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 - 라젤의 레시피로 차려낸 그라운드 식탁
남아라(라젤) 지음 / 브로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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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야구가 인기 절정인 시절이 있었다. 대통령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 대회가 치러졌고 그때 야구 성지는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 야구장이었다. 인천에 살던 때라 인천고, 동산고를 응원하며 라디오 중계를 들었다.

전두환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고자 3S정책 펼쳤고, 그 가운데 하나인 스포츠에서 야구를 맨 먼저 선택했다. 고교 야구 인기를 손쉽게 프로야구로 옮겨올 수 있다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 그 이듬해에는 축구와 씨름을 이어서 프로화했다.

1982년 3월 27일 전두환은 MBC 청룡과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직접 나섰다. 그러니깐 프로야구 출범에는 정치적 속셈이 있었던 셈이다.

어쨌든 프로야구도 고교 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인천에 살던 나는 당연히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었다. 그해 여름 군에 입대해 간간이 프로야구 소식을 접하면서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했지만 한국 프로야구 사상 전무후무한 1할 승률로 원년 꼴찌라는 성적을 거뒀다. 이때부터 내가 응원하는 팀의 비극이 시작됐지 싶다.


<9회 말, 일희일비 야구의 맛>의 저자 남아라 작가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가 프로야구 개막전을 관람하다가 소설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도쿄를 연고지로 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요구르트 스왈로스를 응원했다.

'야구를 하기에 최적의 오후였건만 요구르트 스왈로스의 우익수가 허둥지둥하더니 결국 공을 놓치고 만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여자가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하루키에게 물었다고 한다.
"얘. 네가 응원하고 있는 팀이 바로 이 팀이니?"
"음, 그래?"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게 낫지 않겠어?" (p. 162)'

입사를 계기로 롯데 자이언츠로 응원하는 팀을 갈아탔다. 욕을 한 바가지 쏟아내며 롯데자이언츠 중계를 보고 있으면 아내와 딸아이가 하루키가 듣던 소릴 한다.
"아빠, 잘하는 팀으로 바꾸면 어때?"

LG트윈스를 응원하는 덕분에 남아라 작가 역시 같은 소릴 듣는다.
''다른 팀을 좋아하는 건 어때?'
친구의 그 말이 하루키가 들었던 말과 어쩌면 그렇게 똑같았을까. 곱씹어 보다가 순간 웃음이 피식 새어 나왔다. 야구장에 처음 온 친구도 쉽게 깨닫는 진리를, 나는 왜 그렇게 오래도록 깨닫지 못하는 걸까. (p. 168)'

나 역시 야구에 '야'자도 모르는 아내와 딸아이 쉽게 깨닫는 진리를 애써 무시하며 롯데 자이언츠를 욕하며 응원하고 있다. 요구르트 스왈로즈는 창단 29년 만에 우승을 했고 남아라 작가가 응원하는 LG트윈스도 29년 만에 우승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최동원이 한국시리즈에서 4승 하며 1984년에 우승했고, 1992년에 두 번째 우승을 하고는 33년이 지났다.

심지어 올 시즌 LG트윈스는 정규리그 우승을 하고는 4번째 한국시리즈를 기다리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는? 팬들 가슴에 가을야구에 희망을 품게 하고는 12연패라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보여주며 추락했다. 롯데 팬들은 안다. 가을야구 희망을 심어주고는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그렇다면 사랑이란 뭘까. 사랑이란, 계속되는 마음이다. 오늘이 조금 힘들어도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정, 매일 반복되는 순간 속에서도 계속 새로워지는 감정. 물론 사랑은 종종 무력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p. 203)'

남아라 작가가 엄마 따라 LG트윈스를 좋아했듯이 아들아이도 아빠가 좋아하는 팀이라서 투덜투덜 대며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다. 부모 때문이든 연고지 때문이든 응원하는 팀은 첫사랑이다. 그래서 욕을 해대며 응원할지언정 팀을 바꾸지 못한다.

남아라 작가의 LG트윈스 사랑이 진하게 묻어있는 에세이다. 프롤로그에서 남아라 작가는 사랑하는 야구를 더 사랑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밝히지만, 야구와 헤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으로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야구가 독재자의 음흉한 기획으로 시작됐을지언정, 남아람 작가처럼 야구를 삶의 축소판으로 여기며 인생을 배운다면 독재자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롯데 자이언츠로 이어지는 내가 응원하는 팀, 한결같이 왜 이 모양이냐는 생각이 들지만, 아내와 딸은 지금도 팀을 바꾸라며 깔깔대지만, 아들과 나는 언젠가 제2의 최동원이 등장하길 기대하면서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을 꿈꾼다.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있어서 LG트윈스는 저리 가라다. 롯데 자이언츠는 언제나 극적으로 이기고 극적으로 진다.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경기가 하나도 없다. 욕하면서 즐기는 롯데자이언츠 야구의 매력이다.

내가 죽기 전엔 우승하겠지... 롯데자이언츠 팬 가운데 우승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지나친 욕심인가?

'평범한 일상에 나만의 등장 곡을 재생하는 일, 그리고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는 일. 이 두 가지는 어쩌면 같은 맥락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의 등장 곡은 뭔지.
그리고 오늘, 당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요리는 뭔지. (p. 33)'


아 참~ 나도 남아라 작가처럼 투수전을 좋아한다. 투수전 특유의 슴슴하고 미묘한 맛이 나는 무도 좋아하고... 코다리찜에 들어간 무 조림은... 말해 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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