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인 계획
야가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반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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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료스케는 나카야마 출판에서 천재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로 통한다. 잘나가던 다치바나는 담당한 작가가 플롯을 도용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단행본 논픽션부로 쫓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치바나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살해 협박 내용이 담긴 원고를 받는다.

'프롤로그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나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p. 39)'

사실 다치바나는 열한 살에 술에 찌들어 손찌검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들을 보호하려다 대신 온몸에 멍투성이가 된 어머니도 죽였다. 편들어 줄줄 알았던 어머니가 오히려 아버지를 두둔하며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큰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증거가 사라져 아무 일없이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죽일까? 하는 구체적인 수법 외에 어째서 범죄자로 성장하는 걸까? 하는 측면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p. 175)'

그 이후에도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답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살인,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왜 죽는지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하며 꿈꾸며 살인을 두 차례 더 했다.

마침내 다치바나는 자신을 완벽하게 죽이려는 자를 찾아 나선다. 오히려 그자를 죽이려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한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살인자O난감>에서 이탕(최우식)은 우발적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다. 공교롭게도 살인을 가리키는 증거가 우연히 모두 사라진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자신이 죽인 사람들 모두 죽어마땅한 자들임을 알게 된다. 우발적 살인은 이탕의 능력이 되고 정의가 된다. 살인을 정당화한다.

'대다수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우연이 어디 있어?' 하고 의심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아름다운 살인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우연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파괴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겹치는 우연에 극한으로 집착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들키지 않는다는 아름다움이 생긴다. (p. 195)'

마침내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찾아낸 다치바나는 그가 세운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정말 우연하게도 그의 살인을 목격한 의외의 사람이 나타난다. 다치바나의 살인 계획은 완벽하지 않았다. <살인자O난감>의 이탕에게도 우연은 계속되지 않는다. 이탕의 살인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란 뭘까요? (...)
... 간단합니다. 답은 심플하죠.
범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살인, 이게 내가 내린 답이에요. (pp. 291, 292)'

다치바나의 아들에게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스스로 여러 가지 놀이를 발견해 놀았다. 외발로 서서 깡충깡충 뛰는 놀이를 즐겼다. 꽃을 좋아하는 아들은 길가에 핀 꽃을 꺾어 꽃병을 꾸미기도 했다.

다치바나의 아들은 한 발로 서서 발끝에 체중을 싣고 뛰는 놀이를 가장 좋아했다. 나무 뒤를 뒤져 빈 껍데기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것들을 30분 동안 작은 산이 될 때까지 모아놓고 외발뛰기를 한다. 으적, 으적, 콰직. 으적, 으적, 콰직. 감자칩을 밟아 뭉개는듯한 느낌이 좋다. 아버지가 몹시 흐뭇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살아있지만 사회에서 배제시킴으로서 사회적 생명을 빼앗는 살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뒤바뀌기도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구별이 안되는 살인이기도 하다. 살인. 혐오, 학대, 무관심, 가스라이팅, 차별 등이 살인도구로 쓰인다.

유괴해서 죽이고, 강간하고 죽이고, 강도질하고 죽이는 등 이기적인 욕구로 벌인 살인은 아무리 우연이 겹치더라도 완벽할 수도 아름다운 수도 없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은 없다.

그렇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르는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은 있다.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라도, 정의를 앞세운 살인이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벌받아 마땅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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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
차인표 지음, 제딧 그림 / 해결책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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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 할머니를 기억하시나요?
훈 할머니는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강제 징용되어 캄보디아로 끌려가셨다가, 지난 1997년 잠시 한국에 오셨던, 작은 키에 크고 고운 눈을 가진 할머니입니다. (p. 232, 작가의 말)'

우리나라 이름 이남이, 일본 이름 하나코 그리고 반세기를 훈이란 이름으로 캄보디아에서 살았다. 한국인 이남이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훈 할머니, 그 누구에게도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일제 강점기 백두산 기슭의 호랑이 마을, 촌장 댁 손녀 박순이와 호랑이 사냥꾼 용이 그리고 미술학도인 일본군 장교 가즈오, 세 젊은이의 이야기다.

'봉긋 솟아 있는 이 언덕은 잘가요 언덕입니다. 예부터 호랑이 마을 사람들이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모이는 작은 언덕이지요. (p. 12)'

일찍 엄마를 잃은 순이는 엄마 별이 자신을 돌봐준다고 여긴다. 백호가 덮치는 바람에 용이도 어머니와 동생을 잃었다. 순이는 웅이에게 밤하늘에 떠있는 엄마 별을 보여주지만 용이는 백호를 잡고야 말겠다는 복수심에 순이가 가리키는 엄마 별을 찾지 못한다.

가즈오는 홀로된 어머니를 남겨두고 전쟁에 참여한다. 어머니가 걱정돼 틈날 때마다 편지를 보낸다. 호랑이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던 가즈오는 어느 날 위안부를 강제로 징집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전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고 싶어요. 한 아이가 아닌 여러 아이들의 엄마. 아이들이 울 때 업어 주고, 아플 때 어루만져 주고, 슬플 때 안아 주고, 배고플 때 먹여 주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평생 살다가 아이들과 헤어질 때쯤 되면… 아이들도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되겠죠." (p. 124)'

이역만리 전쟁터로 끌려가면 순이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죽지 못할 것이다. 몸과 마음을 철저히 유린당한 순이는 어느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채 죽을 것이다. 가즈오의 마음이 무겁다. 가즈오의 조국 일본이 역겨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가즈오는 생각한다.

7년 만에 호랑이 마을로 돌아온 용이는 순이를 지키다가 한쪽 다리를, 가즈오는 목숨을 잃는다.

'"순이 씨,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 나라에 와서 전쟁을 해서 미안합니다. 평화로운 땅을 피로 물들여서 미안합니다. 꽃처럼 아름다운 당신을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순결한 당신의 몸을 찢고, 그 아름다운 두 눈에 눈물 흘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p. 219)'


70년 만에 필리핀의 작은 섬에서 발견된 순이는 여든아홉 살 쑤니가 되어 고향 호랑이 마을로 돌아왔다. 하지만 30여 년 전, 미사일 기지가 들어서면서 호랑이 마을은 없어졌다. 쑤니 할머니는 한국인 순이의 삶과 함께 고향을 잃었다.

캄보디아 오지에서 살고 있던 훈 할머니는 일본군 장교 현지처로 살았지만 일본군이 물러나면서 혼자가 됐다. 위안부였던 사실을 숨긴 채 캄보디아 남자와 결혼해 자식 셋을 낳았지만 술주정뱅이 남편과 결혼 생활이 오래가지 않았다. 아들은 크메르루주에 납치돼 생사를 모른다.

55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훈 할머니는 한국인 이남이로 살기 위해 영구 귀국했지만, 넉 달 뒤 말도 통하지 않아 외롭게 지내던 끝에 훈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갔다. 훈 할머니도 한국인 이남이의 삶과 함께 쑤니가 고향을 잃었듯이 고국을 영영 잃어버렸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와 일본 아베 내각은 위안부 문제에 최종적으로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두 나라 정부는 위안부라는 과거사가 골치 아픈 문제라고 여겼고 빠른 해결이 필요하다는데 생각을 같이했다.

'"어떤 사람이 몇 년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찾아왔어요. 덩치는 커다란데, 다리가 한 짝밖에 없는 남자였지요. (...) 혹시 나중에라도 할머니를 만나면 이 나뭇조각을 꼭 전해 달라면서 맡기고 갔어요."
쑤니 할머니가 말없이 나뭇조각을 받아 듭니다. (...) 나뭇조각 뒷면에 작은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따뜻하다, 엄마별. (pp. 230, 231)'

용서해야만 별을 볼 수 있다. 용이는 누굴 용서했기에 따뜻한 엄마별을 비로소 볼 수 있었을까? 엄마와 동생 목숨을 앗아간 백호? 아니면 순이를 빼앗아간 일본군들까지?

'"용이야, 이제 그만 백호를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
용이가 다시 침묵합니다. 소리 없이 울고 있는 것입니다. (...)
"난 네가 백호를 용서해 주면, 엄마별을 볼 수 있게 될 것 같아." (...)
"모르겠어. 용서를... 어떻게 하는 건지." (...) "상대가 빌지도 않은 용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pp. 194, 195)'

어쩌면 용서하는 것과 용서를 구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 아닐까? 주체가 서로 다르다. 용서를 구하는 것과 상관없이 용서할 수 있다. 다만 용서를 구하며 사죄할 때는 진정 어린 마음이어야 한다. 진정성은 끊임없이 용서를 구하며 사죄하는 것만으로 보여줄 수 있다.

쑤니와 훈 할머니 모두 한국인 순이와 이남이로 살았어야 할 삶을 잃었다. 고향도 고국도 잃었다. 그런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합의의 법적 구속력이 무슨 소용인가. 언제까지 배상금을 얻어내려는 속셈이냐니, 돈으로 해결될 일인가. 서둘러 처리할 골칫거리도 물론 아니다. 이제 그만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야말로 닥쳐야 할 소리다. 잊어야 할 일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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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 현직 편집자가 알려주는 출판되는 책쓰기
김지호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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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계획이 있거나 출간에 번번이 실패한 예비 작가들에게 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실용서 중의 실용서다. 사실 이런 책 대부분은 이론서다. 읽고 나면 뻔한 내용이라 허탈해하기 일쑤다. 수십 년간 편집 일을 했고 수많은 출판 시스템을 경험한 저자 김지호의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 맞지 않습니다>는 흔한 이론서가 아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체득한 '출판되는 책 쓰기'에 대한 노하우를 풀어놓았다.

'이 책에는 책 쓰기를 위한 마음가짐, 크고 작은 팁, 유용한 툴(프로그램)이 등장합니다. 지난 20여 년간 몇 권의 책을 쓰고 편집 일을 해오며 마음으로 메모해 둔 것들이에요. (p. 7)'

책 쓰기 시작할 때 맨 처음 만나는 악당 '비판'은 이렇게 속삭인다.
'이걸 글이라고 쓰냐?'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인데?'

'비판'이란 악당이 물러나면 '의심'이란 놈이 등장한다.
'정말 할 수 있어?'
'어차피 실패할 텐데, 쓰면 뭐 하냐?'

'긍정'과 '의지'의 힘으로 '비판'과 '의심'을 물리쳐 보겠다고 나선다.
'나는 할 수 있어!'
'못하면 어쩔 건데?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야.'

오히려 긍정과 의지는 비판과 의심을 키운다. '단지'와 '그냥'만이 비판과 의심을 상대할 수 있는 전략이다.
'그냥 쓰는 거다. 재미로'
'단지 하루 1시간씩 글 쓰는 것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초고일 뿐이다. 틀려도 그냥 쓰는 거다.'

쉽게 콘텐츠를 확보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하다못해 긴 글쓰기에는 데스크톱이나 일체형 노트북이 좋다는 식의 대수롭지 않게 여길 만한 팁까지 전해준다. 출판사에서 편집 일은 해본 사람만 할 수 있는 조언도 있다.

투고 메일 예약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 월요일은 확인할 메일이 몰리니 화요일이, 시간은 출근 후 메일을 가장 먼저 확인할 테니 오전이 좋다. 그래서 저자가 권하는 시간은 화요일 오전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다.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투고하기를 멈추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완성된 원고는 어떻게든 책이 되도록 애쓰며 알려야 해요. (p. 192)'

작가가 되려면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이어서 출간 승낙이나 거절 여부와 상관없이 다음 원고를 준비하라고 저자는 조언한다.

4부에서 저자는 이 책 <죄송하지만 저희 출판사와 맞지 않습니다>가 실제로 어떤 작업을 통해서 출간됐는지, 집필 과정과 투고 메일 예시까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그대로 따라 하면 될 정도다. 부록에는 스크리브너 사용법을 담았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계셨으니 테마파크에서 벌어진 수많은 에피소드를 가지고 계실 거잖아요. 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누가 그런 책을 읽을까?"

오래전 신입사원과 대화를 나누며 한때 '그럴까?' 생각했었다. 글재주도 없으려니와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그 생각을 접었다. '써볼까'라는 마음을 끄집어내는 책이다.

'말씀드릴 것은 바로 '진심'입니다. 이 말을 꼭 전해야겠다는 마음, 이렇게 하면 독자들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 내가 겪었던 시행착오가 다른 이의 성공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온전히 글에 담아주세요. 글쓴이의 마음은 책에 자연스레 녹아듭니다. 진심으로 쓰인 글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습니다. (p.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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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은 나에게 꿈이 답하다 - 꿈과 민담 속 상징으로 마음을 읽다.
문심춘 지음 / 그루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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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라면 거의 공감할 악몽 가운데 하나가 다시 입대하는 꿈이다. 분명히 제대했는데 영장을 또 받았다. 부대에 가니 후임들이 왜 또 왔냐며 놀린다. 모두들 내가 제대할 걸 아는데 군 생활을 다시 해야 한다. 억울하기도 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어 답답해하다가 잠이 깬다. 제대한지 40년 남짓 지났으니 지금은 꾸지 않지만 제대 후 꽤 오랫동안 이 악몽이 계속됐다.

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 나의 어떤 감정과 연관됐을까? 또 내 삶과는 어떻게 연결되는 꿈일까? 꿈속 이미지는 무엇을 상징할까? 궁금한 것투성이다.


20년 넘게 융 심리학과 상징, 원형을 연구해온 문심춘 박사의 <길을 잃은 나에게 꿈이 답하다>는 동서양의 민담과 신화, 꿈 상담 사례를 통해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탐색한 책이다.

'민담과 신화는 우리에게 이런 적극적 명상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이야기를 접하며 우리는 주인공과 함께 좌절하고 고민하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는 곧 자기 내면을 탐색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이 됩니다. 민담과 신화가 주는 위로와 통찰을 통해 우리 안에 치유의 씨앗을 심어줍니다. (p. 27)'

'고슴도치 한스와 반쪽이' 이야기 속에서 '결핍과 불완전함'의 의미를 살펴본다. 결핍과 불완전함을 받아들일 때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린다.

'오딘과 환웅'의 이야기에서는 '관점의 전환과 희생의 가치'를 보여준다. 오딘이 한쪽 눈을 희생했을 때, 환웅이 하늘을 버리고 인간 세계로 내려오는 희생을 감수했을 때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깊은 통찰을 얻는다.

'아리아드네와 바리데기'의 이야기는 '버려짐과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입은 상처와 버려짐의 경험은 더 크게 성장하는 기회로 연결된다.

민담, 신화와 마찬가지로 꿈도 이미지와 상징으로 이야기한다. 꿈은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의식의 언어 밖에서 작동하므로, 꿈의 이미지와 상징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심리적 진실을 전달하는데 알맞다.

'융에게 꿈은 그저 욕망의 표현이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균형을 맞추는 '보상적 기능'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의식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꿈은 반대쪽 관점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p. 23)'

저자는 5년이란 시간을 방 안에서만 보낸 18세 소녀와 상담 과정을 책을 통해 전달한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기록해두었기에 상담자로서 저자는 그녀와 꿈의 관계에 주목했다.

상담 시간에 그녀가 꾼 꿈의 이미지를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했다.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도와주었고 그 과정에서 내담자는 자신의 무의식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다. 그렇게 성장과 치유를 도와주며 나침반이 되어 준 결과, 마침내 그녀는 미로 같은 삶에서 길을 찾게 된다.

'세상의 모든 미로에는 출구가 있습니다. 때로는 내면의 지혜가 필요하고, 때로는 타인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여정 자체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여정은 계속됩니다. 모든 변화와 성장의 이야기처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p. 173)'


자주 꾸는 꿈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 꿈이다. 항상 벽이 없는 곳에서 일을 본다. 허겁지겁 화장지로 닦는 둥 마는 둥 하는 꿈에서 깰 때마다 찝찝하다.

'화장실은 가장 개인적인 공간으로 자기 정화와 변환이 일어나는 장소인데, 문이 잠기지 않는 것은 그녀의 심리적 경계가 아직 불안정함을 의미합니다. (p. 167)'

융은 꿈이 우리의 마음에 균형을 가져다주는 '보상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융의 해석에 따르면 내 화장실 꿈은 낮 동안 불안정했던 감정과 기억을 꿈으로 보여줌으로써 심리적 항상성을 유지해 주려는 의도로 작동한 셈이 된다.


저자는 꿈 일기를 쓸 것을 권한다. 그것은 자신의 무의식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며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꿈 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감정, 욕구, 갈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p. 185)'

또한 꿈의 이미지와 상징이 내게 전해주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될 때, 꿈 일기를 쓰는 시간은 미로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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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나쓰메 소세키 지음, 장하나 옮김 / 성림원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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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이나 사직을 결심하게 만드는 건 사람이다. 일이 힘든 건 참을 수 있어도 직장에서 사람이 힘들게 할 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직장 생활할 때 아래 직원을 못 살게 해 여럿 내보낸 내 또래가 있었다. 힘들어하는 직원들이 나에게 토로해서 실상을 알고 있었지만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윗사람과 친하게 지내 진급도 빨라 의기양양한 상태라 어떤 충고도 먹히지 않을 거란 생각에서였다.


'나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무모함 탓에 어릴 때부터 손해만 보고 살아왔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2층에서 뛰어내렸다가 허리를 삐끗해 일주일쯤 제대로 걷지 못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왜 그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질렀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딱히 이유는 없다. (p. 7, 첫 문장)'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 속 주인공 '도련님'은 아버지, 어머니, 형 그리고 몰락한 유서 깊은 집안 출신의 나이 많은 하녀 기요(淸)와 함께 살고 있다. 기요만 도련님을 무턱대고 아낄뿐 가족 그 누구도 도련님을 '글러먹은 놈'이라며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기요는 가끔 아무도 없을 때면 부엌에서 "도련님은 성격이 참 좋아요" 하고 나를 칭찬하곤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p. 11)'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찍 죽자 형은 집을 팔아 '도련님'에게 600엔을 남기고 떠난다. 도련님은 안타깝지만 기요와 떨어져 공부를 마친 후 도쿄로부터 멀리 떨어진 시코쿠 근처의 중학교 수학 선생님을 자리를 얻는다. 학교로 가기 전 도련님은 조카 집에서 지내는 기요를 찾아가 작별 인사를 나눈다.

부임한 학교에서 도련님은 우리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군상을 만난다. 학생들마저 젊은 선생을 놀려먹는다. 부조리한 조직 문화, 겉과 속이 다른 인간들, 손익에 의해 사라진 도덕 속에서 융통성 없는 도련님은 갈등을 겪으며 고립되기도 하지만 비겁하게 도망치지 않는다.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정의의 편에 선 다음 학교를 그만두고 도쿄로 떠난다.

'아, 기요 얘기하는 걸 깜빡했다. 나는 도쿄에 오자마자 살 집도 정하지 않고, 가방을 든 채 곧장 기요가 있는 집으로 달려갔다.
"기요, 나 왔어!"
"아, 도련님, 이렇게 빨리 돌아와 주다니..."
기요는 이렇게 말하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나는 너무 기뻐서 다시는 시골로 돌아가지 않고, 도쿄에서 기요랑 같이 살겠다고 말했다. (p. 186)'


천방지축에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을 흔히 '도련님'이라 부른다. 생각 없는 사람이라며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도련님이라고 놀리는 사람들은 위선에 차 있다. 세상 물정을 너무 잘 알아서 아부하며 때때로 부조리와 야합을 일삼는다. '저래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하나'라며 오히려 '도련님'을 걱정하기까지 한다.

약자인 아래 직원을 못살게 굴면서 윗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내 또래에게 '내 말을 듣겠어?'라는 지레 짐작으로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건 비겁한 행동이다. '도련님'은 이런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비겁함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행동이다.

때로 '도련님'은 소수이기에 왕따당할 각오도 해야 한다.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말이다. 그러니 '도련님'이 되기가 쉽지 않다. 용기가 필요하다. 다행히 소설 속 도련님에게는 유일하게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 '기요'가 있었다. 항상 도련님 편에 서는 기요,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련님은 그런 기요를 믿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지금 지난날은 생각해 보니 나는 정의의 편에 선 '도련님'도 아니었고,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바라며 찾아온 직원들이 기댈 수 있는 '기요'도 되지 못했다. 그저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군상에 지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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