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식창업에 적합한 사람인가? - 창업 전 반드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
김상진 지음 / 예미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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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식이라면 나도 숟가락은 아니어도 젓가락 한 개 정도는 얹을 자격이 있다. 직장에서 80여 개 점포에 연 매출 800억 원 규모의 식음 영업을 5년여 동안 총괄했었다. 트렌디한 점포를 유치해 객단가도 꽤나 올려놓았다.

머천다이즈는 재고 부담이 있는 큰 반면, 외식업은 상대적으로 초기 투자비가 많이 필요하다. 이자,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장사가 안될 경우, 그동안 땀 흘려 모은 투자비를 몽땅 날려버릴 확률이 그만큼 높은 업종이 외식이다.

그런데다 요즘은 패션만큼이나 외식 트렌트가 빨리 변한다. 같이 일하던 팀원의 말이 떠오른다. "맛집 찾아다니다가 일 년여 흘러 이미 갔던 맛집을 다시 찾아가면 없어졌더라고요..." 한때 곳곳에서 찜닭 팔던 곳은 대부분 사라졌다. 몇 년 전 가수 화사가 돌풍을 일으켰던 곱창집도 이젠 많이 정리된 듯하다.

저자가 제시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시스템의 자료(2022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식업 점포 수는 총 70만 9,000개로 인구 5,100만 명 기준으로 본다면 72명당 점포 1개가 운영되는 꼴이라고 한다. 돈 벌기 힘든 구조다. 외식은 어설픈 귀동냥으로 '치킨집, 빵집 또는 카페나 하지 뭐~'라는 식으로 섣불리 뛰어들만한 업종이 절대 아니다.


같은 그룹에서 직장 생활을 같이해 나와도 꽤나 인연이 깊은 이 책의 저자는 외식업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다. 외식창업과 관련된 책을 냈다고 했을 때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사서 펼쳤다. '이런 게 실용서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고, 고생과 노력의 흔적이 책 곳곳에 묻어있었다.

저자는 외식창업과 관련해 A부터 Z까지 모두 알려줘야겠다고 작심한듯하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한 권의 책 <나는 외식창업에 적합한 사람인가>로 실무적인 것까지 다 커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또 창업에 주의할 점을 무엇인지 꼼꼼히 알려준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얻은 실제 운영 사례가 각 장마다 실려있는데,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로 창업을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은 1) 자신이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하여 미흡한 부분을 보완한 뒤에 여유를 가지고 창업하라고 충고하고, 2)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업종을 선택하여 가족의 동의를 받아 자신감을 가지고 진행한다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는 방향성을 제시한다. (p. 9, 추천하는 글)'


저자는 우선 창업을 온몸으로 막아서서 설득한다. 그런 이유 가운데 하나가 직장 다닐 때 즐기던 주말이나 공휴일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직장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역 근처에 만화방을 차렸었다. 단골의 발길이 끊길까 봐 명절에도 가게 문을 닫을 수 없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었다.

그럼에도 창업이란 도전을 하겠다면,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하기보다는 프랜차이즈 가맹 창업을 저자는 권한다. 점포 창업과 운영 노하우를 익히기에 쉽기 때문이다. 내가 외식업에 적합한 사람인지는 저자가 마련한 '외식창업 셀프 진단툴'로 평가 가능하다. 내게 적합한 브랜드와 상권 살펴보기, 직원관리, 고객 관리까지 모든 정보가 저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얻은, 바로 영업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더욱 가치가 있다.


지금 창업을 고려하거나 준비하고 있다면,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웠거나 퇴직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두 경우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절박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 철저히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외식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론서가 아닌 경험에서 만들어낸 실용서이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더라도 돈을 좇지 말고, 행복을 찾는 창업을 추천한다. 즉 떼돈을 벌려는 욕심을 버리고 적정 수익에 만족하면서 운영한다면 오래갈 수 있다. (p. 214,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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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루이비통 - 제주를 다시 만나다, 개정증보 2판
송일만 지음 / 맑은샘(김양수)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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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첫 여행은 가족이 함께했다. 제주도 해안 도로를 따라 3박 4일 동안 한 바퀴 도는 계획을 다른 사람들의 여행 후기를 참고해서 내 맘대로 짰다. 잠잘 곳도 하루 여행을 마치고 도착할 만한 곳에 예약했고, 밥 먹을 곳도 둘러볼 명소도 정해두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다니, 가는 곳곳마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감탄했다.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얼른 사진 찍고 차에 올랐다. 빡빡한 일정이어서 아내와 두 아이는 내 지휘에 따라 숨 가쁘게 움직여야 했다. 정신없어했다.


제주 토박이 송일만 작가의 <어머니의 루이비통>에는 저자의 어린 시절 기억에 남은 제주, 그리고 해녀였던 어머니, 그 시대에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같았던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 이야기, 원래의 모습이 사라지며 변해가는 제주에 대한 아쉬움이 담겼다.

'제주 바당(바다)이 죽어가고 있다.
어머니의 품보다 넓고 깊은 바당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 이제는 제주가 토해 내는 모든 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바당 자신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리고 검붉은 건강한 웃음이 아닌 핏기 없는 하얀 울음으로 절규를 하고 있다.
나 아프다고, 나 좀 살려달라고
한평생 제주 바당과 같이한 어머니와 삼춘들의 놀이터가 사라졌다. 그리고 생활이 사라지고 있다.
조금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 (p. 5)'


올래는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그래서 길보다는 집 앞 마당과 큰길 사이의 공간 개념에 더 가깝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곳이 올래입니다
만남과 헤어짐, 반가움과 아쉬움, 우리의 정서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그리고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 보약 같은 휴식도 있었던 그곳 (p. 70)'

그랬던 올래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면서 트레킹 코스가 돼버렸다. 올래 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제주 사람들은 사생활을 도둑맞았다. 더 이상 제주의 정서가 머물던 올래가 아니다. 제주도는 올래를 잃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제주 여인들이 끼고 살았던 구덕도 사라져간다. 바람이 많은 제주에서 짐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건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래서 제주의 어머니들은 육지 여성들이 핸드백을 들고 다니듯 구덕을 지고 다녔다.

주로 고는 대구덕인 곤대 바구리를 가지고 장 보러 다녔지만, 물질하러 갈 때는 출구덕을 시작으로 상군이 되면서는 물건을 많이 담아서 옮길 수 있는 지는 구덕, 질구덕을 비로소 사용했다. 질구덕은 힘든 노동을 상징했다고 한다. 그 밖에도 풀이나 삼베를 깔아 애기는 담는 애기 구덕, 헤진 구덕을 땜빵해 재활용한 바구리가 있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 건물 벽면에는 늘 태악과 그 옆에 출구덕, 질구덕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는 허벅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허벅이 없어지더니 지금은 태왕과 출구덕, 질구덕 모두가 사라졌다. (p. 186)'

저자가 그 어느 것보다 구덕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건, 제주의 어머니들에게 그것이 가족을 지키는 도구였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견뎌준 백이었기 때문이었다. 루이비통보다 더 소중하고 자랑할 만한 명품 백이어서 말이다.


몰랐을 때라면 모를까, 이제 알게 된 이상 제주 4.3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폐촌이 되어버린 다랑쉬 마을에도 제주 전체를 핏빛으로 물들인 토벌대가 찾아왔다.

'그래도 나오지 않자 굴 양쪽에 검불을 피워 연기로 그들을 질식사시켜 버렸다. 당시 굴속에 있던 사람들은 머리를 돌 속에, 땅속에 박은 채로 죽어갔고 그들의 눈, 코, 귀는 피가 흘러 있었다고 한다. 한 사람은 손톱이 없을 정도로 땅을 파다 죽어있었다고 한다. (...)
44년 만에 11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는데 9살에서 50대 여성에 이르기까지 전부 민간이었다고 한다. (...) 발견 직후 당국은 재빠르게 이들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고 바다에 수장해 버렸다. (p. 227)'

제주의 부모들은 자식 걱정에 약속이라도 한 듯, 억장이 무너지는 한을, 그 4.3을... 말하지 못하고 입다물었다. 한 세대가 지나도록 공포는 지속됐고 그 공포는 내가 이렇게 살았노라고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을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벙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제주에 간다면 그들의 잊지 못할 기억에 귀 기울여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생겼다.


내가 몸담았던 해병대는 제주도 출신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끼리 있을 때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신기하기만 한 그들의 언어로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가 알던 삼촌이 제주도에선 그 삼촌이 아니었다. 눈물 그렁그렁 한 눈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면서 그 사투리의 쓰임새를 알게 됐다. 삼촌이란 말에 어떻게 그리 여럿 감정이 섞여있었던지. 제주어가 가득한 송일만 작가의 제주 이야기는 우리가 몰랐던 그의 제주도, 다른 버전의 제주도를 보여준다.

'나는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기보다는 해녀들이 구덕에 삶을 지고 다녔던 길을 천천히 걸으며 그분들의 삶과 사랑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p. 5)'

우리 가족의 제주도 첫 여행은 제주도에 사는 분들의 삶과 사랑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바쁜 여행이었다. 다음 제주도 여행은 천천히 걷는 송일만 버전의 제주도를 알아가는 여행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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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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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담긴 그릇...
잠든 엄마를 내려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
그렇다면 엄마의 몸에는 칠십일 년이 담긴 셈이다. (p. 13, 첫 문장)'

어머니의 몸엔 육십구 년이, 아버지의 몸엔 백 년이 담겼었다. 어머니는 오열하며 친구같았던 큰 딸의 죽음을 견뎌내야 했었다. 아내를 이십구 년이나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는 큰 아들 그리고 동생 셋과 누님 한 분의 죽음에 눈물을 삼키며 힘든 삶을 달랬고 지난해 십이월 자신의 죽음을 맞이했다. 이 소설을 읽으면 부모님의 그릇에 각각 담긴 육십구 년, 백 년이란 시간을 거슬러 기억이 닿는 곳까지 더듬어 갔다.


<겨울을 지나가다>는 작가정신의 '소설 향' 시리즈의 여덟 번째로 조해진의 중편 소설이다.
'언제나 그랬다.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젠가 크게 발을 헛디뎌 무너져 내렸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비축해두는 일이고,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불쑥 나타난 타인 앞에 잠시 멈춰 그가 나쁜 건지 아픈 건지를 헤아려볼 수 있는 숨을 준비해두는 일이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이 시대의 가장 약한 존재들의 이야기를 들어두는 일이다. (p. 6, 김혼비)'

정연의 엄마는 정연의 동생 미연이 일곱 살 일 때 이혼했다. 남편이 다른 살림을 차린 후 기사식당에서 일하며 딸 둘을 키웠다. 미연이 대학 가던 해, 고향인 J읍에 내려와 칼국숫집을 하며 지내던 엄마는 췌장암 선고를 받는다. 생업과 아이들이 때문에 간병 도우미를 부르고 치료비 감당은 엄마의 사망 보험금으로 해결하기로 두 딸은 마음먹는다. 호전될 기미가 없자 치료를 포기하고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고, 그런 엄마를 정연은 일을 포기하고 두 달 남짓 곁에서 돌본다.

식당 딸린 집과 키우던 강아지 정미를 남긴 엄마의 임종을 정연은 마주한다.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과 자신의 미래 걱정에 엄마의 아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 그리고 엄마를 잃은 슬픔으로 정연은 복잡하기만 하다. 정연은 엄마 집에 혼자 남아 며칠 지내기로 한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p. 132)'

겨울의 문턱 동지冬至에 찾아온 엄마의 죽음, 대한大寒과도 같은 살을 에는 듯 깊은 슬픔, 이 모두를 견뎌내고 나면, 겨울을 끝내는 우수雨水가 찾아오듯 깊은 상처에 딱지가 생겨 아픔을 감싸게 마련이다. 정연이 엄마를 애도하는 동안 엄마와 관계 속에 남겨진 사람들, 미용실 혜란 아줌마, 노파를 비롯한 이웃들, 목공소 남자 영준이 찾아와 위로한다. 그리고 꼬리를 흔들며 집 밖으로 이끄는 정미가 정연을 일으켜 세운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p.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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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필사 문장 30 좋은 습관 시리즈 34
김선영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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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이어서 그런가?) 이 책을 읽고 글을 남기려고 하니 어떤 상황이 떠올라 빙긋 웃음 짓게 된다. 어릴 때 글짓기 숙제를 하는데 옆에서 선생님이 지켜보는 느낌이랄까? 창피해서 팔로 가리고 쓰고 싶은데 그러자니 치우라고 할 것만 같아 고민스럽다. 하필 또 잘 한다며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이라면 더욱더 난처한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PT 받듯 문해력을 익히는 <어른의 문해력>, 깔끔하고 호감가게 글 쓰는 법을 알려주는 <어른들의 문장력>에 이어, 13년 동안 방송 글을 썼던 김선영(글밥) 작가가 이번에는 '지난 4년 동안 매일 필사했던 4,400여 글귀 중 '글쓰기에 도움이 될 만한 문장을 고르고 골라 30개로 추려 문장이 왜 마음을 움직였고, 글을 쓰는데 어떤 도움이 되는지 하나씩 설명 (p. 14)'한 책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내놓았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나로서는 책장을 펼쳐 목차만 살펴봐도 구미가 당겨 안경을 고쳐 쓰게 된다. 어떤 루틴을 만들어야 글을 꾸준하게 쓸 수 있을지, 다채로운 표현을 갖춘 훌륭한 글은 어떤 시선으로부터 얻게 되는지, 인간미 넘치고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글 쓰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다룬다.

'이 책은 '필사의 문'을 열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성이는 분들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앞으로 30일 동안 매일 초대장을 보낼 테다. (p. 14)'

김선영 작가는 '나도 잘 쓰고 싶다'라는 바람 때문에 필사한다고 말한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데 필사가 두 가지 모두를 만족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재료가 되는 배경지식을 넓힐 수 있고, 다양한 글 구조를 접하다 보니 문해력과 문장력이 좋아진다. 필사한 글에서 생각을 이어갈 수 있으니 글감이 마르지 않는다. 그리고 어휘력이 풍부해져 단조로운 글에서 탈출할 수 있다.


'마감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 두 바퀴가 당신의 멈춰있는 차를 굴릴 테니까. (p. 95)'


짧은 글이지만 글을 쓸 때 나 나름 추구(만) 하는 절차가 있다. 어떤 내용을 담을지 구상하고 (첫 문장 쓰기가 어렵지만) 일단 앞뒤 가리지 않고 글을 쓴다. 단락의 순서를 바꾼 다음 정확한 자료를 찾아가며 글 내용을 보완한다. 맞춤법 검사기의 도움을 받아 글을 수정한다. *중복되거나 우리말로 바꿀만한 낱말을 찾아 고친다. 그리고 읽어본다.

읽다가 턱 걸리면 표현을 바꾸거나 문장을 아예 뜯어고친다. 다시 맞춤법 검사를 하고 글쓰기를 마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중복되거나~~'부터 절차를 생략한다. '오늘이 리뷰 마감이니까 다음부터...' '그래도 추구하는 절차이니 지켜야지...' 갈등하다가 결국 게으름에게 결정권을 내준다. (이 후기도 결국 게으름의 결정에 따를 것이 뻔하다. 오늘이 마감일이니...)

'문장의 리듬감은 미적인 쾌감도 준다. 우리가 글을 읽는 이유는 정보와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만은 아니다. 즐겁기 때문이다. 즐거움은 내용에서도 오지만 형식에서도 온다. 문장이 지닌 균형과 변주의 팽팽한 대결이 주는 긴장감이다. 리듬이 구현한 아름다움이다. 리듬감이 있는 문장을 눈으로 읽다 보면 마치 속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같다. 베껴 쓰면 리듬은 더욱 깊숙하게 침투하여 내 몸에 달라붙는다. 가끔 시를 필사하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p. 170)'

내 글에 제일 구현하고 싶은 것이 '글의 리듬감'이다. 김선영 작가가 써놓은 (위의) '리듬감의 아름다움'에 대한 글귀를 읽는 순간 더 간절해졌다. 그런 글이 완성돼서 흥얼거리듯 즐겁게 읽는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글을 발췌해두고 가끔 읽기만 했지 필사는 하지 않았다. '리듬이 깊숙하게 침투'하도록 본격적으로 필사를 해야 할까 보다.


'누군가 '자기 계발의 끝판 왕은 책 쓰기다'라는 말을 했다는데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책을 쓰면서 성장한다. 책을 쓸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애쓴다. 애쓴 만큼 더 자란다. 책이 나오면, 나는 내가 내뱉었던 말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책을 쓰면 더 좋은 삶을 살게 된다. (pp. 264,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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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페이지 영어 어원 365 - 언어학자와 떠나는 매혹적인 어원 인문학 여행,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김동섭 지음 / 현대지성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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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공연장 사업성 검토 당시 Cirque Du Soleil의 공연 <퀴담>을 관람한 적이 있다. Cirque Du Soleil의 공연장 대부분은 무대가 가운데 있는 원형이다. 도시를 이동하며 공연하기도 하는데 둥근 천막의 조립식 공연장을 가지고 다닌다. 프랑스어 'Cirque'가 서커스란 뜻으로 우리말로 '태양의 서커스'라고 한다.

로마 제국은 우민 정책을 통치수단으로 삼았는데 서커스 circus 제공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이때 서커스는 곡예단이 아니라 전차 경주가 열리는 원형 경기장을 가리킨다. (특히 지방을 도는) 서커스, 쇼, 원형광장 등을 뜻하는 단어 circus는 말과 전차가 달리던 로마의 서커스에서 유래됐다.


어원 전문 학자 김동섭 교수의 <1일 1페이지 영어 어원 365>는 제목처럼 '영어 단어 어원에 얽힌 역사, 문화, 신화, 경제, 과학, 종교, 예술, 음식, 스포츠 등 다양한 히스토리를 하루에 하나씩 한 페이지 분량으로 소개 (p. 9)'하는 책이다. 학생 시절, 속성으로 무작정 암기하며 단어를 익히는 공부가 아닌, 조금은 느릿느릿하게 풍부한 상상력으로 호기심을 자극해 가며 단어를 익히도록 도움을 준다.


어린 시절 방학이면 사촌들이 놀러와 함께 어울리곤 했다. 놀거리가 마땅치 않았다. 특히 여자 사촌들과 함께 놀거리는 더 없었다.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그렇고 칼싸움은 더더욱 어울려 놀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방에 둘러앉아 수수께끼를 풀었다. 이를테면
'앞으로 먹고 옆구리로 싸는 것은?'
'버스!'
ㅋㅋㅋ~ 어이없지?
'앉으면 멀어지고 일어서면 가까워지는 건?'
'천장!'
딸, 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헐~ 뭐야?'라며 어이없어 한다.
각 나라별 수도 맞추기도 단골이었다. 그래서 우리 세대가 그 어느 세대보다 수도를 많이 안다.

아일랜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라고 한다. 리차드 델리라는 사람은 하루나 이틀 안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 있다며 친구들과 내기를 했다. 친구들은 설마 하며 놀려댔다. 델리는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quiz'라는 말을 벽 여기저기에 썼다. 이튿날 낙서를 본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했고 결국엔 '수수께끼' 또는 '알 수 없는 이상한 것'이란 뜻으로 quiz란 단어를 사용했다.


고등학생 시절, 체육시간에 테니스 룰을 배우던 기억이 떠오른다. 스코어 방식이 낯설어 규칙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테니스의 점수는 1점, 2점...으로 올라가지 않고, 한 포인트 올릴 때마다 15, 30, 40으로 점수를 계산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0'을 '제로'가 아니라 'Love'라고 한다. 40 대 0을 '포티 제로'라고 하는 식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점수가 40 대 40이면 두 번 연속해서 이겨야 하는데, 이때의 점수를 '듀스 deuce'라고 한다. 탁구, 배구, 배드민턴 등이 듀스가 있는 스포츠 종목들이다.

듀스 deuce는 '숫자 2를 의미하는 프랑스어 deux에서 왔다. 즉, 두 선수의 점수가 똑같다는 뜻이다. 정작 어원을 제공한 프랑스어에서는 동점을 의미하는 égalité에갈리테로 용어가 바뀐 것을 보면, 영어가 옛날 전통을 더 잘 보존하고 있는 셈이다. (p. 386)'

아 참, 테니스에서 0대신 love를 쓰는 이유로 달걀이라는 프랑스어 l'œuf 뢰프의 발음이 영어의 love가 되었다는 썰이 가장 설득력 있다고 책에서 말한다. 달걀 모양이 0을 닮아서인가?


영단어가 갖고 있는 사연을 하나하나 읽노라면, 단어와 엮여있을법한 나의 추억이 생각나고 그 단어에 관한 또 하나, 나만의 스토리텔링을 하게 된다. 그 단어와 나 사이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보태 특별한 인연이 생긴다. 하루하루 새로운 영어 단어와 은밀한 둘만의 인연을 만들어 가고 싶다면 이 책을 꼭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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