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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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문턱에 다다랐다. 이제 곧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삭'거리는 소릴 듣게 된다. 우리말 표현에 '바삭하다'라는 말만 있을까? 그럴 리가. 감각으로 느끼는 게 제각각인 우리다. 듣는 소리도 마찬가지다.

''보삭하다', '보사삭하다', '포삭하다'가 그것이다. 가볍게 부스러지는 소리가 난다는 뜻이다. 잘 마른 나뭇잎 밟는 소리를 나타낸 말 '버석하다'도 있다. (p. 44)'

우리만이 가진 감각과 감정을 알려주는 우리말이, 보석처럼 빛나는 우리말이 빛을 잃어간다. 그 낱말을 줄곧 사용하며 닦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감각과 감정을 무심코 지나쳐왔다. 내비치지도 못한 체 말이다.


우리말을 연구하고 가르치기에 힘쓰는 신효원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우리말을 나직하게 우물거렸다고 한다. '동글동글'이라고 입안에서 굴리니 마음이 둥그레졌고, '콩콩'을 읽으니 정말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걸 느꼈다.

웅얼거려보면서 작가가 찾아낸 숨어 있던 750여 개 순우리말 낱말들, 그 말에 저자의 사랑을 더해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에 담아냈다.

소리를 내는 낱말이 있다. '왜글대다', 된 밥알이 입안에서 '왜글왜글' 소리를 내며 데구루루 구르는 듯하다. 바람이 꽃을 피우듯 만들어낸 하얀 기운을 뜻하는 '바람꽃'이란 말은 아름다움 풍광을 자아낸다. '운김'이란 말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을 때 전해지는 따뜻함이 녹아있다.

'달콤하다' 보다 조금 여린 맛을 표현하고 싶다면 '달곰하다'를 쓰면 된다. 염려가 되어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잔다는 뜻의 '사로잠'에서 왠지 모를 조바심이 느껴진다. 소리 내지 않는 웃음인 '볼웃음'에는 발그레한 양 볼에 즐거움을 한 입 가득 물은 아기의 웃는 표정이 보인다.

'큰 소리로 울면 속이라도 시원해질 텐데 그러지 못할 때도 있다. 시원하게 울지 못하고 울음을 참으며 흐느끼듯 울 때는 '늘키다'를 쓴다. 겉으로 눈물을 흘리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울어야 할 때도 있다. 이렇게 속으로 우는 울음을 두고 '속울음'이라고 한다. 누구에게 들킬까 작은 소리로 우는 울음을 '잔울음', 울 힘조차 남지 않아 목이 잠긴 채 우는 울음을 '목울음'이라고 한다. (p. 168)'

죽기 살기로 어떤 일에 힘쓸 때 쓰는 '죽살이치다'란 말에는 목숨 건 애씀이, '소마소마하다'에는 초조함이 느껴진다. 듣기만 해도 재밌는 말도 있다. '실뚱머룩하다', 아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먹거리를 사줬을 때 아이의 반응이다. 귀여운 심술이 낱말에 묻어난다.

신효원 작가 좋아하는 순우리말은 뭘까. 마음의 본바탕을 뜻하는 '마음자리', 온전하게라는 뜻의 '소롯이' 그밖에 '돋되다', '내풀로', '또바기' 등을 꼽았다.


쉬운 우리말을 쓰는 걸 무식하다고 여기거나, 유식함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우리말 쓰기를 꺼려 한다. '앞으로 움직임을 잘 살피겠다'라고 하면 될 걸 '미래 동향을 예의주시하겠다'라고, '오랫동안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 될 걸 '장시간 근로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말버릇은 상대방을 움츠러들게 하려는 짓이다. 스스로 전문가라는 여기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심하다. 자신들만 알아듣는 일방통행인 말, 언어를 홀로 차지해서 지식을, 기술을 혼자만 누리려는 속셈이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되는 우리말 대부분도 일방통행이긴 마찬가지다. 우리 감각이나 감정을 우리말처럼 잘 드러낼 말이 있을까? 우리와 같이 오랫동안 지내온 말이니 우리말은 곧 우리 자신인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못 알아듣는다.

나부터 하나하나 꺼내서 써봐야겠다. 우리만의 감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내 마음을 살짝살짝 건드려주는 우리말을 말이다. 여러 말 필요 없이 서로 감정을 보여주고 볼 수 있은 우리말, 사라질까 두렵다.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날은 앞당길 수 있도록 '욱걸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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