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을 대충 차리고 난 후 잠깐 자리에 눕는다는 게 그만 12시를 넘어버렸다.
젠장... 욕이 나왔다...
자정안에 인증 글을 올려야 보증금이 차감되지 않는데 다 해놓고 인증을 못해 보증금이 차감되었다.
미리 인증을 올리고 눕지 해 놓지 못하고 자 버렸다는 사실에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게 모두 다 지난 주말 시댁에 다녀온 탓인 것만 같다.
삼형제 중 시댁과 친정 양가가 모두 지방에 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오빠는 처가가 서울이라서 금방 왕래하고
동생 또한 시댁이 걸어서 20분 이내로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둘은 명절이 되면 우리 집만 한 번 내려오면 되는 수고를 겪으면 된다.
그에 반해 양가 모두 멀리 있는 나의 경우는 한 번도 연휴를 집에서 쉬어본 적이 없다.
매일 그 전날 휴가를 내야 하고 짐을 챙겨 양가를 모두 방문하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무리 새벽 일찍 출발해도 밀리는 교통 정체로 도로에서 시간을 버려야 하고
맛없는 휴게소 음식 한 번에 5만원이 넘는 돈을 쓰게 된다.
오빠나 동생은 한 번 수고한 후 여유롭게 서울로 돌아오지만 양가를 모두 들르다보면 매번 가장 복잡한 시간대에 올라올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황금연휴'란 꿈도 꿀 수 없는 연휴다.
30대 까지만 해도 양가를 방문하는 게 그닥 어렵지 않았다.
하루 이틀만 견디면 체력이 돌아왔고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40대가 되면서 양가에 가는 게 너무 힘들다.
지방에 한 번 내려갔다오면 일주일이 지나도 피로가 영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모든 화살은 모두 시골에 다녀왔기 때문이라는 원망으로 바뀐다.
어제 인증을 못 한 것도 시골에 내려간 탓.
어제 실수를 한 것도 시골에 내려간 탓.
모든 원망의 화살이 멀리 다녀온 후유증으로 돌리며 자기연민에 빠진다.
나도 시댁이나 친정이 가까이에 살았다면 이렇게까지 아둥바둥 살지 않았을텐데..
어느 한 쪽이라도 가까이 있다면 잠깐 애들이라도 맡기고 영화라도 볼 수 있었을텐데...
모두 멀리 있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자기연민에 빠질 떄마다 어쩔 수 없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엄마이다.
엄마는 처음 병진단을 받았을 때 엄마의 화살은 바로 아빠였다.
아빠가 엄마를 외롭게 해서...
아빠가 엄마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않아서...
엄마는 지금까지 아빠를 원망하며 감정풀이를 하곤 하셨다.
엄마의 다음 화살은 우리였다.
엄마를 잘 챙기지 않아서..
엄마가 말하면 잘 듣지 않아서...
엄마의 마음을 세심하게 챙겨주지 않아서...
모든 게 다 너희 탓이라며 엄마는 틈만 나면 말씀하시고 우리는 죄인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정 엄마는 늘 우리에게만 변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몸이 편찮으신 분은 엄마이므로 엄마가 자신의 몸을 관리하고 더 아껴줘야 하는데 엄마는 늘 이렇게 만든 우리가 엄마를 더 신경써줘야만 된다고 강조하신다는 점이다.
정작 엄마의 몸을 엄마가 잘 돌보지 않고 이 일의 원인인 우리에게만 잘 하라고 하시니 엄마의 마음 고생은 늘 도돌이표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엄마와 다를 바가 있나.
나 또한 지방에 한 번 내려갔다오면 모든 원망을 자연스레 양가가 먼 탓이라고 돌리는 나 자신을 보면서 정작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은 잘 생각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양가가 멀어 시간을 어쩔 수 없이 보내고 체력이 떨어진다면 나는 더 시간관리를 잘 했어야 한다.
인증을 해야 하는 일에 먼저 우선순위를 두고 자리에 누웠어야 하고
체력이 떨어진다면 평상시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체력관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정작 내 자신을 더 관리하지 않으면서 상황 탓만 하고 있으니 내 실수는 도돌이표일 수 밖에 없었다.
내 상황은 어차피 변하지 않는다면 그 상황을 견뎌야 하는 내가 변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김지수 작가가 나태주 시인을 인터뷰한 에세이 <나태주의 행복수업>에서 시인의 '풀꽃'을 이야기하는 대목 중에 인상 깊은 대목이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
이 시를 두고 김지수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하는 말을 제일 먼저 듣는 사람이 나라는 사실이 새삼 새로워요."
"그럼요, '너도 그렇다'의 청자가 나니까 , 결국 '나도 그렇다'지요."
내가 하는 말을 가장 먼저 듣는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
내가 끝없는 자기 연민과 불평을 온전히 받아내는 사람도 바로 나였다.
나의 하소연은 나에게 계속해서 너는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있음을 나태주 시인은 말해준다.
그러므로 나의 연민을 멈추자..
더 이상 비교하지 말자..
내 스스로 나에게 불쌍한 말을 들려주는 사람이 되지 말자.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오늘도 잘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