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삶과 운명 1~3 세트 - 전3권 창비세계문학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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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문학소설 《삶과 운명 1~3》 은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된 스딸린그라드 전투를 배경으로 한 현대문학 시리즈이다. 이 소설의 배경인 스딸린그라드 전투가 낯설어 역사를 찾아보았다. 이 스딸린그라드 전투는 1942년 8월부터 1943년 2월 2일까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일대에서 벌어진 소련과 독일의 전투로 독소 전쟁 중 가장 거대했던 전투 중 하나이자 최대 규모의 사상자를 낸 전투라고 말한다. 비록 소련이 이긴 전쟁이라고 하지만 소련군측 사상자가 100만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 피해는 감히 상상도 못할 것이다. 


《삶과 운명 1~3》 시리즈는 읽기가 쉽지 않다. 우선 이 소설의 가장 큰 방해물은 이 시리즈 소설의 시작이 이 시리즈의 출발점인 1권이 아닌 바실리 그로스만의 전편 소설을 읽었다고 전제하고 있기 떄문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처음 읽을 때 작품 역주에서 바실리 그로스만의 전편에 나온 배경이라는 설명이 나올 때마다 당황하게 된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이 미출간된 작품의 연장선이라니 이걸 어떻게 읽으란 소린가라는 당황점과 여러 인물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지 않아 초반은 집중하기 어렵다. 


매순간 생명의 기로에 서 있는 전쟁을 통과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저자는 '시간의 의붓자식' 신세라고 말한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사람. 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행복했을 사람들이 하필 전쟁 중에 태어나고 자라서 온갖 삶의 폭풍을 맞아야만 되는 시대 사람들. 그 사람들을 향해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가장 힘든 것은 시간의 의붓자식 신세다. 

잘못된 시간을 사는 운명보다 

더 무거운 것은 없다. 

시간은 자기가 낳은 이들만을, 

자기의 자식들, 자기의 영웅들, 자기의 일꾼들만을 사랑한다. 



《삶과 운명 1~3》 의 저자 바실리 그로스만은 2차 세계대전을 살아가는 이들의 운명을 시간의 의붓자세 신세라고 말한다. 의붓자식의 신세. 시간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삶과 운명이 평탄할 리 없다. 고통스럽고 치열해야 한다. 홀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 그래서 이 의붓자식 신세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삶과 운명은 힘겹기만 하다. 


전쟁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성을 날것으로 마주한다. 매순간이 생명의 기로에 서 있는 전쟁 현장에서 종군기자로 그 참상을 목격한 저자는 인간의 본성을 어떻게 표시할까? 


바실리 그로스만의 이 소설에서는 독일군이 운영하는 독일 수용소와 정치범으로 잡혀 동족인 소련 당국에 의해 운영되는 소련 정치수용소가 나온다. 독일 수용소는 당연히 2차 세계대전인만큼 유대인들의 수용소가 소개되고 소련 당국이 국민들을 수용하는 장치이다. 적군에 의해 고통받는 것과 같은 동족에게 고통받는 것. 어느 쪽이 더 치열할까? 


유대인 수용소 게토로 끌려간 빅토르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보내는 그 당시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짐승 우리에서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어. 

그건 주위에 온통 나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들뿐이었기 때문이야. 

게토에서는 말처럼 차도로 다니지 않아도 되었고, 

악의에 찬 시선도 없었기 때문이야. 




동일한 운명을 가진 게토 수용소의 유대인 사람들. 이들 모두는 언제 독일군에게 학살을 당할지 모르는 신세이다. 바깥에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차별과 특권 등 온갖 불공평을 감당해야 했지만 이 수용소에서는 모두 똑같은 신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에서 오히려 홀가분해졌다고 말한다. 


반면 소련인이면서 소련 당국에 의해 정치범으로 몰린 수용소에 갇힌 아바르추끄는 동족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이 수용소에서 불평등을 한탄한다. 같은 죄수임에도 누군가는 줄을 잘 서 물건을 감춰도 처벌을 피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누군가는 열심히 일을 해도 핍박을 받는다. 같은 동족이가 같은 수감인이면서 다른 이 불공평을 두며 이들은 한탄한다. 



인간의 본성이 모두가 절망 상태인 상황보다 같은 위치이지만 그 사이에서 느끼는 불공평이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는 것을 바실리 그로스만은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러시아문학 현대소설 《삶과 운명 1~3》 에서 저자는 이 불행 앞에 직면한 인간의 본성을 '굴종'이라고 표현한다.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죽음의 행렬에 굴종한 유대인들의 모습, 스탈린의 독재 앞에 아무런 소리하지 못하고 오직 당의 신임을 얻기 위해 온갖 수모를 순수히 감당하는 인간의 모습.. 

더욱 끔찍한 건 우리가 전쟁 속에서 인간이 아닌 비열한 짐승이 되기까지는 단 몇 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불행 속에 인간의 운명은 희망이 없는가? 

이러한 굴종과 복종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점점 전쟁이 늘어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그저 좌절해야 하는가? 


바실리 그로스만은 이 상황 속에서 빛을 본다. 



불행 속에서 굴종하는 것 또한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자유를 향한 본성적 갈망 또한 인간의 본성임을 강조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굴종하는 사람들 속에서 바르샤바 게토, 소비보르 대규모 봉기, 히틀러 저항 운동, 베를린 봉기 등을 만들어냈고 역사를 이루어냈음을 강조한다. 그 갈망이 결국 지금의 자유를 만들어냈고 미래의 빛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시대의 의붓자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운명은 고달프다. 모든 생명이 고귀한 가치를 지녀야 하지만 전쟁 속에서 일부의 특권층을 제외하고 모두가 무거운 운명을 짊어져야 한다. 이 현실에는 과학자도, 소련 당국의 신임을 받던 당 서기도 별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 시대를 포기하지 않고 살아갔던 한 명 한 명의 삶이 지금의 우리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일제 치하 또는 6.25 한국 전쟁의 불행 속에서 살아갔던 우리의 역사가 떠오른다. 우리의 역사가 유명한 독립군이나 강대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 처럼 보여도 결국 이 시대를 묵묵히 이겨내며 살아간 평민들의 삶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 이 《삶과 운명 1~3》 소설 또한 그 사람들을 그린다. 시간의 사랑을 받지 못했음에도 꿋꿋이 살아간 사람들. 그 사람들이 결국 희망이라는 걸 보여준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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