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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황석희 - 번역가의 영화적 일상 에세이
황석희 지음 / 달 / 2023년 11월
평점 :
번역가 황석희씨는 '번역'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번역가거든요.
상대의 말은 물론, 표정과 기분을 읽어내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도 번역이고 콧속에 들어온 차끈한 아침 공기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깨닫는 것도 일종의 번
사람들은 황석희를 영어영화의 번역가로 소개한다.
하지만 황석희는 번역에는 자신의 업인 '영화 번역'의 영역과 '삶에서의 번역' 두 가지를 말한다.
삶의 번역은 무엇인가? 바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상대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살피는 것.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고 이해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마음을 직역하기도 하고 오역하기도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그의 에세이 ?『번역 : 황석희 』에서는 그의 영화 번역 이야기가 빠질 수 없지만 이 책은 에세이인만큼 그의 일상에서의 번역을 다룬다. 그의 가족, 일, 삶 등을 그가 어떤 식으로 번역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황석희. 먼저 그가 수많은 영화 표현을 보면서, 다양한 영어 표현을 옮기면서 보는 세상에 대한 그의 번역이 궁금해진다.
그는 10년 넘게 언어를 다루면서 세상을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 있을까?
'언어는 세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수많은 영화를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황석희 번역가는 점점 더 과격해져가는 세상을 보게 된다.
모욕, 부정, 부정적인 표현은 점점 구체적이고 직접인 반면, 긍정, 희망, 사랑의 언어는 제자리인 상태. 부정적인 표현은 넘쳐나는 반면 긍정의 언어는 빈곤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새롭게 생겨나는 신조어들 또한 온갖 부정적인 언어들 투성이다.
'88세대', '헬조선' '흙수저'. '금수저', '은수저' 등 부정적인 신조어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어려운 세상을 반영하는 것만큼 우리들의 세상들이 잔인해지고 과격해지고 있음을 알게 해 주어 씁쓸해진다.
그렇다고 그의 해석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그가 지향하는 일상, 혹은 세상의 번역은 어느 것일까?
그가 바라는 일상의 번역은 '윤여정'씨의 오스카 여우조연상 시상식 기사를 그가 지적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통해 이야기한다.
윤여정 배우의 소감 중 'I dont' admire Hollywood.'를 '할리우드를 존경하지 않습니다' 로 번역한 것에 대해 황석희 번역가는 '존경'이 아닌 '동경'으로 밝혀야 한다고 말한다. 언어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지고 인종차별적인 모욕감을 느껴질 수 있는 여러 표현들이 쉽게 벌어질 수 있는 번역에 대해 황석희 번역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자 언어, 타인, 일상, 세상을 번역하는 것 모두 쉽게 되는 건 없다.
지식만으로 번역이 향상되지 않는다. 지식보다 필요한 건 바로 우리가 타인을 더 넓은 시각으로 읽으려는 노력이다.
한 편의 문장을 읽을 때 언어만 알아야 하는 게 아닌 배경지식과 문화를 알고 있어야 올바른 번역이 가능하듯,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것에도 상대방을 더 넓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그는 말한다. 우리가 타인과 생기는 오역을 줄이기 위해서 바로 우리가 먼저 타인에게 문을 여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당신과 나 사이엔 적게 잡아도 봄철 황사 먼지 수보다 더 많은 차이점이 있다. 그 많은 차이점을 무시하고 모두가 당신과 같은 경험을 하리라 단정하는 건 오만이다.
세상의 오역을 줄이는 건 결국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타인의 언어를 넓은 시각으로 읽으려는 노력, 그 첫걸음이 바로 상대방과 나와의 차이점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시작이다.
『번역: 황석희』 , 번역가 황석희가 바라보는 일상의 번역을 통해 나는 과연 어느 식으로 타인을 번역하나를 오히려 돌아보게 한다. 그의 번역이 더욱 풍성해지는 것에는 결국 타인을 더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나의 일상의 번역이 좀 더 풍성해지기 위해 , 타인을 오역하지 않기 위해 나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