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테라피 - 삶이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울 땐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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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체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최근 독서 플랫폼 <그믐>의 대표이자 장강명 소설가의 아내인 김새섬 대표의 세바시 강연을 들었다. 악성 뇌종양인 교모세포증을 앓고 있다고 하는 김새섬 대표를 절망에 무너지지 않게 한 요인으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유대인 수용소에서 끝까지 삶의 의미를 찾으며 살아남았던 빅터 프랭클이가 《죽음의 수용소》라면 그의 이론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이론은 『로고테라피』이다.

아마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건 '삶의 의미'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는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에게 묻는다고 한다. 사람들은 인공지능이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묻는다. 나는 그 이유를 너무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생각할 시간이 없어지기 떄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다 문득 멈춰설 때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 과연 누가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질문 앞에 멈춰 서 고민하는 사람은 병든 사람인가? 우리 몸에 병이 있는지 모르다가 이미 병이 커져 못 쓰게 된 상태에서 찾아온 환자라는 뜻일까? 빅터 프랭클은 오히려 건강한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로고테라피』 가 프로이드, 아들러, 융과 같은 철학보다 다른 점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며 내가 발견한 건 바로 '나'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나라는 존재는 내 생각보다 위대합니다.

나에게 발견되어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로고테라피 29p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 가 아닌 내가 발견되어 더 나아갈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

그러므로 빅터 프랭클은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에 이어 자기 실현 및 초월의 욕구라는 두 가지 욕구를 추가한다.

나를 가장 믿어주는 철학이 바로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은 자신의 철학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 분명 우리 모두의 삶에는 고통이 있다.

그 때 빅터 프랭클은 의외의 카드를 내민다.

"견딤"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피할 수 없고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삶의 고통이 극함으로 회오리쳐 올 때 로고테라피는 올바른 자세로 견딤을 말한다. 감당하는 태도를 말한다. 마치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떠올리게 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빅터 프랭클의 심리학 『로고테라피』 에 수록된 여러 사례 중 카르멜 수도회 수녀님을 상담하던 빅터 프랭클이 제시한 쇠렌 키르케고르의 말이 나를 움직인다.


광기가 저에게 어리석은 옷을 입히더라도,

내 안에서 신에 대한 사랑이 이긴다면,

나는 여전히 내 영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고 그 의미가 이긴다면 우리는 분명 우리의 삶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끝까지 살아갈 수 있고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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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보상 - 제8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장편 부문 수상작
민려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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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민얼굴을 보여주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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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복 보상 - 제8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장편 부문 수상작
민려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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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금융 사기 중 가장 빈번한 사기는 무엇일까? 바로 보험이다. 

누군가는 보험금을 타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일으키거나 사람을 죽여 사망보험금을 청구하다 발각되기도 한다. 보험을 타기 위한 갖가지 사기극이 펼쳐진다. 

보험사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보험 사기가 갈수록 늘자 자체 조사기구를 만들며 사건을 조사한다. 조사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보험금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혜택을 약속하며 매달 돈을 받지만 막상 보험금을 청구하면 차일피일 미루며 핑계를 댄다. 소비자도 보험사도 '돈'을 더 받기 위해 또는 '돈'을 덜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민려 작가의 장편소설 『중복 보상』은 보험사기극을 주제로 한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전문으로 펴내는 엘릭시르 출판사이므로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대상 수상작은 믿고 봐도 된다. 


소설은 KS생명보험에서 청구된 사망보험금에 관한 회의에서 시작된다. 


사망자는 강선자. 나이 68세.  만약 강선자씨가 보험금을 정당 청구했다면 7억 정도를 받게 된다. 타 보험사와의 청구 합계는 17억. 

보험사로서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수상한 냄새가 난다. 강선자씨의 죽음이 자살이지, 아니면 살인인지 밝혀야 한다. 강선자씨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베테랑 조사관 채광과 새내기 사원 오기준이 짝을 이뤄 진실을 추적한다. 


강선자씨의 행적을 쫓다 보면 지독한 가난의 냄새가 풍긴다. 영등포 쪽방,  유방암 말기지만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신세.  베체트병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남편, 가정 폭력,  행방불명인 아들..  무엇하나 온전한 게 없는 가련한 삶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동정이 없다. 아니 그런 사람들에게 돈은 더욱 냉정한 얼굴을 한다. 


돈이 가난한 이들에게 냉정한 것은 사회적 구조 때문일까? 하지만 『중복 보상』은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우리는 보통 혼자인 인생이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다. 


특히 가난은 함께 하기 때문에 더욱 버겁다. 


나를 힘을 나게도 하지만 가장 밑바닥까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소설에서는 강선자의 아들과 남편을 빗대어 말하지만 결국 이 사건을 조사하는 안채광 조사실장마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 발목 잡히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웃프다. 


 소설은 보험이라는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상품이  본인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다. 

보험은 나를 위한 상품이 아니다. 특히 생명보험은 죽고 나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위한 상품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하다보니 보험 사기극은 더욱 정교해진다.  


『중복보상』 은 결국 묻는다. 중복으로 보상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과연 그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의 삶은 보상받을 수 있는가? 

극한으로 치달은 인간의 욕망이 과연 돈으로 해결되는가? 

'돈이면 다 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돈의 밑바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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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에는 책들이 많다. 방의 3면이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픈 사실은 읽는 속도보다 사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이다. 내 방 안의 책장을 볼 때면 친정엄마는 내게 말씀하신다.

"이제 나이 들어서 뭔 책이냐. 학창시절에 공부를 그렇게나 하지."  

남편 또한 말한다.

"네가 좋아하는 책만 읽지 말고 아이들을 위한 육아책을 좀 읽어."

그런데 제일 슬펐던 건 시어머니의 혼잣말이었다. 예전 아이가 어렸을 때 책장이 거실에 있었다. 그 때 당시 나는 정치와 외교 분야 종류의 책들에 관심이 많았다. 한 때 정치를 비판하던 책들은 물론이고 국제정세와 같은 책들도 보곤 했다. 

쌍둥이 육아를 도와주러 오신 어머니는 못마땅한 눈길로 보시며 혼잣말을 하시던 걸 기억한다. 

"이제와서 무슨 쓸데없는 책들을 본다고..." 

내게 직접대고 하신 말씀도 아니고 또 시기도 오래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건 그 때 시어머니의 못마땅한 눈빛과 그 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 때의 속상한 기분. 어머님이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기에 뭐라고 말 할 수 없어 속으로 삭혀야 했다.  꼭 두고두고 잊지 않아서 어머님께 보여주고 말겠다고 마음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젠 사력을 다해야 기억이 나곤 한다. 

정보라 작가의 소설집 <너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단편 [그녀를 지키다]에서도 '절대 잊지 않는 건' 감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습니다' 라고 다짐하지만 세월은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잊지 않는 건 감정이라고 말한다. 

나도 절대 잊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떤 것은 잊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동지들의 모습이, 마음에 불로 새겨진 줄 알았던 그 소중한 이름들이 세월 속에 희마하게 바래다가 사라졌다. 
절대 잊지 않는 건 그 순간순간의 감정이었다. 
기억도 논리도 이성도 인간의 모든 지적 활동이 다 사라져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감정이다. 

정보라 / 그녀를 만나다 중에서  
그렇다. 내게도 그 시절 다른 디테일은 사라졌지만 잊히지 않는 건 억울한 감정이었다. 엄마가 되었다고, 이제 다 큰 성인이 되었다고 이런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말인가? 

한참 책을 읽던 나를 보는 친정엄마, 남편, 시어머니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하지만 세 명이 말한 의미는 똑같았다. 

"이제 책을 읽고 공부하기엔 이미 늦었다. 그러니 아이들 육아에나 충실해라." 

물론 지금으로선 생각할 수 없는 말이다. 현실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고 이제는 평생공부시대니까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시대이니까. 하지만 어르신들의 눈에는, 그리고 남편의 눈에는 아직도 미래를 꿈꾸고 있는 내가 못마땅했으리라. 

이제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사실.  세 사람의 공통적인 시각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책을 읽고 쓴다. 그러면 남편은 놀린다. 아직도 읽고 쓰기만 하느냐고.  그렇다면 정말 나는 미래가 없는 것일까? 
이제 꿈 같은 건 아직 살아갈 시기가 많은 아이들에게 넘겨야 하는 것일까? 

이주란 작가의 단편소설 <겨울정원>을 읽는다. 예순이 넘은 혜숙씨는 오인환씨와 만남을 가진다. 혜숙씨는 <샹그리라>라는 시를 들려준다. 

이주란 작가의 단편소설 <겨울정원>을 읽는다. 예순이 넘은 혜숙씨는 오인환씨와 만남을 가진다. 혜숙씨는 <샹그리라>라는 시를 들려준다. 

가지 않은 곳은 모두 미래다
그날 만나지 못했던 그 사람도
읽지 않은 그 책의 몇 페이지도 옛날이 아니다. 

가지 않은 곳, 만나지 못했던 사람, 읽지 못했던 책의 페이지들 모두 '미래'라고 말한다. 이 시에 의하면 '미래'는 사방에 넘쳐난다.  그렇다면 내 방 가득 채우고 있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도 모두 미래인 것이다. 나는 끝난 게 아닌 미래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보다 더 빠른 나를 칭찬해야하려나^^. 

소설 속에 수록된 이 시를 통해 내가 아직 이루지 못했던 것에 슬퍼하기보다 기뻐하는 걸 택하기로 한다. 아직 이루지 못해 끝난 게 아닌 내게 또 하나의 미래가 되었으니까. 나에게는 아직 살아가야 할 미래가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메모>에서 정혜윤 피디는 친구의 친구였던 서울대공원에서 만난 장애를 가진 새 콘도르를 이야기한다. 

 목이 계속 기울어져 있어 날지 못하는 새.  새의 운명대로 살지 못하고 땅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이 새의 이름은 '꼽추'였다.  늘 서울대공원에서 새 꼽추를 찾으며 지냈던 작가는 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꼽추를 애도하고 기억한다. 

어떻게 애도하냐고? 새에 대한 기록을 찾는다.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유범주 의 <새> 등 새가 어떻게 나는지를 쓴 책들을 찾아 기록하며 상상한다. 이 세상에서는 장애로 날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에서는 한없이 날아오르기를 상상하고 기원하는 것. 그것이 저자가 콘도르 꼽추를 기억하는 방식이다. 

저자의 애도는 또 다른  다짐으로 변한다. 세상의 모든 가능성을 다 살아보기로. 

우리는 아직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
우리의 가능성을 알지도 못하고 바스러진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린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스러짐을 슬퍼한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해낼 수도 있었을 일을 아쉬워한다. 

정혜윤 / 아무튼 메모 

정혜윤 피디 또한 <겨울정원>에서 나온 '미래'의 개념과 맥락이 닿아 있다. 

우리가 아직 하지 못한 일들은 모두 가능성들이고 미래다. 
이 세상은 아직도 우리가 가 보지 못하고 해내지 못한 미래의 가능성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 그러므로 우리의 아직 살아가지 못한 오늘조차도 현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미래'를 동시에 살아내고 있고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책 좀 그만 읽으라고 말하던 남편에게, 친정엄마에게, 시어머니에게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제 미래는 끝났다고요? 
아니요. 아직도 제 미래는 무궁무진하답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내가 해내지 못한 일이 있는 한 제 미래는 언제나 넘쳐난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미래를 살아내고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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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eung 2026-01-2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원합니다. 꿈꾸는자 꿈이 이루어 질 것이다. 언젠가는!
 

새해의 첫 달이 벌써 반절이 지나갔다. 새해 1월이 주는  좋은 혜택은 바로 시작하기 가장  좋은 달이다. 왜 시작하기 좋은 달일까? 영어로 새해가 New Year 이듯, 우리의 인생도 New 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Old year의 삶을 벗고 New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사람들은 안 읽던 독서를 시작하려고 하고 안 하던 운동을 계획한다. New life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헬스장이나 서점들이 가장 매출이 많은 달이 1월달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2월만 되면 사람들이 서점이든 헬스장이든 발길을 뚝 끊을까? 

그건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의 인생이 갑자기 New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year'는 'New'가 되었지만 우리의 인생은 어제와 별다른 하루 하루일 뿐이다. 새해는 자동으로 된다. 하지만 인생은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다. 안 하던 독서가, 안 하던 운동이 1월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되어지는 게 아니다. 우리의 old한 행동은 웬만해선 바뀌기 힘들다. old life를 new life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좌절하기도 하고 또는 실망하며 new가 되는 걸 멈추고 다시 old로 돌아가고 만다. 


새해에 시작되는 많은 계획들. 물론 그 계획들은 new가 되기 위한 것들이다. 
잘 되기 위한 것들. 어떤 게 있을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대박 콘텐츠가 나와서 수익화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출판사들은 만드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것이고 누군가는 원하던 취업을 하는 것이나 또는 바디프로필을 찍거나 여행을 하는 것들이 있다. 

계획을 왜 세울까? 그건 그래도 이 한 해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사람들은 인생이 new가 되길 바라며 계획을 세운다. 

동생과 통화를 했다. 서로 2026년 하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막막하고 쉽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동생은 "언니, 기운 내.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그 말을 듣자 나 또한 한 마디한다. 

"맨날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내 말을 듣자 동생은 웃음을 터뜨린다. 틀린 말이 아니니까.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말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중이니까. 어떻게 될지 모르니 사람들은 기대를 하지만 정작 우리를 미치게 하고 실망시키는 것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기도 때문이다. 

새해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가 인생이 바뀌는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실망으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리고 뭐 바뀌지 않았다고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되고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되리라는 것을 체감할 뿐이다. 그래서 새해에 뺴곡히 쓰며 시작된 다이어리도 달이 바뀌면서 점점 드문드문 쓰게 되고 나중에는 잊힌 존재가 되는 것도 이 떄문이다. 

자동으로 리셋되지 않는 인생. 자동으로 new가 되지 않는 인생. 
결국 New year도 어제의 삶의 연장선일 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의 유명한 '투모로우 스피치' 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일과 내일은 하루와 하루이고 걸음과 걸음일 뿐이다. 
왕이 되기 위해 덩컨 왕을 죽였지만 그는 그로 인해 하루 하루를 불안과 두려움에 살아야 했다. 왕이 되기 위한 삶을 살았지만 왕이 되었다고 해서 그의 인생이 왕처럼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맥베스의 삶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사람을 죽이거나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old year에 해 놓은 일들이 새해가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old에서 new로 바뀌지 않는다.  그저 old year의 연장선일 때가 오히려 되기 쉽다. 맥베스도 자신의 악행이 왕이 되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듯, 우리의 지난 삶들이 갑자기 확 바뀌는 마법 같은 일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슬프게도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기대를 해 보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만으로 새해를 계획해보고 변화를 꿈 꾸는 것이다.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인생. 
아마 이건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끝까지 갖고 가는 명제일 것이다. 
추락만 하던 자산이 언제 흐름을 타고 떡상할지 모르고, 조회수가 1도 안 나오는 콘텐츠가 갑자기 알고리즘을 타서 유명세를 탈 지 모른다.  마이너적인 책을 주로 출간하는 '알마' 출판사도 출간한 외국 작가 라슬로 크러스너호르커이가 노벨문학상을 받음으로 갑자기 대박 출판사로 거듭났듯이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걸 좋게 바꿔주는 건 그래도 계속 해오는 것들 속에 있는 것 같다. 파란색만 그리고 있던 자산이 떡상하는 것도 자산을 계속 가지고 있어야 떡상하게 된다. 콘텐츠가 알고리즘을 타는 것도 계속 콘텐츠를 만들어야 가능하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책을 계속 써내려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될 지 모르게 만드는 것들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은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한다. 하지만 노인은 오늘도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하지만 누가 알겠어? 
어쩌면 오늘 운이 닥쳐올는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날이 아닌가. 
물론 운이 따른다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나로서는 
그보다는 오히려 빈틈없이 해내고 싶어.
그래야 운이 찾아올 때 
그걸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되거든. 

노인의 마음은 한결같다. 비록 오늘도 운이 없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운이 찾아올 때 운을 받아들일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를 타고 바다를 나가는 것. 
그것이 운을 찾기 위한 노인의 자세였다. 84일째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하고 바다로 가지 않는다면 이젠 정말 아무것도 잡지 못하니까 말이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를 기대하게 하기도 하고 막막하게 만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한 가지뿐이다.  그저 운이 찾아올 때 그 운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 노인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듯 우리도 우리의 준비를 해 나갈 뿐이다. 운이 온다면 더 좋고 운이 오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만반의 준비를 끊임없이 해 나가는 것. 그래서 old한 인생이 new로 바뀔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늘의 인생을 잘 살고 또 내일의 인생을 잘 살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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