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제172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스즈키 유이 지음, 이지수 옮김 / 리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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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2월 31일이면 송구영신 예배를 드린 후 말씀 카드를 뽑는다. 뭐,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어쨌든 난 그 성경 말씀을 언제나 쉽게 볼 수 있는 독서대에 놓고 마음으로 읽곤 한다. 올해 뽑은 성경 구절은 요한복음 1장 14절 말씀이다.


스물세 살 대학원생 스즈키 유이의 첫 장편소설로 올해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어는 독문학자의 괴테 명언 출처 찾기 여정'이다.

주인공 히로바 도이치는 괴테 연구 일인자다. 도이치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딸이 데려간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무심코 집어 든 홍차 티백 꼬리표에 적힌 괴테의 명언을 본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누가 한 말인데?" 아키코가 물었다. 도이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꼬리표만 가리켰다. 그 문장 아래에는 'Goethe'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p. 19)'

괴테를 연구해온 도이치에게 이 글귀가 너무 생소해 괴테가 한 말인지 의심이 들었다. 물론 독일 사람들은 명언을 인용할 때, 누구의 말인지 모르면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일 정도로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괴테 전집을 살펴보기도 하고, 알만한 사람들에게 메일로 그 말의 출처를 물어보는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명언은 요약한 형태로 퍼지기도 하고, 옛날부터 있었던 글귀를 누군가 계속해서 인용해 전승형 명언으로 남기도 한다. 그리고 하지도 않은 말인데 누군가 그가 한 말이라 지어낸 위작형 명언도 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이건 루터가 한 말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어.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했다는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지'도 마찬가 지야. 아무래도 루소의 <고백록>에 나온 일화가 미움받던 왕비와 연결된 듯해. (p. 76)'

도이치는 가족과 함께 프랑크푸르트까지 찾아가 아내 아키코가 좋아하는 유튜버 베버 씨로부터 괴테 명언이라고 확신할 만한 근거가 될 편지를 건네받는다.

'"자, 봐요. 이게 괴테의 편지예요."
베버 씨는 도이치에게 낡은 종이 한 장을 건넸다. (...)
지난번 꽃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소 특이한 모양이지만 향기는 분명 장미와 비슷하니 참 신기했습니다. 친구에게 보여주자 이런 것도 꽃이냐며 놀라더군요. 하지만 실로 조물주의 사랑은 하나의 꽃에서 모든 꽃을 싹트게 했습니다. 그걸 알면 우리 인간도 언젠가는 혼란 없이 뒤섞이리라 믿을 수 있습니다. - 괴테 (p. 216)'

이 문장을 베버 씨가 "조물주의 사랑은 모든 것을 혼란 없이 뒤섞는다"라고 요약했을 테고, 중국인 명언 사이트 운영자가 조물주를 빼고 영어로 옮겼을 것이다. 그것을 미국 티백 회사에서 발견해 티백 꼬리표에 명언으로 실은 듯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하지만 이 편지가 괴테의 친필 편지가 맞는지 의심이 생겼다.

도이치는 티백 꼬리표에서 우연히 발견한 괴테 명언의 출처를 확실하게 찾지 못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스승인 장인, 딸, 딸의 남자 친구, 아내 등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이 가진 다른 모습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그룹 이름 '롯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샤를로테로부터 비롯됐다. 창업주 신격호 회장은 괴테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우아하고 교양 넘치는 로테가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듯, 롯데도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창업회사명에 담았다. 내가 PM으로 진행했던 뮤지컬 전용 극장 '샤롯데씨어터'의 극장 명도 마찬가지로 샤를로테의 이름을 빌렸다.

명언 인용의 대가라 할 수 있는 카피라이터이자 작가 박웅현은 1년에 30~40권 정도의 책밖에 읽지 않는다고 한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적게 읽는 편인데도 책을 많이 읽는다는 오해받는데 그 이유는 또박또박 끊어 책을 읽다 보니 다른 사람보다 인용하는 글이 많아서였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한다.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프란츠 카프카 말에서 그의 책 <책은 도끼다>라는 카피가 탄생했다.


'도이치는 자신의 말을 결코 끝까지 믿지 못하는 남자가 하는 말을 들으며, 그 말을 믿어줄 수 있었다. 그 말은 진짜였기 때문이다. 설령 좋은 말은 모두 연기라 해도 그 안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 차례 연습하며 입에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면 마침내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면,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다. (p. 239)'

나는 <대학>과 <중용>에 나오는 '신독愼獨'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산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 글귀가 괴테의 말이 맞는지 찾는 과정에서 도이치는 수없이 이 글귀를 되뇌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도이치에게 말의 출처보다 그 글의 새로운 의미가 앞섰을 것이다.

한 성경 구절을 내가 뽑음으로써 올 한 해 동안 그 성경 구절은 내게 특별함을 지닌다. 자신이 세운 회사 명에 소설에서 얻은 감명을 얹을 때 괴테의 글은 신격호 회장이 세운 회사의 직원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카프카의 명언이 자신이 아끼는 책의 제목으로 탄생하기도 하고. 그리고 누군가는 나처럼 어떤 말에 나름의 의미를 담아 좌우명으로 삼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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