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한국을 말하다
장강명 외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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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21명의 작가들이 한국을 말하기 위해 뭉쳤다.

2023년 가을부터 2024년 문화일보에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는 시리즈로 연재되었던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종료 후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소설, 한국을 말하다》라는 엔솔로지로 탄생되었다.


'한국'이라는 시공간을 함께 지나는,

'지금, 여기'의 '우리'를 드러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한국, 그리고 지금 여기의 우리를 드러내야 하는 이 글의 전제조건에서 21명의 작가들이 각자 선정한 한국을 나타내는 키워드로 뽑은 것은 무엇일까?



AI, 콘텐츠 홍수 시대, 사교육, 새벽배송, 고물가, 낙인, 오픈런 등등... 작가들이 보여주는 한국의 모습은 안타깝게도 긍정적인 의미보다 부정적인 의미의 키워드가 많다. 그만큼 한국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해 씁쓸함을 자아낸다.



가장 먼저 프롤로그를 장식하는 장강명의 '소설 2034'는 첫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한다. 


이 작품집이 탄생하게 된 문화일보의 기획 연재  <소설, 한국을 말하다>를 작품에 그대로 가져온다. 분명 소설인데 현실을 그대로 가져오기에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단숨에 허물어뜨린다. 한국을 말하며 시대정신을 이야기하자는 취지를 작품 속 기자들의 입을 빌려 비웃는 시니컬까지 과감하게 펼쳐낸다. 




신문에서 또는 다른 언론에서 10년째 한국 사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하나도 변한 게 없는 한국의 모습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매번 해결해야한다고 말하지 실상 그대로인 우리 사회의 모습 또 말해봤자 뭐하나라는 문장에서 역시 장강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21명의 작가들이 말하는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가지고 읽다 보면 이 키워드로 인해 생겨난 부의 격차를 느낄 수 있다. 가령 손원평 작가의 <오픈 런>과 최진영 작가의 <삶은 계란>에서는 상반되는 두 인물이 나온다.

<오픈 런>에서는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추운 겨울 이른 아침부터 오픈 런 아르바이트를 해 주는 수민. 돈이 있어 남을 이용해서 편하게 원하는 명품백을 쉽게 쇼핑하는 부유층 세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힘들게 일하면서 일명 몸이 감가상각되어가는 가난한 수민의 처지와 명품에 웃돈을 얹어 리셀 제품으로 다시 더 많은 수익을 얻는 부자들의 재테크.


딱 한 번 품에 안았던 그 아이.

날이 갈수록 몸값이 높아져만 가는 그 아이.

모든 면에서 자신과 반대 지점에 서 있는, 다시는 만져보지 못할 그 아이를.

<소설 한국을 말하다> 그 아이 - 손원평



최진영 작가의 <삶은 계란>또한 식단에 따른 빈부격차를 다룬다. 직장과 가까운 곳에 살아 여유시간이 많은 그 사람. 남는 시간에 건강관리를 위해 탄수화물을 먹지 않으며 끊임없이 운동하는 그 아이. 여유로운 생활 속에 건강 관리도 식단도 자유로롭다.  그 반면 나는 어떤가. 건강 관리를 하고 싶어도 1시간 반 이상 대중교통에서 시달리고 피곤해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무엇이든 쑤셔 넣어 몸이 안 좋지만 바빠서 병원 가는 것도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상대방의 경제적인 여유는 마음을 고백할 용기도 포기하게 만든다. 

분명 이 소설집에 나오는 키워드들은 희망적이지 않다. 그 우리는 암울하다고 포기해야만 하는가? 

김멜라 작가의 <마감 사냥꾼>은 고물가에 세일 상품을 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세오와 이영의 모습이 나온다. 원하는 상품권과 세일 물건을 얻기 위해 알람을 켜 두고 열심히 클릭을 누르는 세오. 

함꼐 하고 싶지만 생활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꼐 있을 시간도  단축시켜 버린다. 물가가 오를수록 사랑도 힘들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세오의 마지막 말은 우리에게 끝까지 힘 낼 용기를 준다. 


아무리 올라봐라, 우리 사이가 멀어지나.


《소설, 한국을 말하다》에 나오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모두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기에 더욱 슬프다. 하지만 작가들은 이 상황 속에서 조그마한 희망을 심어놓는다. 그 희망은 바로 우리들, 사람들에게서다.


김혜진 작가의 <사람의 일>에서는 자신이 베푸는 작은 호의가 다른 이에게 전염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참아내는 희수의 모습이 나온다. 백가흠 작가의 <빈의 두 번째 설날>에서는 불법 노동자에게 가혹한 한국 사회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선의를 펼치는 이 씨 사장님이 있다. 정보라 작가의 <낙인>에서는 피해자이면서도 조롱당하는 사람들이 서로 연대하며 마음을 합한다.

이 모든 모습들을 보면서 한국 사회의 모습이 핑크빛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씩 밝은 색깔로 비춰질 수 있게 하는 건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부정적인 분위기에 밀리지 말고 우리 사이가 멀어지지 않기. 더 가까워지고 함께 할 때 우리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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