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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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현실을 이토록 자세하게 보여준 르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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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벤 프리먼 지음, 백우진 옮김 / 부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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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광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그들은 늘 전쟁을 하고 싶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미사일 한 기는 200만 달러입니다. 이게 그 이유입니다. 

그들은 전 세계에 미사일을 떨어뜨리기를 좋아합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합과 이란의 전쟁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빠른 시일 내에 이란을 무릎꿇릴거라 예상했던 트럼프의 확언과 달리 이란은 쉽게 전쟁을 끝내지 않는다. 뉴스에서 이스라엘도 전력이 거의 소진되었고 미국에서도 군비로 수많은 예산이 지출되고 있다고 한다. 막대한 비용이 줄줄 새고 원유는 최고가를 올리는 상황에서도 트럼프는 이란 다음에 쿠바 차례라며 미국의 군사전쟁이 계속 될 것임을 알렸다. 


왜 트럼프는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국제경찰역할을 마다하던 트럼프가 왜 평화를 외치며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바로 윌리엄 D. 하텅과 벤프리먼의 책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이다. 


윌리엄 D. 하텅과 벤 프리먼은 퀸시책임국정연구소의 외교 정책 민주화 프로그램 책임자로서 군수산업등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이다. 


먼저 이 책의 부제는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이지만 두 공동 저자들은 단지 '트럼프'라고 하지 않는다. 

  대선 당시 군수산업비를 줄이겠다고 공약하던 트럼프가 취임 이후 국방비를 줄이기는 커녕 더 늘려가고 전쟁을 확대하는 추세에 대해서 곁들어 설명할 뿐이다. 


두 저자들은 트럼프 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의 대통령들 즉  미국 역사상 공화당과 민주당을 막론하고 모든 대통령들이 지속적으로 전쟁과 군비를 늘려 왔음을 설명한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 수상한 버락 오바마도 예외가 아님을 강조한다.  

왜 정치색 이념이 전혀 다른 양당구조에서도 군사주의 정책은 같은 기조를 유지하는가? 그 이유에 대해 이 책은 깊이 파고든다. 

먼저 우리는 이 이유에 대해서 명확히 알고 있다. 바로 '돈'이다.  그 '돈'을 가져가는 사람은 누구인가? 


뻔하다. 방산업체다. 저자는 이들이 가져올 위험을 처음부터 경고하고 '군산복합체' 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그 때부터 위험을 경고했건만 그들의 움직임은 이미 기울어진 권력인 아이젠하워의 경고에 귀담아듣는 사람들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군산복합체'의 주체는 누구인가? 


현재 미국 방산을 주름잡고 있는 '빅5' 록히드 마틴, 레이시온,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노스럽 그러먼이다. 

그리고 신기술을 앞세운 후발주자 방산업체 팔란티어, 스페이스X, 안두릴 인더스트리스 등이 있다. 

아이젠하워는 이 방산업체들을 '군산복합체'라고 불렀지만 저자들은 이 책에서 이들을 '전쟁기계'라고 부른다. 




국방부가 이들 기업에 쏟아붓는 모든 부서의 예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은 돈들을 업체와 계약에 쏟아붓는다.

저자들이 궁금한 건 한 가지다.

전쟁기계에 쏟아부은 이 돈들이 과연 평화에 기여했습니까?

전쟁기계들은 과연 이 나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인의 삶의 질을 높였습니까?


특히 전쟁기계들이 주구장창 외치는 '무기 수출은 곧 미국 일자리' 라는 메시지는 현실에 맞는가?

저자들은 방산시설이 있는 곳을 추적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이 '미국 일자리'를 외치던 방산 시설이 있는 곳이 바로 미국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다는 사실이다.


방산업체들의 로비스트들에 의해 좌우되는 미국 국방정책, 그리고 우리에게 <힐벌리의 노래>로 잘 알려진 대표적인 흑수저 J.D 밴스가 대표적인 금수저 트럼프의 손을 잡게 된 데에는 팔란티어 등 군수업체의 든든한 뒷배경이 있는 사실까지 이 책은 시원하게 폭로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미국의 전쟁기계를 멈출 수 있는 대통령은 없을 듯 하다. 이미 의회에는 로비스트들이 온갖 압력을 가하고 있고 대통령은 방산업체들이 주머니를 채워주고 있다. 여기에 AI 기술의 개발로 전통적인 빅5 방산업체와 테크 방산업체의 대결로 국방 예산을 둘러싼 싸움은 갈수록 치열할 듯하다.


이 책에서는 그 대안을 '평화 네트워크'로 꼽지만 사실상 가능해 보일 것 같지 않다. 전쟁 기계의 배를 채워주기 바쁜 미국의 현실에 대해서 매우 정교하게 설명해 주지만 해결책은 너무 요원해 보이는 바램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아쉽다. 하지만 이미 깊숙이 침투한 방산업체의 쓴 뿌리를 바로잡기에는 힘이 들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전에 트럼프는 이란과의 전쟁을 끝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트럼프가 아닌 미국 국민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단지 분노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닌 명백한 '전쟁 반대'의 슬로건으로 나아갈 때 트럼프와 전쟁 기계들을 잠시 멈출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이슬아 작가는 '팔짱을 낀 채로는 응언할 수 없다'고 했다. 팔짱을 낀 채로 전쟁을 반대할 수 없다.

잠시라도 멈추기 위해서는 팔짱을 풀고 똑바로 외쳐야 한다. 비록 느리지만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건 저자가 외친 대로 미국 국민들의 평화 네트워크가 아닐까 생각된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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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 -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함윤이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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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정전』을 읽으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떠올랐다.


고유림은 빚에 쪼들리는 부모가 속상하고 안타까워 싫은 소리를 한다.


"마음이 뭘 해 줄 수 있는데?"


마음만으론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유림은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 나희도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그래서 유림은 다시 엄마에게 말한다.


"알고보니, 마음만이 해 줄 수 있는 게 있더라."


✔️마음만이 해 줄 수 있는 것.

그것을 알게 하는 소설이 바로 <정전>이었다.


소설의 구조는 특이하다.

아버지의 사기로 몰락한 집안 형편,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제약공장 계약직 직원으로 내몰린 막은 수지와 영준 그리고 재외외국인 라히루와 친해진다.


라히루에게 친구 이상의 감정이 생기던 즈음 라히루의 공장 사고를 접하게 된다. 보호받기는 커녕 라히루의 처지를 악용하여 그를 해고한 공장의 행태에 분노하여 노조를 가입한다.


하지만 계약직인 막도 어쩔 수 없는 일.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막도 쫓겨나고 바깥에서 애쓰게 싸우는 노조를 보면서 막은 외면하고 싶었던 친구 은단을 찾아간다.


모든 걸 정전시킬 수 있는 초능력의 소유자 은단. 그 은단에게 부탁하자. 친구 라히루를 다치게 하고 무고한 노동조합 가입자들을 해고시킨 공장을 놀라게 해 주자.


그렇게 공장을 정전시킬 계획을 세우는 막.

과연 그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세상은 '마음'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게 많다. '돈'이 없으니 막은 당장 대학을 휴학하고 일을 해서 등록금을 벌어야 한다.


노조 또한 뙤약볕에서 농성하지만 돈은 없고 시간만 있는 노동자들은 질질 시간끌기에 지쳐간다. 노동자들은 지치는 반면 돈을 쥐고 있는 공장은 끄덕없다.


하지만 정말 '마음'은 힘이 없는가?


마음은 힘이 없다. 그 말은 맞다. 


막이 타인과 내가 다르다고 생각했을 때 막은 함께 하지 못했다. 

외국 출신인 조안을 토종 한국인인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 순간 그 거리감은 마음을 쓰지 못하게 한다. 

학교로 돌아갈 곳이 있는 자신은 회사 복직이 최우선인 노동조합자들과 같은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마음을 쓰지 못한다. 

항상 뒤에서 멀리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마음은 '돈'이 해줄 수 없는 걸 해낸다.

퇴직금을 받지 못한 막을 위해 돈을 챙겨 주고 한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막의 마음을 돌이켜세운다.

막이 라히루를 위해 노조에 가입하게 하고 은단이 막을 위해 정전을 일으키게 한다.

누군가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건

막처럼 작은 행동을 하게 하거나 은단처럼 그 마음이 커져 정전과 같은 놀라운 기적을 벌이게도 한다.

그래서 막상 결전의 날에 막이 주도했음에도 은단이 실제로 주인공처럼 보일 수 있었던 건 '마음'이 있는 사람이 은단이었기 떄문이리라.



라히루의 연인 서영은 마음에 대해서 말한다.


나는 그애를 사랑하고... 

그래서 잘 알아요. 

나한테 걔는 핑곗거리 같은 게 아니에요. 

그보다 훨씬 넓고, 많고, 다양하고...


마음은 훨씬 넓고 많고 다양한 힘이 있다고. 그러니 그 마음을 무시하지 말라고.


이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마음을 믿고 싶어진다. 오로지 남을 생각하고 위하는 마음. 그 마음만이 주는 힘을 나도 은단처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상상을 하면서.


속도감 넘치는 전반부보다 후반부가 조금 아쉬운 면은 있다. 하지만 소설은 마지막까지 마음만이 해낼 수 있는 일들을 충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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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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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도덕성을 따지지 않는다.


경제공부를 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다. 자산시장에서 그 기업이 깨끗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만 중요할 뿐이다. 철저하게 '돈'이 중심이 되는 세계인 자본주의 시장이 인간 관계로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나에게 돈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은 사람이든 자산이든 인정 받지 못한다.

소설 《아몬드》의 저자 손원평 작가의 신작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놓은 인간 관계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돈'에 따라서 달라지는 인간 관계를 다룬 이야기를 10편의 단편에 담아넣는다.


먼저 첫 번째 단편 <당신의 손끝>에서 '돈'에 대한 정의를 보자.

세난동에 있는 프리미엄 컬처 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하는 효원. 효원의 강의에서 VIP 수강생은 주영씨다.

주영씨가 모든 강의를 등록하며 효원의 주머니도 전보다 여유로워진다. 효원은 주영과 효원과의 신뢰 관계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영을 믿고 포기하고 있었던 화실의 꿈을 다시 키운다. 그 꿈을 키우게 해 주는 건 무엇일까?

수강생 주영씨와의 인간적인 관계일까?

그럴 수 없다. 주영씨로 인해 벌어들이는 여유, 즉 '돈'이다.

어딘가 메말라 있던 효원의 일상에도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가 생긴 것이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윤기 있는 모든 것.

모두의 기분을 단번에 좋게 만들어버리는 것.

그것의 이름은 뭘까.

효원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일기장에조차 그 한 글자짜리 단어 대신

다른 말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했다.


일상을 반짝이는 윤기.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 기분 좋게 만드는 것.

이 단어에 동의하는가? 슬프게도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수강생이 인간으로 안 보이고 '돈'으로 보이는 관계. 그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까? 철저한 '돈'과 '돈'의 관계는 인간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을까?


첫 번째 단편 <당신의 손끝>에서 '돈'을 일상에 빛을 반사해낼 무언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런 '빛'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빛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은 바로 <유령의 집>이다.

마음씨 착하며 노숙자나 동물들에게도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을 꿈꾸며 야심차게 시작한 식당.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재료는 썩어가고 월세는 밀려간다. 식당이 안 되는 이유를 동업자인 동생은 '볕이 잘 안 들어서'라고 말한다.



<당신의 손끝>에서 '돈'이 빛을 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면

<유령의 집>에서 '돈'이 없기 때문에 볕이 들지 않는다. 돈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자본주의 논리에 돈이 없는 사업은 해도 행운도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행운도 허락되지 않는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분개하는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가? 아니다. '절망'에 익숙해진다.

<모자이크>에서는 해도 행운도 들지 않는 삶을 한 마디로 설명해준다.



절망하는 것도 일말의 희망이 있어야 가능하다.

행운도 들지 않는 상태는 '절망'도 허락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답이 없는 삶. 그 삶의 끝은 그저 살아가는 것 뿐이다. <유령의 집>과 같은 선택을 하거나 또는 그 상태로 살아가는 것 뿐이다.

부자가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상태를 유지하기 살아가기 힘든 삶.

돈이 없으면 바로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만들어진 사회는 어떤 상태가 되는가?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을 밟거나 죽어야 하는 삶.

더 잔인하고 가혹하게 죽이기 쉽게 만들어진 구조를 보면 시스템이 나쁜 것일까 아니면 인간이 악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누가 문학을 낭만이라 했던가.

이토록 처절하고 사실적인 소설이 과연 낭만이라 할 수 있는가?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를 읽으면 바로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리고 타인의 얼굴이 겹쳐진다.

나쁜 의도는 없었습니다.

단지 이 시대가 어쩔 수 없으니까요...

돈으로 귀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인간성은 이대로 사라지는 것인가?

저자 손원평 소설가는 그 답을 읽는 독자에게 남긴다. 그리고 그 답은 우리 각자가 만들어가야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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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하는 눈동자 - 양장
이슬아 지음, 이훤 시.사진 / 먼곳프레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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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한다는 건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의심하고 쉽게 흔들린다. 굳은 확신을 가져도 살기 힘든 세상에 이슬아 작가는 '갈등하는' 눈동자들을 이야기한다. 과연 갈등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슬아 작가는 글,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현실 속에서 여러 갈등하는 눈동자들을 만난다. 

먼저 갈등의 이유를 알아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확신에 찬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이 믿는 것과 아는 것들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확신 하에 살아간다. 하지만 갈등한다는 건 이게 맞는 것인가를 생각한다. 
하나의 작은 돌이 잔잔한 강에 작은 물결을 일으키듯 이제껏 알고 있던 믿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며 균열을 낸다. 

이슬아 작가는 그 균열을 낸 사람 중 한 명으로 변재원씨를 소개한다. 장애인이지만 자기계발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 투쟁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는 부모 밑에서 자란 변재원씨의 갈등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박경석님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투쟁을 하고 싶어서보다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게 되며 갈등하며 교통약자의 해방을 위해 함께 활동하게 되는 변재원씨의 눈동자였다. 


<장애시민 불복종>은 활동하자는 제안을 수락한 뒤에 겪은 일이 담긴 책이다.  모든 이야기는 변화에 관한 이야기지만 변재원이 전장연을 만나며 겪은 변화는 역시 특별한 데가 있다. 투쟁하는 힘이 곧 사랑하는 힘이란 걸, 그리고 사랑의 방식만큼이나 투쟁의 방식도 수백 수천 갈래로 창의적이란 걸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확신에 찬 사람들은 약자들을 보지 못한다. 자신의 이익에 젖어, 당연한 권리에 젖어 있다. 
그들은 변화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변화를 내는 사람들은 의심하는 사람들이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인가 질문하며 의심한다. 그 의심과 갈등 끝에 변화를 택하며 변재원씨처럼  수동적인 생활에서 능동적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이슬아 작가는 '갈등하는 눈동자'는 흔들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갈등하는 눈동자'는 보는 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를 소개한다. 
전 남편이 찍었던 아니 에르노와 어린 아들의 비디오. 그 비디오는 아들의 육아에 행복해하는 엄마로서 아니 에르노만의 모습이 담긴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는  시선을 응시받는 자에서 응시하는 자로 옮겨간다. 남의 눈에 비춰지는 자신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응시하며 자신을 설명한다. 그 때의 자신을 솔직하게 응시하며 에르노는 자신의 경험을 글로 온전히 녹여내는 작가가 되어간다. 한 가지 방식으로만 자신을 보았다면 쓸 수 없었을 에르노식 글쓰기를 이게 맞는가 고민하며 갈등하며 시선을 자기 자신으로 옮겨 감으로 자신만의 글쓰기를 만들어간다. 



또한 덴마크로 입양되었던 리 랑그바드 인터뷰를 통해 사회 구조적 죄악으로 어느 곳에서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던 구조에 의문을 제기하고 화를 내는 그녀의 책과 인터뷰 또한 그 시절 눈감았던 사회적 구조에 의문점을 던지며 발표하게 되었던 케이스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여자'라고 말하며 글을 쓰며 다른 방식의 글쓰기를 도입해간다. 

『갈등하는 눈동자』에 수록된 그들은 갈등 속에 행동을 택한다. 누군가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음에도 '사랑하는 자'로 남는 걸 택하고 누군가는 애매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음에도 결국 재승부를 통해 패배하기도 한다. 
그 행동들은 아마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들은 수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 행동을 택했지만 갈등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며 또 다른 변화를 위해 자신을 던질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편집자인 김진형 편집자는 편집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굳건한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소란하지만, 갈등하는 눈동자를 가진 사람의 세상은 울창하다."

이 세상을 울창하게 만드는 건 확신이 아니다. 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갈등과 고민을 가진 사람만이 세상을 울창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진리를 이 책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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