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훈련병 - 엄마의 눈물과 지휘관의 염원이 만나는 곳
이소영.고유동 지음 / 업글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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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사월,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병 생활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정성껏 편지 쓰던 아내 모습이 생각났다. 열 지어 운동장을 지나 건물 뒤로 아들이 사라진 후 훈련소 내 입소대교회에 들어섰다. 편지를 써 빨간 우체통에 넣으면 수요일 저녁에 훈련병에게 전달하겠다는 공지를 아내가 봤기 때문이다. 어찌나 정성껏 편지를 쓰던지...

'단어에 영혼을 담지 못한 채 출력값이 미리 입력된 로봇처럼 일제히 팔을 올리고 볼륨키를 최대치로 높여 의미 없는 소리만을 내뱉는 공허한 '충성'. 평소 남의 아들에게서 듣던 '충성'이라는 구호는 참으로 듬직했는데, 입대하는 날 아들과 입대 동기 아들들의 '충성'구호는 안타깝게 느껴졌다. (...) 남의 아들에게서 느낀 듬직함의 충성 구호가 내 아들 입에서 내뱉어진 순간, 나는 눈물을 흘릴 만큼 안타깝고 속상했으니 말이다. (p. 37)'

스텐트에 서있던 아내와 내 앞으로 한 무리의 청년이 다가올 때 우리는 동시에 아들을 찾아냈다. "저기~" 손을 흔들자 아들도 우리를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아들의 멋쩍은 웃음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아내의 촉촉한 눈을 보자마자 차라리 못 미더운 아들 대신 군 생활 경험이 있는 내가 입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는 미지에서 온다. 미지는 해결되지 못하므로 공포는 성장한다. 그 끝에 입대가 있다. 입대는 거대한 단절. 아들이 손에 닿지 못하는 곳으로 떠난다는 공포가 어머니의 걱정을 증폭시키고, 포화된 걱정이 말 대신 눈물로 표현되는 것이리라. (p. 43)'

아들아이의 걱정은 이제까지 말로만 듣던 군 생활을 몸소 겪어야 한다는 조마조마함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단체생활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아이에게 걱정은 더 증폭됐을 것이고.

그동안 지나쳤지만 아들 입대를 앞두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군에서 들려오는 좋지 않은 뉴스, 들을 때마다 엄마의 불안은 더 커졌다. 1년에 100여 명 남짓한 군인이 군 생활하다 죽으니 불안해하지 않을 엄마가 어디 있겠나. 그리고 엄마는 군 생활을 이야기로 전해 들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한다. 미지는 불안을 공포로까지 키운다.

아빠의 걱정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아이가 감당하기 버겁다는 것을 해봐서 안다. 얼차려도 없고 편해졌다고는 하지만 집단 속에서 군인만 있고 내가 사라지는 상황이 지속되는 게 얼마나 견디기 힘들지를 말이다. 내가 왜 여기 와있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기가 군 생활로 소비된다는 걸 깨달을 때 더 비참해진다.

안타깝고 해병대 출신으로 분노치미는 참사, 채해병이 순직한 지 2년이 지났다. 뒤늦게라도 진실을 밝히고자 특검 수사 중인 건 다행이지만, 명백한 지휘관의 잘못을 정부와 군이 숨기려 한 행위는 군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현재 그리고 미래의 군 장병과 그 가족에게 불신을 더 크게 심어주는 일이다.

이런 상황이어서 <위대한 훈련병>의 출간이 더 반가웠다. 아들을 군에 보낸 불안하고 애타는 엄마의 마음이 아들과 군을 향해 조금씩 신뢰로 바뀌는, 이소영 작가의 이야기가 얼마나 진솔하고 생생한지 감동으로 다가온다.

훈련소 지휘관이었던 고유동 작가는 자신의 훈련병 시절을 떠올리며 국가의 부름을 받고 입대한 아들들을 어떻게 군인으로 성장시키는지를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국가를 믿고 아들을 맡긴 어머니들에게는 그 불안한 마음을 토닥이며 안심해도 된다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들이 훈련병 생활을 마치고 퇴소하는 날 다시 논산 훈련소를 찾았다.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아들을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를 쳐다봤다. 안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제야 엄마는 분리불안에서 졸업한다. 엄마와 가정이라는 온실 속에서만 안전할 줄 알았던 아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고 용기 있게 자신의 도화지를 그릴 수 있는 사람임을, 엄마와 아들은 이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들아, 넌 위대한 훈련병이었어.' (p. 187)'

분명 군에는 고유동 작가와 같은 지휘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채해병을 사지로 몰아넣은 군인 답지 못한 지휘관을 내 아들이 만날 수도 있다. 그런데 내 군 생활을 돌아보면, 군 생활에 절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여긴 아들을 보면, 이소영 작가의 아들, 중령으로 예편한 고유동 작가를 보면...

'사랑한다면 믿음과 신뢰를 주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잘 지내고 있고, 보고 싶지만 견딜 수 있다는 아들의 말을 나는 이제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된다. (p. 70)'

아들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러면 엄마가 가졌던 불안함과 아빠의 걱정을 자신의 삶보다 무겁지 않게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런 지혜를 아들아이 스스로 터득할 것이다. 믿고 기다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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