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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평점 :
예로부터 한국인에게 밥은 '정'이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돈은 빌려주는 게 아니라 하면서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으라고 가르치곤 했다. 음식이 오면 서로 나누고 빈 통에 음식을 다시 채워 돌려보내곤 했던 밥. 인간관계는 거의 밥 위주로 이어져 있기에 밥보다 더한 추억을 가진 사물은 없다.
박찬일 셰프의 산문집 《밥 먹다가, 울컥》은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오랜 것들을 밥에 대한 추억들을 소환해낸다.
말로는 할 수 없는 밥과 사람들이 있었다.
기억해야 할 사람들 얘기를 쓰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죽은 사람이 여럿이다.
혼자서 막걸리를 마실 때면 그들이 더 생각난다. 그 기록이다.
왜 울컥하는가.
그건 서럽기 떄문이다. 왜 서러운가? 그건 그들이 잊힐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또는 지병으로 또는 경제적 변화로 어쩔 수 없이 자의든 타의든 잊혀져가는 사람들이 이 책 속에는 가득하다.
왜 잊혀져 가는가. 그 잊혀져 감의 첫 번째 원인은 바로 마지막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외국에 유학중이던 저자를 위해 한국에서 큰 고추장 1킬로그램과 마른 멸치를 보내 준 후배.
고마운 마음에 울며 고추장에 비벼 먹으며 정을 나누었지만 지병으로 저 세상으로 멀리 떠나보내야 했다. 아직 한참 일할 나이에 갑자기 떠나버린 후배를 생각하며 박찬일 셰프는 말한다.
사람은 기왕이면 오래 살아야 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나쁜 기억도 막 쌓아서
나중에 죽어도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게 하는 게 좋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미워할 나쁜 기억도 없이 미안함과 고마움만 가득한 마음을 남기고 갔기에 더욱 애절한 기억은 이 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망해감에도 더 어려운 사정의 거래처 사정에 매몰치 못해서 모든 손해를 감당하고 쓸쓸히 떠나버린 친구를 향해서도 저자는 애통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왜 잊혀져 가는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잊혀져 가는 사람들이 있다.
잊혀져 가는 것도 슬픈데 자연스럽게 잊혀져 가니 더욱 슬프다. 과거 어르신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던 실비집, 대폿집들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거나 사라져간다. 그래도 그들이 사라져가는 걸 아는 사람도 저자와 아직 몇 안 남은 대폿집을 찾아오는 노인들이다.
힘들게 제빵 기술을 배우며 빵집 사장으로 꿈을 이루었어도 어느 순간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본업을 내려놓아야 하는 서러움. 바다 속에서 성게와 전복을 캐내며 바다를 지키는 해녀들 또한 점점 세월의 흐름 속에 점점 줄어든다.
무엇이 잊히는가.
프랜차이즈에 밀려 처음 품었던 꿈과 열정이 사라져가고
우리의 바다와 함께 했던 해녀들의 추억들이 시대의 유물로 사라져 가고 있는 중이다.
어디 그 뿐인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사업체가 음식점인만큼 영세한 사업체가 많은 곳도 음식점이다.
정규직도 버티기 힘든 음식점에서 비정규직 이모들은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 또한 사라져간다. 이모들과 함께 밥집들 또한 함께 사라져간다.
《밥 먹다가, 울컥》은 잊혀져 가는 것들을 기록해내는 저자의 그리움이 물씬 느껴지는 글이다.
강제로 잊혀지고 있는 그들을 자신의 기억 속에서나마 간직하기 위해 그들과의 추억을 꼬옥 붙잡는다. 그리고 함께 슬퍼해주며 때때로 그들을 방문하며 그들이 아직 있어줌에 감사해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것들을 소환해내는 초대장이다.
함께 기억하고 추억하자는 초대장.
그들이 한 때 존재하고 있었음을 기억해주자고 독자에게 권하는 책이다.
더 이상 울컥하지 않도록
더 이상 울컥한 사람이 없도록 함께 기억해주자는 초대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