 사회 전반에 얼마나 큰 영향이 미쳤는지를 설득력 있게 파헤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낸시 폴브레는 매사추세츠 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로 돌봄과 젠더를 오랫동안 연구한 페미니스트 경제학자다. 그는 경제를 협소하게 정의하는 전통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그동안 무시된 가족과 여성이 담당해온 무상 돌봄 노동을 경제적인 것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1부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등 기존 이론들의 개념을 설명하며 재정의하고 확장한다. '재생산' 개념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생산 비용의 분배 문제도 중요하게 다룬다. 2부에서는 가부장제 아래에서의 착취, 자본주의 제도 그리고 복지국가, 젠더 불평등, 돌봄 비용 등 가부장제 체제의 부상과 쇠락 그리고 최근의 백래시에 이르는 새로운 질서까지를 서사적으로 서술한다.
'가부장제 체제란, 가부장적 권력 구조가 다른 집단 권력 구조와 역사적으로 고유한 방식으로 중첩되고 교차하는 체제를 뜻한다. 권력 구조는 공통점을 가진다. 법, 이념, 자산 분배는 특정 집단에게 집단적 이득과 손해를 안긴다. 평평하지 않은 경기장과 부러진 사다리, 빈곤의 덫, 유리천장, 모성 벽, 끈적끈적한 바닥 같은 언어는 구조적 제약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p. 21)'
돌봄 노동을 여성이 전담해서 수행하게 된 것이 생물학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니다. 저자는 그 원인을 가부장제에서 찾는다. 여성이 돌봄 노동에 특화하도록 가부장 제도가 경제, 사회 제도와 협동했고, 부산물로 힘을 얻어 강화했다. 가부장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돌봄 노동을 착취했다.
돌봄 노동도 생산을 수반하는 노동력이다. 생산과정에서 창출된 돌봄이라는 가치를 권력으로 몰수한 셈이 되니 착취가 되는 것이고, 부당하게 여성 집단을 이용했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개인의 비용을 들인 돌봄은 아이라는 '공공재' 키워냈지만, 그 노동의 편익은 돌봄 노동을 한 엄마에게만 고스란히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사회가 나눠가진다. 돌봄 노동을 제공하지 않고 아이라는 공공재를 편익만 누렸다면, 그 사람은 자본주의에서 그토록 싫어하는 무임승차에 해당되기도 한다. '공공재' 개념의 돌봄 논리는 돌봄에 왜 국가의 재정이 지원돼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국가가 아이를 양육하는 비용을 양육자에게 별로 지원하지 않으면서 그 아이가 내는 세금으로 양육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있기 때문에, 출산율은 대체 수준 이하로 떨어졌고 세대 간 이전의 지속가능성은 위태로워졌다 (p. 272)'
국가 재정이 돌봄에 지원되지 않는 한, 돌봄 불이익이 줄어들지 않는 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아이를 가지란 말을 계속 못할 것이다.
'여성에게 이타적 행동을 강제할 것이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고 보상하는 새로운 형태의 집단적 헌신을 강제할 제도가 필요하다. (p. 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