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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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에게 버려지고 위탁가정을 맴돌다 인생의 단짝 피스켄을 잃은 루이사는 이제 살아갈 이유가 없다. 밑바닥 인생. 이제 조금만 있으면 18세 성년이 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는 눈꼽만큼도 없다. 어차피 막장 인생이니까. 그런 그녀에게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유명한 화가 C.야트의 작품 <바닷가의 초상>을 꼭 보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바닷가의 초상>에서 바닷가의 풍경만을 칭송하며 큰 돈을 본다. 하지만 루이사는 다르다. 그 곳에 있는 세 명의 아이들이 보인다. 자신과 같은 외로움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아이들을. 그래서 마지막으로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를 몰래 잠입한다. 한 번이라도 실물로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간단한 희망을 가지고. 하지만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루이사는 잡히고 도망치던 중 실제 화가인 C.야트를 만나게 되고 그 그림에 대한 오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부유한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세 아이의 외로움. 그 외로움을 찾아 여행하게 된다.


이 친구들의 우정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프레드릭 버크만은 '예술'에 비유한다.

화가의 초기작이 그려진 배경을 따라가는 여행이니만큼 우정은 어떻게 예술과 비교할 수 있을까?

가장 굴곡이 많은 시기, 열네살과 열 다섯살. 1년이라는 짧은 시절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시키기도 또는 변화시키기도 충분한 시간이다. 세 명의 소년들. 테드, 요아르, 화가, 그리고 또 다른 소녀 알리까지 네 명의 긴 우정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두 인생의 어두움을 살고 있는 청춘들. 누군가는 가정폭력에, 누군가는 아버지의 암투병으로 어려운 환경이고 누군가는 무능력한 부모님에 의해 떠밀려든다. 그들은 서로를 쉽게 알아본다.

왜? 같은 외로움을 가진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우리와 같은 과라는 것을.

같은 과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서로를 품어준다.

네 명의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세상이 밑바닥인 세상을 보았다. 자신들을 위해서는 꿈을 꾸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를 위해서는 기꺼이 꿈을 꾸어 주었다. 꿈을 꿀 수 없는 환경에서 화가를 위해 기꺼이 꿈을 꾸어주는 어마어마한 바보들.

험난한 생활 속에서 우정만으로 존재이유가 되어주듯 예술 또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서로를 위해 꿈을 꾸어주었고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끝까지 절망으로 가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같은 과였기에 서로가 밑바닥일 때도 끝까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찾아왔고 함꼐 해 주었다.


그리고 기꺼이 같은 과라는 걸 아는 순간 루이사에게 그리고 루이사는 다른 아이를 알아보고 손을 내민다.


화가가 유명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의 잠재력을 처음으로 알아봐 준 타인 학교 수위 크리스티안의 어머니의 말을 인용한다.

"예술에는 친구가 필요하지."

적이 아닌 친구가 필요한 게 예술이기에 화가는 그림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었다.


묘비에 그렇게 쓰려고.

사랑해. 그리고 널 믿어.

우리가 서로에게 항상 했던 말이거든.

193p


사랑해, 그리고 널 믿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들.

이들의 우정은 이미 한 폭의 그림이었고 위대한 완성이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같은 과인 사람만이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나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을까?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사랑해. 널 믿어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이 소설은 그걸 충분히 담아낸다. 이미 나이 먹은 나는 소설 속 우정을 찾을 수 있는 행운은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같은 과'를 만나면 서로 안아주고 싶다. 힘내라고. 그게 이미 어른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누군가가 유난히 그리워진다. 소식이 끊긴 오랜 친구들이 유난히 보고 싶어진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 사랑한다고, 널 믿는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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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학교 학부모 공개수업이 있었다. 반차를 내고 학교에 갔다.

아이가 그린 성장동화가 생각보다 예뻐서 대견스러웠다.

공개수업이 끝난 후 남편과 함께 식사를 하고 남편이 데려다 주어서 회사에 편히 도착할 수 있었다.

마침 이사님과 사장님 모두 출장 중이셔서 한가로운 날들이었다.

평안했던 하루였다.






SNS 피드를 보던 중 세월호 유족 유민아빠 김영오님의 페이스북 피드를 본다.


나에게는 평안한 하루지만 누군가에게는 제일 슬픈 날로 기억되는 하루..

벌써 12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자식을 바닷가에 떠나보낸 억울한 죽음에 대한 슬픔이 사라지겠는가.

누군가는 말한다.

이제 그만 할 떄도 되지 않았느냐고.

이제 떠나 보내고 새 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마침 이제야 시인의 <슬픔의 펼침면>의 '오늘의 여력'이라는 시 한 구절이 들어온다.

골목을 지나다 낡은 의자에 앉은 소년을 봅니다.

소년도 자장가를 들으며 자랐겠지 생각하면 애처롭지 않습니다.

서로가 모르는 슬픔은 자주 쉽게 해석됩니다.

불면증을 겪는 사람과 춘곤증이 시작되었다는 사람을 견주어봅니다.

겪는 것과 시작되는 것 중에 무엇을 먼저 위로해야 할지에 대해

시차 없이 비슷한 고통에 대해

오늘의 여력 / 이제야


이제 그만 할 떄도 되었다고 하는 사람은 슬픔을 쉽게 해석하는 사람이다.

각각의 슬픔은 개인만이 해석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모르면서 자꾸 해석하려고 한다.

슬픔을 해석하고 자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한다.

슬픔을 해석할 수 없다면 옆에서 어느 조언도 해 줄 수 없다.


누군가는 그 해석이 빠를 수도, 느릴 수도 있다.

그 해석은 설사 100주년이 된다 하더라도 지켜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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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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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에 꼭 필요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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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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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장편소설 『슬픔의 물리학』 은 첫 장부터 독자를 미궁으로 몰아간다.

책의 첫 문장은 나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1913년 8월 끝자락에 남성 인간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한 단락이 끝난 후 '나'의 존재는 달라진다.

"나는 해가 뜨기 두 시간 전에 초파리로 태어났다." 로 갑자기 초파리가 되고 또 다른 단락이 시작되면 1968년 1월 1일 남성 인간, 또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되는가 하면 언제나 태어나 있는 존재가 된다.

끊임없이 달라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맞게 변하는 존재인 것일까? 라는 혼란에 빠진다. 그 답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다르다. 내가 다른 여러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들어가 이입될 수 있는 '병적 공감' 혹은 '강박적 공감- 신체화 증후군' 이기 때문이다.

병적 공감.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되어 느낄 수 있는 존재이다.

나는 어려운 시절 버려졌던 할아버지의 세 살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울 수도 있으며 그리스 로마 신화의 미노타우로스의 슬픈 현실에 통곡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재능도 어른이 되어가며 공감능력이 점점 쇠퇴한다. 글을 쓰는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해나간다.

『슬픔의 물리학』 은 그래서 슬픈 이야기들의 집합체이다. 부모의 잘못으로 태어나 영원한 미궁 속에 갇힌 미노타우로스를 비롯하여 옛날 유행하던 전자 다마고치등 지금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모은다. 이제는 쓸모 없는 것들. 이야기되지 않거나 또는 잊혀져 가는 것들을 모은다. 없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들, 잊어버려도 아무 영향 없는 것들을 찾기 위해 옛 신문이나 잡지를 찾는다. 왜 그게 중요할까?



정말 소중한 것은 잊혀지기 쉬운 것이기 때문이다.

죽는 것. 썩는 것. 부서지기 쉬운 것.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나와 너의 존재다. 즉 우리의 이야기다. 여기서는 타인의 슬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은 죽고 썩어 사라지기 쉬운 존재이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찾아 기억해야 한다.

어둠 속에서 훌쩍거리며 성냥을 켜는 것. 그건 희망이 아닐까. 나가 모으는 슬픔의 이야기들 속에서 빛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이 슬픔이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슬픔의 물리학』 의 저자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슬픔'에 집착한다. 희망은 기쁨 속에서 돋아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하루만 지나도 휙휙 변하는 세상이 이제 한 시간, 아니 1분 간격으로 SNS에 새로운 소식이 들려온다.

이야기들이 쉽게 묻히는 세상. 그 세상 속에서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대하는 방식은 어떠한가.

땅에 묻히든,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글을 쓰든 90퍼센트 이상이 영원히 상실되는 수많은 이야기.

그것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저자는 캡슐의 좌표를 담은 '엄마 캡슐'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나 말하려고만 하는 시대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남기는 사람, '엄마 캡슐' 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해준다.

그래서 소설 속 나는 '사라진 존재'를 모은다.

잊혀진 다마고치, 옛날의 삐삐, 비디오카세트, 테이프 녹음기..

사라진 존재는 그냥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추억팔이용만으로 끝내야 할 것인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그건 소설 속 '나'가 이야기를 모으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 많던 다마고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옛날의 삐삐 곁으로.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173p

슬픔을 모으는 것. 그건 우리 인간의 존재를 알기 위해서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세상은 가장 슬픈 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 슬픈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 그것이 바로 슬픔의 물리학이다.

현대는 슬픔을 이야기하기 거부하는 시대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 굳이 힘든 이야기를 꺼내나며 이야기를 기피한다.

그렇다고 피해야만 하느냐. 그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슬픈 이야기들이 필요하기 떄문이다.

슬픔이 이야기되지 않는 시대는 희망이 생겨날 수 없다.

『슬픔의 물리학』은 읽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독자들을 여러번 미궁 속에 빠뜨릴 것이다.

낯선 불가리아의 역사, 그리스 로마신화의 지식, 또는 여러 지적호기심까지도 자극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더 독자들을 쉽게 헤어나올 수 없게 할 것이다.

슬픔이 이야기되지 않는 시대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슬픔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야말로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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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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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실을 이토록 자세하게 보여준 르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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