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오셨다. 지난 11월 이사한 후 처음으로 오시는 방문이다.

부모님이 오신 이유가 이사집을 보기 위해서라면 좋았겠지만 슬프게도 엄마의 방문은 늘 병원이다.

두 달에 한 번씩 받는 검진일. 의사는 엄마의 상태를 보고 약을 처방한다. 치료약이 없기에 그저 지연시키는 게 최선책인 지금 우리는 가끔씩 보는 엄마의 몸을 보기가 두렵다. 우리가 안 보는 새 더 안 좋아지셨을까봐 차마 엄마 얼굴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나를 향해 잔소리를 늘어놓는 엄마를 힘들게 쳐다본다.

지난 설에 엄마를 뵈었는데 엄마의 허리는 엄마보다 7살 더 많은 아빠보다 허리가 더 굽어 있다. 그 몸으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신 엄마의 손은 힘이 없어 고기를 잘 썰지 못하신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보시며 좋다고 웃으신다. 그 미소가 슬프다.


동생과 통화를 했다. 동생은 최근 급격하게 나빠진 건강을 토로하며 울먹인다. 이유 없는 아픔에 시달리다 결국 큰 병원으로 가게 되었다면서도 직장일과 아이들 걱정에 마음껏 쉬지 못한다.

두 달 전만 해도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 열심히 살아보겠노라고 다짐했던 지금은 통증에 일상도 힘들어한다.

단 몇 달이라도 휴직을 권했지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 쉬는 것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동생이 이해되면서도 안타깝다.


요즘 구민정 PD와 오효정 PD가 함꼐 쓴 <명랑한 유언>을 읽고 있다.









슬픈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연준 시인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덜컥 이 책을 구매하고 말았다.

앞길이 창창한 31세의 PD. 이제 정식 연출 데뷔를 앞두고 위암 4기를 맞은 오효정 PD와 룸메이트 구민정 PD의 에세이다.


책 속에 콕 담긴 말 한 마디.


냉면을 먹는 건, 무더운 날이면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사소한 일상인데,

이제는 그 모든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더운 날씨에 냉면 한 그릇 먹는 것마저 감사해야 하는 투병생활. 먹는 것조차 고역인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긴다. 너무 당연해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일상. 나이가 들어가며 나 역시도 일상이 점점 쉽지 않다.

오효정 PD는 악바리로 살던 PD 생활에서 벗어나 환자가 되며 아쉬워하는 건 한 가지다.


인생에서 나에 대한 고민을 80퍼센트는 해야 하는데,

남의 일로 막 90퍼센트씩 쓰고 있었던 게 너무 반성돼.


프로그램 걱정, 회사일 걱정에 정작 자신에 대한 고민을 하지 못했던 것.

아파도 곧 낫겠거니 하며 끝까지 프로그램을 무사히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버텼던 것들.

이제 나를 챙겨야지 싶었건만 죽음은 너무 가까이 와 버렸다.

아플 때 가장 그리워지는 게 가장 평범한 일상이라는 걸 알려준다.


봄이다.

그런데 엊그제까지만해도 겨울같았던 날씨가 어느새 봄을 건너뛰고 여름으로 찾아온 느낌이다.

그리고 주변에서는 아직도 경북 의성 산불은 진화가 되지 않고 있다. 뉴스에서는 늠름한 자태를 뽐내던 900년된 은행나무마저 불 타 버린 참혹한 현실을 보도한다.

진짜 우리에게 봄이 왔나?

주변에 꽃들이 피어났건만 꽃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을 보게 된다.

백수린 작가는 <봄밤의 모든 것>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당연히 봄을 기다린다고 선택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묻고 싶다.

진정 우리는 봄을 선택할 수 있는가?

엄마의 굽은 허리와 지인의 아픔에 울먹이는 소리.

그리고 불타는 마을의 아우성 소리...

2025년의 봄은 왜 이리 서글플까..

그래도 믿기로 한다. 봄은 다시 찾아온다고.

믿어야만 희망할 수 있으므로 힘을 내어 믿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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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3-26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불이 빨리 가라앉고, 사라님 어머님과 동생분의 통증이 빨리 가라앉기를 기원합니다. 마음이 너무 아픈 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