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달, 블루문 창비청소년문학 81
신운선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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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문> 은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현상으로 두 번째 뜨는 달을 의미한다. 동양에서는 보름달을 풍요의 상징으로 보지만 서양에서는 보름달을 불길한 것으로 인식하여 한 달에 보름달이 두 번 뜨는 보름달을 재수없는 것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이 <블루문>은 자신을 재수없는 보름달로 여겨온 10대 미혼모,아니 두리모 수연이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수연은 태어나서 돌도 안 되어 엄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엄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수연은 9살 되던 해 갑자기 아버지에 의해 엄마에게 보내진다. 아버지의 결정에 수연에게 어떤 이해도 구하지 않았고 동의도 없었다. 단지 "너를  위해서"라는 이유만이다. 

 호주에서 살고 있는 엄마는 수연의 상상보다 훨씬 예쁘고 멋있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있어 수연은 자신이 앞으로 재혼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존재였다. 나중에 만나자는 공수표만 날린 채 수연은 아빠에게 보내지고 아빠는 수연을 할머니에게 보낸다. 수연을 두고 탁구 게임을 하는 것처럼... 

 <블루문>은 수연이 쉼터에 입소하여 아이를 낳기까지의 과정에 어떤 수식도 과장도 넣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수연의 감정을 그려 나간다. 
어른들에 의해 치고 받는 수연의 탁구공같은 인생과 임신을 알았을 때의 불안감, 그리고 끝까지 자신의 일상을 지키고 싶어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학교의 명예를 위해 도움보다는 회피를 택한 학교의 현실까지... 

혼전순결은 이제 오래 된 구닥다리 용어가 되어버린지 오래고 연예인들 사이에도 속도위반 사실을 만인앞에 공공연히 알릴 만큼  한국 사회는 여전히 성에 대하여 놀라울만큼 개방이 되었다. 하지만 이 개방적인 것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임신하기 전까지이다. 임신하기만 하면 모든 화살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돌아온다. 모든 비난과 책임은 여성이다. 여자가 남자를 얼마나 꼬셨으면, 여자가 행실이 안 좋아서 남자가 말려든 거라는 둥... 그 비난 속에 남자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성인이 아닌 10대의 경우는 그보다 더 가혹하다. 아직은 보호받아야 할 미성년자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들을 보호하기를 거부한다. 아니 비난하기에 바쁘다. 끝까지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싶어 도움을 요청하는 수연을 떠 안는게 두려워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버리는 학교도, 수연의 행실을 비난하며 낙태를 종용하는 지호의 엄마도.. 모두가 수연을 비난할 뿐이다. 
임신하기 전에는 보호 대상이던 아이들이 왜 임신한 이후로는 어른들이 보호의 의무를 스스로 포기해버리는 것일까? 
학생을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할 학교는 왜 임신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학교의 임무를 스스로 져버리는 것일까? 

 쉼터에는 수연 뿐만 아니라 출산을 기다리는 많은 두리모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불안함과 두려움 속에서 어떠한 선택을 내려야 할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것을 강요받고 있다. 수연도 하루에 수백 번씩 입양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도와주거나 함께 해 주는 어른들은 없다. 자신들에 대한 어떠한 보호막도 없는 이 사회에 무방비로 내 몰릴 뿐이다. 

 "청소년"은 청년과 소년의 중간시기로 9세에서 24세 사이를 규정하고 우리 나라의 청소년보호법은 19세 미만을 정의한다. 하지만 사회는 10대 두리모에게는 청소년보호법도 학생 인권 조례도 무용지물이다. 

임신을 하게 되며 겪게 되는 많은 관계의 단절, 그로 인한 불안함과 두려움, 모든 일상과의 단절, "엄마"라는 전혀 다른 단계에 접어드는 10대 두리모인 수연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과연 우리에게 묻는다. 그들의 존재가 재수 없는 보름달인지, 아니면 의미를 주는 빛나는 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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