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소무아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41
에밀 졸라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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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죽을 때도 가난한 것은 너의 잘못이다.' 빌 게이츠가 한 말이라고 한다. '35살이 될 때까지 가난하다면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건 당신 자신의 탓이다.' 이 말은 마윈이 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성공한 사람인 빌 게이츠, 마윈이 말했다는 것만으로 '맞아~'라고 열광하면서 청년들 사이에 유통된다.

'부자 되세요'와 '노오오오오오력'을 강요하고 세뇌하던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자란 세대들이다. 이를 신봉하며 자란 청년들은 자신들의 보잘것없는 신세를 부모 탓도 아니고 환경 탓도 시대를 잘못 만난 탓도 아닌 오로지 자신의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 탓으로 쉽게 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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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소무아르>는 "변두리 지역의 끔찍한 환경 속에서 야기되는 한 노동자 가족의 숙명적인 타락의 이야기이다. (p. 343, 작품 해설)'

제르베즈는 짐승을 도축하는 도살장과 인간들이 죽어나가는 병원 사이 허름한 봉쾨르 여관에서 파리로 함께 온 랑티에를 기다린다. 제르베즈는 한쪽 발을 절었고, 금발에 키가 크고 약간 마른 몸에 선이 고운 얼굴을 가진 스물두 살이었다.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랑티에와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의 엄마다.

랑티에는 에델과 바람이 나서 제르베즈와 두 아들을 버리고 떠났다. 세탁소에서 일을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던 제르베즈는 함석공 쿠포를 만나 결혼한다. 예쁜 딸 나나도 낳는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온다. 열심히 번 돈으로 세탁소를 차릴 가게를 알아보는 가운데 쿠포가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쿠포를 보살피며 돈을 다 써버린 제르베즈는 자신을 좋아하는 대장장이 이웃 구제에게 돈을 빌려 세탁소를 차린다.

세탁소도 잘 되고 잘 살아가던 중 또다시 불행이 찾아온다. 고주망태가 되어 목이 부러져 죽은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며 술을 입에 대지도 않던 구포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콜롱브 영감이 운영하는 주점 아소무아르를 드나들면서 알코올 중독에 빠진다. 게다가 여기저기 떠돌다가 다시 나타난 랑티에를 집안에 끌어들이기까지 한다.

쿠포와 랑티에는 제르베즈가 벌어온 돈을 뺏어 술과 여자로 탕진하며 제르베즈의 삶의 의욕마저 꺾어버린다. 마침내 제르베즈도 아소무아르를 찾아가 술을 마시고 폭식하며 몰락의 길에 들어선다.

제르베즈는 구걸하며 몸을 팔려고 하지만 목이 어깨에 묻힐 정도로 추하고 뚱뚱한 베르베즈를 원하는 남자는 더 이상 없다. 한편 춤을 추고 악을 쓰며 이상 증세를 보이던 쿠포는 제르베즈가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한다.

'"저분의 아버지가 술을 마셨나요?"
"네, 선생님. 그냥 남들하고 똑같이 조금 마셨어요. 술에 취한 날 지붕에서 떨어져서 죽었고요."
"어머니도 마셨나요?"
"그럼요! 선생님. 그냥 남들하고 똑같죠. 아시잖아요. 여기서 한 잔, 또 저기서 한 잔, 그렇게요. 아! 가족들은 아무 문제 없어요. 형제 중 하나가 어릴 때 경련으로 죽은 게 다예요."
의사는 꿰뚫을 것 같은 시선으로 계속 제르베즈를 바라보다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부인도 마시죠?" (...)
부인도 마시는군요. 조심하십시오. 술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보고 계시잖아요. 언젠가 부인도 죽게 될 겁니다." (p. 322, 아소무아르 2)

이따금 정신이 이상해져 쿠포 흉내를 내던 제르베즈, 굶주림에 어떤 모욕에도 반응하지 않는 상태가 되버렸다. 동네 사람들은 제르베즈에게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더러운 일을 시켰고, 더러운 걸 먹을 수 있는지 돈을 걸며 시키기까지 했다. 제르베즈는 먹어치웠다. 계단 밑 움막 같은 곳에 살던 브뤼 영감이 죽었고 그 자리는 이제 제르베즈의 차지가 되었다.

'그녀가 정확히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떠들어 댔다. 하지만 사실 제르베즈는 비참한 가난 때문에, 엉망으로 망쳐 버린 삶의 불결함과 고단함 때문에 죽었다. 로리외 부부의 말을 그대로 쓰자면, 그녀는 힘이 다 빠져서 죽었다. 어느 날 아침 복도에서 악취가 나자 사람들은 이틀 동안 안을 들여다보지 않은 것을 떠올렸다. 골방으로 들어가 보니 제르베즈는 이미 퍼렇게 변해 있었다. (p. 337, 아소무아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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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죽을 때 가난은 모두 너의 잘못'이라 말했던 빌 게이츠조차 자신의 성공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한다. 원대한 비전을 가진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열세 살에 무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다룬 '1만 시간의 법칙'을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었고, 정보화 시대가 막 시작되는 1970년 초에 스무 살을 향해가는 나이였다는 건 '시대'를 잘 만난 덕분이었다.

제르베즈와 쿠포의 삶에는 부모가, 환경이 그리고 시대가 그들에게 주는 운은 없었다. 빌 게이츠의 삶과 사뭇 다른 여느 하층민의 삶처럼 말이다. 이 둘은 원래 게으름뱅이로 주정뱅이로 태어나지 않았다. 살면서 어떤 일을 만나면서 그렇게 되었다.

부모가 물려준 가난과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부모가 물려준 유전적 유산은 지독하게도 끈질겼다. 끝내 죽음으로 내몰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눈을 들었다. 철거 중인 도살장 앞이었다. 건물 정면에 커다란 구멍이 있고, 그 안으로 아직도 피에 젖어 악취가 나는 어두운 안마당이 보였다. 한 걸음 더 내려가니 라리부아지에르 병원의 커다란 회색 벽이 나왔다. (...) 틈 하나 없이 단단한 전나무로 만든 문은 죽은 자들의 문으로, 마치 무덤의 비석처럼 근엄하고 적막했다. 제르베즈는 도망치듯 더 멀리 철로의 육교가 있는 곳까지 갔다. (p. 290, 아소무아르 2)'

다른 삶을 살기 위해 파리에 왔지만 제르베즈를 기다리는 환경은 짐승 같은 삶이 죽어나가는 도살장과 병원이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거닐었던 거리도 그 거리였다. 파리에 올 때나 죽을 때나 제르베즈를 둘러싼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은 채 도움도 주지 않았다.

'제르베즈의 눈에는 이상한 형태의 용기들이 달리고 끝없이 긴 관이 휘감겨 있는 증류기가 왠지 음산한 얼굴처럼 보였다. 증기는 전혀 나오지 않고, 안에서 뭔가가 숨 쉬는 것 같은 소리, 땅 밑에서 웅웅거리며 코를 고는 듯한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흡사 엄청나게 힘센 일꾼이 말없이, 음울하게, 밤에 할 일을 대낮에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 증류기에서는 소리도 나지 않고 불꽃도 일지 않았다. 구리는 광택 없이 칙칙해 보였다. 느리게, 하지만 고집스레 물을 내보내는 샘처럼 계속 돌아가며 땀을 흘렸고, 그 알코올 땀이 술집 전체를 채우고 바깥 큰길로 흘러나가 마침내 파리라는 거대한 구멍을 다 채워 버릴 것만 같았다. 제르베즈는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중얼거렸다.
"바보 같죠. 저 기계를 보니까 괜히 오싹해져요.... " (pp. 70, 71, 아소무아르 1)'

산업 사회 시대를 상징하는 기계마저 음산한 얼굴을 하고 제르베르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층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몸을 쓰는 노동력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증류 기계는 아소무아르라는 술집 이름처럼 알코올로 사람을 때려눕혔다.

제르베즈와 쿠포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지만, 어김없이 '부모가 물려준 굴레'와 하층민에게만 주어진 열악한 '환경', 노동력이 기계로 대체되던 '시대'는 그들에게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살만하다 싶을 때마다 불행으로 찾아왔다. 빌 게이츠에게는 적절한 때에 운명처럼 찾아왔던 부모, 환경, 시대란 행운이 제르베즈에게는 불운으로 변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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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꿈꾸던 것들이 기억났다. 마음 편하게 일하고, 먹을 게 있고, 조금 깨끗한 잠자리가 있고, 아이들을 잘 기르고, 매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 누워 죽고 싶었는데! 아, 정말 우습구나! 그 모든 소망이 어쩌면 하나같이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을까? (...) 뭐 그리 대단 한 소원이라고! 3만 프랑의 연금을 받고 싶다든가 사람들이 날 존경해 줬으면 좋겠다든가, 이런 거창한 것도 아닌데! 아! 빌어먹을 인생은 아무리 욕심 없이 살아도 소용이 없구나! (p. 306, 아소무아르 2)'

너무나 비참한 제르베즈의 삶, 읽기 힘든 삶이었다. 깨끗한 잠자리, 아이들을 기르고, 매 맞지 않고, 자기 침대에서 누워죽는,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낭만이랄 것도 없는 그런 꿈은 끝내 제르베즈에게 허용되지 않은 삶이어서 그래서 차마 눈뜨고 보기조차 힘들어 애써 외면하고 싶게 만드는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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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처지를 게으름이나 능력 부족으로 쉽게 돌려버리곤 하는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다. 어느 정도는 부모 탓, 환경 탓, 시대 탓을 해도 된다고... 너무 자기 탓만 하지 말라고... 가난이 내 탓만을 아니라고... '부자 되세요'나 '노오오오오오력'이란 프로파간다 쉽게 매몰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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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훈련병 - 엄마의 눈물과 지휘관의 염원이 만나는 곳
이소영.고유동 지음 / 업글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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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사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정성껏 편지 쓰던 아내 모습이 생각났다. 열 지어 운동장을 지나 건물 뒤로 아들이 사라진 후 훈련소 내 입소대교회에 들어섰다. 편지를 써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수요일 저녁에 훈련병에게 전달하겠다는 공지를 아내가 봤기 때문이다. 어찌나 정성껏 편지를 쓰던지...

'단어에 영혼을 담지 못한 채 출력값이 미리 입력된 로봇처럼 일제히 팔을 올리고 볼륨키를 최대치로 높여 의미 없는 소리만을 내뱉는 공허한 '충성'. 평소 남의 아들에게서 듣던 '충성'이라는 구호는 참으로 듬직했는데, 입대하는 날 아들과 입대 동기 아들들의 '충성'구호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 남의 아들에게서 느낀 듬직함의 충성 구호가 내 아들 입에서 내뱉어진 순간,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안타깝고 속상했으니 말이다. (p. 37)'

스텐트에 서있던 아내와 내 앞으로 한 무리의 청년이 다가올 때 우리는 동시에 아들을 찾아냈다. "저기~" 손을 흔들자 아들도 우리를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아들의 멋쩍은 웃음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아내의 촉촉한 눈을 보자마자 차라리 못 미더운 아들 대신 군 생활 경험이 있는 내가 입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미지는 해결되지 못하므로 공포는 성장한다. 그 끝에 입대가 있다. 입대는 거대한 단절. 아들이 손에 닿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는 공포가 어머니의 걱정을 증폭시키고, 포화된 걱정이 말 대신 눈물로 표현되는 것이리라. (p. 43)'

아들아이의 걱정은 이제까지 말로만 듣던 군 생활을 몸소 겪어야 한다는 조마조마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단체생활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아이에게 걱정은 더 증폭됐을 것이고.

그동안 지나쳤지만 아들 입대를 앞두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군에서 들려오는 좋지 않은 뉴스, 들을 때마다 엄마의 불안은 더 커졌다. 1년에 100여 명 남짓한 군인이 군 생활하다 죽으니 불안해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겠나. 그리고 엄마는 군 생활을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지는 불안을 공포로까지 키운다.

아빠의 걱정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감당하기 버겁다는 것을 해봐서 안다. 얼차려도 없고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집단 속에서 군인만 있고 내가 사라지는 상황이 지속되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를 말이다.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가 군 생활로 소비된다는 걸 깨달을 때 더 비참해진다.

안타깝고 해병대 출신으로 분노치미는 참사, 채해병이 순직한 지 2년이 지났다.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고자 특검 수사 중인 건 다행이지만, 명백한 지휘관의 잘못을 정부와 군이 숨기려 한 행위는 군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군 장병과 그 가족에게 불신을 더 크게 심어주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위대한 훈련병>의 출간이 더 반가웠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불안하고 애타는 엄마의 마음이 아들과 군을 향해 조금씩 신뢰로 바뀌는, 이소영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솔하고 생생한지 감동으로 다가온다.

훈련소 지휘관이었던 고유동 작가는 자신의 훈련병 시절을 떠올리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한 아들들을 어떻게 군인으로 성장시키는지를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국가를 믿고 아들을 맡긴 어머니들에게는 그 불안한 마음을 토닥이며 안심해도 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들이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퇴소하는 날 다시 논산 훈련소를 찾았다.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를 쳐다봤다. 안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야 엄마는 분리불안에서 졸업한다. 엄마와 가정이라는 온실 속에서만 안전할 줄 알았던 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용기 있게 자신의 도화지를 그릴 수 있는 사람임을, 엄마와 아들은 이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아, 넌 위대한 훈련병이었어.' (p. 187)'

분명 군에는 고유동 작가와 같은 지휘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채해병을 사지로 몰아넣은 군인 답지 못한 지휘관을 내 아들이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군 생활을 돌아보면, 군 생활에 절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여긴 아들을 보면, 이소영 작가의 아들, 중령으로 예편한 고유동 작가를 보면...

'사랑한다면 믿음과 신뢰를 주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잘 지내고 있고, 보고 싶지만 견딜 수 있다는 아들의 말을 나는 이제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된다. (p. 70)'

아들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면 엄마가 가졌던 불안함과 아빠의 걱정을 자신의 삶보다 무겁지 않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런 지혜를 아들아이 스스로 터득할 것이다. 믿고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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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 - 라젤의 레시피로 차려낸 그라운드 식탁
남아라(라젤)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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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야구가 인기 절정인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대회가 치러졌고 그때 야구 성지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 야구장이었다. 인천에 살던 때라 인천고, 동산고를 응원하며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전두환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고자 3S정책 펼쳤고, 그 가운데 하나인 스포츠에서 야구를 맨 먼저 선택했다. 고교 야구 인기를 손쉽게 프로야구로 옮겨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 그 이듬해에는 축구와 씨름을 이어서 프로화했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직접 나섰다. 그러니깐 프로야구 출범에는 정치적 속셈이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프로야구도 고교 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인천에 살던 나는 당연히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었다. 그해 여름 군에 입대해 간간이 프로야구 소식을 접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지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1할 승률로 원년 꼴찌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때부터 내가 응원하는 팀의 비극이 시작됐지 싶다.


<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의 저자 남아라 작가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다가 소설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다.

'야구를 하기에 최적의 오후였건만 요구르트 스왈로스의 우익수가 허둥지둥하더니 결국 공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여자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하루키에게 물었다고 한다.
"얘. 네가 응원하고 있는 팀이 바로 이 팀이니?"
"음, 그래?"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게 낫지 않겠어?" (p. 162)'

입사를 계기로 롯데 자이언츠로 응원하는 팀을 갈아탔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롯데자이언츠 중계를 보고 있으면 아내와 딸아이가 하루키가 듣던 소릴 한다.
"아빠, 잘하는 팀으로 바꾸면 어때?"

LG트윈스를 응원하는 덕분에 남아라 작가 역시 같은 소릴 듣는다.
''다른 팀을 좋아하는 건 어때?'
친구의 그 말이 하루키가 들었던 말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았을까. 곱씹어 보다가 순간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야구장에 처음 온 친구도 쉽게 깨닫는 진리를, 나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는 걸까. (p. 168)'

나 역시 야구에 '야'자도 모르는 아내와 딸아이 쉽게 깨닫는 진리를 애써 무시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욕하며 응원하고 있다. 요구르트 스왈로즈는 창단 29년 만에 우승을 했고 남아라 작가가 응원하는 LG트윈스도 29년 만에 우승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4승 하며 1984년에 우승했고, 1992년에 두 번째 우승을 하고는 33년이 지났다.

심지어 올 시즌 LG트윈스는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는 4번째 한국시리즈를 기다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팬들 가슴에 가을야구에 희망을 품게 하고는 12연패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보여주며 추락했다. 롯데 팬들은 안다. 가을야구 희망을 심어주고는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그렇다면 사랑이란 뭘까. 사랑이란, 계속되는 마음이다. 오늘이 조금 힘들어도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정, 매일 반복되는 순간 속에서도 계속 새로워지는 감정. 물론 사랑은 종종 무력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p. 203)'

남아라 작가가 엄마 따라 LG트윈스를 좋아했듯이 아들아이도 아빠가 좋아하는 팀이라서 투덜투덜 대며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 부모 때문이든 연고지 때문이든 응원하는 팀은 첫사랑이다. 그래서 욕을 해대며 응원할지언정 팀을 바꾸지 못한다.

남아라 작가의 LG트윈스 사랑이 진하게 묻어있는 에세이다. 프롤로그에서 남아라 작가는 사랑하는 야구를 더 사랑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지만, 야구와 헤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야구가 독재자의 음흉한 기획으로 시작됐을지언정, 남아람 작가처럼 야구를 삶의 축소판으로 여기며 인생을 배운다면 독재자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롯데 자이언츠로 이어지는 내가 응원하는 팀, 한결같이 왜 이 모양이냐는 생각이 들지만, 아내와 딸은 지금도 팀을 바꾸라며 깔깔대지만, 아들과 나는 언젠가 제2의 최동원이 등장하길 기대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꿈꾼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LG트윈스는 저리 가라다. 롯데 자이언츠는 언제나 극적으로 이기고 극적으로 진다.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경기가 하나도 없다. 욕하면서 즐기는 롯데자이언츠 야구의 매력이다.

내가 죽기 전엔 우승하겠지... 롯데자이언츠 팬 가운데 우승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지나친 욕심인가?

'평범한 일상에 나만의 등장 곡을 재생하는 일, 그리고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어쩌면 같은 맥락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등장 곡은 뭔지.
그리고 오늘,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요리는 뭔지. (p. 33)'


아 참~ 나도 남아라 작가처럼 투수전을 좋아한다. 투수전 특유의 슴슴하고 미묘한 맛이 나는 무도 좋아하고... 코다리찜에 들어간 무 조림은... 말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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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사랑 - 에밀 졸라 단편선 북커스 클래식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BOOKERS(북커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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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있는 그대로 보려는 꺼려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상상에 낭만을 더해 나를 보여주려고 한다. 일기 쓸 때도 '누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허영과 위선을 조금 넣어 각색한 일기를 쓴다.

드라마든 영화든 못 사는 사람 이야기 보다 잘 사는 사람 이야기가 더 재밌는 것도 불편과 편함의 차이다. 정 못 사는 사람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면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불쾌해하지 않는다.


1860년대부터 1880년대까지 발표한 에밀 졸라의 콩트와 누벨 가운데 열 편을 모은 단편집 <독한 사랑>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낭만은 없고 사실적인 묘사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가난, 배신, 탐욕 등 인간 감정의 밑바닥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주 짧은 이야기, 콩트에 속하는 <광고의 피해자>에서 클로드는 신문과 광고를 인생의 길잡이로 여기며 살아간다. 광고 숏츠를 즐기고 알고리즘에 따라 소비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클로드에게서 겹쳐 보인다. <우리를 탈출한 맹수들>에서는 동물원을 탈출한 사자와 하이에나의 눈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호전성을 희화화한다.

<후작 부인의 어깨>와 <가난한 소녀들은 무슨 꿈을 꿀까>에서는 후작 부인과 매일 허기진 상태로 살아가는 소녀 사이의 틈이 얼마나 벌어져있는지를 알게 된다. 표제작 <독한 사랑>에서 여자와 남자는 서로의 지독한 사랑 때문에 여자의 남편을 살해하고 결혼한다. 하지만 둘 사이에 증오에 이어 의심과 비겁함이 찾아온다.

'어느 날 그들은 상대방의 물 잔에 독을 타는 것을 서로에게 들켰다. 그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자 서로를 힘껏 껴안았다.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 낸 두 사람은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자신들이 얼마나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가 되었음을 인정했다. (pp. 218, 219 독한 사랑)'


콩트보다는 조금 긴 이야기, 누벨에 속하는 <낭타>의 주인공 낭타는 돈만 없을 뿐 보기 드문 지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마침내 플라비와 계약 결혼을 하며 돈을 거머쥐게 된 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다. 하지만 낭타는 가난한 시절 자살을 시도하려던 허름한 집에 다시 찾아가 권총 자살할 결심을 한다. 낭타를 허물어뜨린 건 다름 아닌 사랑의 정념, 그 하나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네종 부인>에서 지방 귀족 아들은 네종 부인으로부터 '감정 교육'을 호되게 받는다. <수르디 부인>에서는 수르디 부인은 화가 남편인 페르니낭이 예술가로서 성공하는데 자신의 재능을 사용한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의 한계가 어디쯤인지 엿볼 수 있다.

<결혼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에서 에밀 졸라는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귀족, 브르주아, 상인, 서민, 농민이라는 계급에 따라 결혼과 죽음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결혼이란 얼마나 이상야릇한 제도인가! 인류를 남자와 여자, 두 진영으로 나누어 서로에게 맞서도록 무장시킨 뒤 "평화롭게 살라!"는 말과 함께 그들을 같이 살게 하다니!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남자들은 사랑할 시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상대를 잘 알지도 못하고 그녀에게 자신을 알리지도 못한 채 결혼을 하는 실정이다. 이것이 작금의 결혼이 지닌 뚜렷한 두 가지 특징이다. (p. 227 결혼의 방식)'

'귀족'에게 결혼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데 필요한 절차일 뿐이다. '부르조아'는 살롱을 훌륭하게 이끌어 줄 여자가 필요해 결혼한다. '상인'은 가게를 열기 위해 결혼하고, '서민'만이 유일하게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그러나 그 사랑도 가난을 넘어서진 못한다.

'귀족'은 죽음에 이르서도 귀족 다운 품위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 '브루주아'는 죽어가면서까지 아들들에게 돈을 도둑맞을까 봐 두려워한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는 날조차 가게 문을 닫았다는 사실은 '상인' 가족 자식들을 미치게 한다.

'서민'의 아들이 죽어 장례 치르는 날, 하늘도 무심해 날씨마저 우중충하고 땅을 질퍽하다. 성당에서 장례절차도 날림을 진행됐고, 구호품도 아이가 죽고 나서야 도착한다. 평생 땅을 일구며 '농민'으로 살았던 아버지 죽음에 임박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해야 근근이 먹고사는 농민 자식들은 아버지를 돌볼 시간이 없다. 농민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그냥 어제와 같은 일상이다.


두 가지 삶이 있다. 실제 삶과 욕망을 드러내고 싶은 상상의 삶이다. 욕망을 드러내며 살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어렵다. 잘 사는 사람은 격에 맞게 보여줘야만 할 게 있어서, 가난한 사람은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서 욕망을 감춘 채 살아간다.

이 단편집에서 에밀 졸라는 우리가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욕망을 탐구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들킨 기분이 들어서 불쾌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이 해피엔딩이 아님을 알기에 불편하다. 치밀한 리얼리티,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내 속에 감춰진 욕망과 흡사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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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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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턱에 다다랐다. 이제 곧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릴 듣게 된다. 우리말 표현에 '바삭하다'라는 말만 있을까? 그럴 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게 제각각인 우리다. 듣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보삭하다', '보사삭하다', '포삭하다'가 그것이다. 가볍게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는 뜻이다. 잘 마른 나뭇잎 밟는 소리를 나타낸 말 '버석하다'도 있다. (p. 44)'

우리만이 가진 감각과 감정을 알려주는 우리말이, 보석처럼 빛나는 우리말이 빛을 잃어간다. 그 낱말을 줄곧 사용하며 닦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감각과 감정을 무심코 지나쳐왔다. 내비치지도 못한 체 말이다.


우리말을 연구하고 가르치기에 힘쓰는 신효원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말을 나직하게 우물거렸다고 한다. '동글동글'이라고 입안에서 굴리니 마음이 둥그레졌고, '콩콩'을 읽으니 정말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꼈다.

웅얼거려보면서 작가가 찾아낸 숨어 있던 750여 개 순우리말 낱말들, 그 말에 저자의 사랑을 더해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에 담아냈다.

소리를 내는 낱말이 있다. '왜글대다', 된 밥알이 입안에서 '왜글왜글' 소리를 내며 데구루루 구르는 듯하다. 바람이 꽃을 피우듯 만들어낸 하얀 기운을 뜻하는 '바람꽃'이란 말은 아름다움 풍광을 자아낸다. '운김'이란 말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전해지는 따뜻함이 녹아있다.

'달콤하다' 보다 조금 여린 맛을 표현하고 싶다면 '달곰하다'를 쓰면 된다. 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잔다는 뜻의 '사로잠'에서 왠지 모를 조바심이 느껴진다. 소리 내지 않는 웃음인 '볼웃음'에는 발그레한 양 볼에 즐거움을 한 입 가득 물은 아기의 웃는 표정이 보인다.

'큰 소리로 울면 속이라도 시원해질 텐데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시원하게 울지 못하고 울음을 참으며 흐느끼듯 울 때는 '늘키다'를 쓴다. 겉으로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속으로 우는 울음을 두고 '속울음'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들킬까 작은 소리로 우는 울음을 '잔울음', 울 힘조차 남지 않아 목이 잠긴 채 우는 울음을 '목울음'이라고 한다. (p. 168)'

죽기 살기로 어떤 일에 힘쓸 때 쓰는 '죽살이치다'란 말에는 목숨 건 애씀이, '소마소마하다'에는 초조함이 느껴진다. 듣기만 해도 재밌는 말도 있다. '실뚱머룩하다',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먹거리를 사줬을 때 아이의 반응이다. 귀여운 심술이 낱말에 묻어난다.

신효원 작가 좋아하는 순우리말은 뭘까. 마음의 본바탕을 뜻하는 '마음자리', 온전하게라는 뜻의 '소롯이' 그밖에 '돋되다', '내풀로', '또바기' 등을 꼽았다.


쉬운 우리말을 쓰는 걸 무식하다고 여기거나,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우리말 쓰기를 꺼려 한다. '앞으로 움직임을 잘 살피겠다'라고 하면 될 걸 '미래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라고, '오랫동안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 걸 '장시간 근로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말버릇은 상대방을 움츠러들게 하려는 짓이다. 스스로 전문가라는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심하다. 자신들만 알아듣는 일방통행인 말, 언어를 홀로 차지해서 지식을, 기술을 혼자만 누리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되는 우리말 대부분도 일방통행이긴 마찬가지다. 우리 감각이나 감정을 우리말처럼 잘 드러낼 말이 있을까? 우리와 같이 오랫동안 지내온 말이니 우리말은 곧 우리 자신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못 알아듣는다.

나부터 하나하나 꺼내서 써봐야겠다. 우리만의 감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내 마음을 살짝살짝 건드려주는 우리말을 말이다. 여러 말 필요 없이 서로 감정을 보여주고 볼 수 있은 우리말, 사라질까 두렵다.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날은 앞당길 수 있도록 '욱걸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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