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인 계획
야가미 지음, 천감재 옮김 / 반타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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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료스케는 나카야마 출판에서 천재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로 통한다. 잘나가던 다치바나는 담당한 작가가 플롯을 도용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단행본 논픽션부로 쫓겨난다. 그러던 어느 날, 다치바나는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살해 협박 내용이 담긴 원고를 받는다.

'프롤로그
드디어 이 순간이 왔다.
나는 당신을 죽일 겁니다.
절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p. 39)'

사실 다치바나는 열한 살에 술에 찌들어 손찌검을 일삼는 아버지를 죽였다. 아들을 보호하려다 대신 온몸에 멍투성이가 된 어머니도 죽였다. 편들어 줄줄 알았던 어머니가 오히려 아버지를 두둔하며 뺨을 때렸기 때문이다. 그때 마침 큰 지진이 일어나는 바람에 증거가 사라져 아무 일없이 지나갔다.

'나는 어떻게 죽일까? 하는 구체적인 수법 외에 어째서 범죄자로 성장하는 걸까? 하는 측면을 여러 각도에서 고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p. 175)'

그 이후에도 미스터리 소설 편집자답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는 살인, 자신이 죽는 순간까지 자기 왜 죽는지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하며 꿈꾸며 살인을 두 차례 더 했다.

마침내 다치바나는 자신을 완벽하게 죽이려는 자를 찾아 나선다. 오히려 그자를 죽이려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을 계획한다.


웹툰 원작의 드라마 <살인자O난감>에서 이탕(최우식)은 우발적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다. 공교롭게도 살인을 가리키는 증거가 우연히 모두 사라진다.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났고, 자신이 죽인 사람들 모두 죽어마땅한 자들임을 알게 된다. 우발적 살인은 이탕의 능력이 되고 정의가 된다. 살인을 정당화한다.

'대다수는 객관적으로 볼 때 '그런 우연이 어디 있어?' 하고 의심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아름다운 살인에 필요한 조건이다. 이 세상에 100퍼센트 완벽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우연으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이 파괴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겹치는 우연에 극한으로 집착함으로써 다른 사람이 보더라도 들키지 않는다는 아름다움이 생긴다. (p. 195)'

마침내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찾아낸 다치바나는 그가 세운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 계획을 실행한다. 하지만 우연하게도 정말 우연하게도 그의 살인을 목격한 의외의 사람이 나타난다. 다치바나의 살인 계획은 완벽하지 않았다. <살인자O난감>의 이탕에게도 우연은 계속되지 않는다. 이탕의 살인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란 뭘까요? (...)
... 간단합니다. 답은 심플하죠.
범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살인, 이게 내가 내린 답이에요. (pp. 291, 292)'

다치바나의 아들에게 아버지는 살인자가 아니다. 어릴 때 놀이터에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의 눈에 아들은 스스로 여러 가지 놀이를 발견해 놀았다. 외발로 서서 깡충깡충 뛰는 놀이를 즐겼다. 꽃을 좋아하는 아들은 길가에 핀 꽃을 꺾어 꽃병을 꾸미기도 했다.

다치바나의 아들은 한 발로 서서 발끝에 체중을 싣고 뛰는 놀이를 가장 좋아했다. 나무 뒤를 뒤져 빈 껍데기도 아니고 살아있는 것도 아닌 것들을 30분 동안 작은 산이 될 때까지 모아놓고 외발뛰기를 한다. 으적, 으적, 콰직. 으적, 으적, 콰직. 감자칩을 밟아 뭉개는듯한 느낌이 좋다. 아버지가 몹시 흐뭇해했던 것을 기억한다.


살아있지만 사회에서 배제시킴으로서 사회적 생명을 빼앗는 살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벌어진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뒤바뀌기도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구별이 안되는 살인이기도 하다. 살인. 혐오, 학대, 무관심, 가스라이팅, 차별 등이 살인도구로 쓰인다.

유괴해서 죽이고, 강간하고 죽이고, 강도질하고 죽이는 등 이기적인 욕구로 벌인 살인은 아무리 우연이 겹치더라도 완벽할 수도 아름다운 수도 없다. 완벽하고 아름다운 살인은 없다.

그렇지만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르는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은 있다. 여기저기서 벌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궁극의 살인이라도, 정의를 앞세운 살인이라도 살인은 살인이다. 벌받아 마땅한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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