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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평점 :
'훈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훈 할머니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로 끌려가셨다가, 지난 1997년 잠시 한국에 오셨던, 작은 키에 크고 고운 눈을 가진 할머니입니다. (p. 232, 작가의 말)'
우리나라 이름 이남이, 일본 이름 하나코 그리고 반세기를 훈이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살았다. 한국인 이남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훈 할머니, 그 누구에게도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 촌장 댁 손녀 박순이와 호랑이 사냥꾼 용이 그리고 미술학도인 일본군 장교 가즈오, 세 젊은이의 이야기다.
'봉긋 솟아 있는 이 언덕은 잘가요 언덕입니다. 예부터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작은 언덕이지요. (p. 12)'
일찍 엄마를 잃은 순이는 엄마 별이 자신을 돌봐준다고 여긴다. 백호가 덮치는 바람에 용이도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순이는 웅이에게 밤하늘에 떠있는 엄마 별을 보여주지만 용이는 백호를 잡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에 순이가 가리키는 엄마 별을 찾지 못한다.
가즈오는 홀로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전쟁에 참여한다. 어머니가 걱정돼 틈날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호랑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던 가즈오는 어느 날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아이들이 울 때 업어 주고, 아플 때 어루만져 주고, 슬플 때 안아 주고, 배고플 때 먹여 주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아이들과 헤어질 때쯤 되면… 아이들도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겠죠." (p. 124)'
이역만리 전쟁터로 끌려가면 순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지 못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철저히 유린당한 순이는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채 죽을 것이다. 가즈오의 마음이 무겁다. 가즈오의 조국 일본이 역겨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가즈오는 생각한다.
7년 만에 호랑이 마을로 돌아온 용이는 순이를 지키다가 한쪽 다리를, 가즈오는 목숨을 잃는다.
'"순이 씨,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p. 219)'
70년 만에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발견된 순이는 여든아홉 살 쑤니가 되어 고향 호랑이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30여 년 전,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면서 호랑이 마을은 없어졌다. 쑤니 할머니는 한국인 순이의 삶과 함께 고향을 잃었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살고 있던 훈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 현지처로 살았지만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혼자가 됐다.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긴 채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해 자식 셋을 낳았지만 술주정뱅이 남편과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은 크메르루주에 납치돼 생사를 모른다.
5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훈 할머니는 한국인 이남이로 살기 위해 영구 귀국했지만, 넉 달 뒤 말도 통하지 않아 외롭게 지내던 끝에 훈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훈 할머니도 한국인 이남이의 삶과 함께 쑤니가 고향을 잃었듯이 고국을 영영 잃어버렸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두 나라 정부는 위안부라는 과거사가 골치 아픈 문제라고 여겼고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을 같이했다.
'"어떤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덩치는 커다란데, 다리가 한 짝밖에 없는 남자였지요. (...) 혹시 나중에라도 할머니를 만나면 이 나뭇조각을 꼭 전해 달라면서 맡기고 갔어요."
쑤니 할머니가 말없이 나뭇조각을 받아 듭니다. (...) 나뭇조각 뒷면에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따뜻하다, 엄마별. (pp. 230, 231)'
용서해야만 별을 볼 수 있다. 용이는 누굴 용서했기에 따뜻한 엄마별을 비로소 볼 수 있었을까? 엄마와 동생 목숨을 앗아간 백호? 아니면 순이를 빼앗아간 일본군들까지?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용이가 다시 침묵합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pp. 194, 195)'
어쩌면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 아닐까? 주체가 서로 다르다. 용서를 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용서할 수 있다. 다만 용서를 구하며 사죄할 때는 진정 어린 마음이어야 한다. 진정성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며 사죄하는 것만으로 보여줄 수 있다.
쑤니와 훈 할머니 모두 한국인 순이와 이남이로 살았어야 할 삶을 잃었다. 고향도 고국도 잃었다. 그런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합의의 법적 구속력이 무슨 소용인가. 언제까지 배상금을 얻어내려는 속셈이냐니, 돈으로 해결될 일인가. 서둘러 처리할 골칫거리도 물론 아니다.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야말로 닥쳐야 할 소리다. 잊어야 할 일인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