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능 우울증 -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고장 나 버린 사람들
주디스 조셉 지음, 문선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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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내내 34년 몸담았던 나의 직장 생활이 떠올랐다. 퇴직 무렵 섭섭함이 앞서긴 했지만 그럭저럭 아무 문제 없이 직장 생활을 마쳤다. 하지만 읽어나갈수록 이 책은 내 직장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받은 비난은 수치심으로 변해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진급 때가 되면 나를 평가한 상사들에게 여러 번 배신감을 느꼈다.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에 힘들었고 어떤 때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프로젝트가 완성됐을 때조차 성취감이라는 기쁨도 제대로 느꼈던 적이 없었다. 나 혼자만 뿌듯해했을 뿐 인정받는데 인색했다. 희생을 마치 절대선처럼 여겼고 자랑삼기도 했다.

과장 시절 동네 사는 임원과 카풀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자동차 검사를 1년 동안 깜박한 그 임원은 그 기간만큼 면허정지 상태가 됐다. 뜻하지 않게 1년간 기사 노릇을 했다. 임원에게 일이 있으면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거나 약속 장소까지 동행한 날이 많았다. 직장 동료나 상사들은 임원과 친하게 지내는 나를 부러웠고 했다. 퇴근 후 내 시간이 사라진 걸 눈치 채지 못한 나는 은근히 즐겼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듯 모두를 위해 애쓰지만 정작 자신의 기쁨은 서서히 사라져 가는 피로감, 무감각, 초조함을 '고기능 우울증 high-functioning depression'이라는 이름으로 명확히 정의한다. (p. 7)'

34년 직장 생활 동안 '고기능 우울증' 상태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연구자인 주디스 조셉은 '고기능 우울증'의 뿌리를 트라우마, 무쾌감증, 마조히즘으로 분석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서 말한 내 직장 생활을 살펴보면 이 세 가지가 모두 내게 해당된다.

책 49쪽 '나는 고기능 우울증일까?' 테스트 결과를 보면 내가 '고기능 우울증'을 달고 직장 생활을 했음이 좀 더 명확해진다. 퇴직 후 몇 년 동안 직장 생활 꿈이 악몽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저자는 '고기능 우울증'으로 무너진 자아를 회복하여 자신의 진정한 욕구를 존중하고, 모든 관계에서 기쁨을 발견하며, 삶을 즐거움으로 채우는 방법으로 '5V 원칙'을 2부에서 제시한다.

나를 받아들이는 힘 '인정 Validation', 감정 해방의 시작이 될 '환기 Venting', 내 삶의 기준 '가치 Values', 몸과 마음의 신호에 귀 기울이는 '활력 Vitals' 마지막으로 회복의 지도를 그리는 '비전 Vision', 이렇게 다섯 가지 V가 '5V 원칙'이다.


퇴직한지 4년 차인 지금은 직장 생활 악몽이 등장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주디스 조셉이 제시한 과학적 도구 '5V 원칙'을 나도 모르게 실천한 까닭일까?

스트레스의 원인을 곱씹어 본듯하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조금 이기적으로 변했다. 아직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나의 기분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축하하고 축하받는 쑥스러움도 많이 없어졌다.

그럼에도 제일 힘들었던 건 '자기 인정'이었지 싶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마다 억울했다. 인정하고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어리석었는지. 그 어리석은 나를 받아들이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보다는 그 문제나 생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일상생활을 이어가 보라고 권한다. 이것이 바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타인지 치료 Metacognitive Therapy, MCT의 기본 원리다. 메타인지를 통해 우리는 '자기 생각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훈련할 수 있다. (p. 168)'

'자기 인정'을 하기 시작한 건 책을 읽으면서였다. 책을 통해 메타인지 치료 중이다. 책은 나를 떨어져서 살펴보도록 만든다.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책이 알려준다. 나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기... 지금도 진행 중이다.

'기억하자. 인생은 한 번에 끝나는 목표가 아니라 '진행 중인 과정'이다. 좋은 날도 있고,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 그 과정을 지치고 힘든 일로만 여기지 말고, 오히려 흥미로운 여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책 앞부분에서 내가 "고기능 우울증을 극복하면 당신의 삶에 어떤 가능성이 열릴까?"라고 물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이제 당신은 자신의 행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과학적 도구와 그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기를 바란다. (p.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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