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너머 자유 -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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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짓불을 들이대는 것 같다. 

기성 미디어는 물론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많은 미디어들이 저마다 전짓불을 들고서 

'당신은 누구 편입니까'라고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 더욱 거세지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이 시대. 1인 미디어의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글을 써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갈수록 드물어간다.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의 편'이 아니면 당할 공격들이 두렵기 떄문이다. 예전에는 전짓불과 같은 무기였다면 지금은 악성 댓글이나 사이버 공격으로 전짓불을 들이댄다. 그래서 언론의 통로는 넓어졌지만 목소리는 다양화되기는 커녕 묻혀지고 마는 시대이다. 

말하지 않으면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 말하지 않으면 당장 논쟁이나 싸움은 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속에 감추어진 불만은 더 쌓여갈 뿐이며 더 심한 분열을 쌓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싸우기 싫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분열의 시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김영란 전 대법관은 치열하게 고민한다. 

법이 정치색을 떠나 편을 떠나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을까? 

김영란 전 대법관은 그 답을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철학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 


그렇다면 존 롤스는 누구인가? 

저자는 존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공적 이성'에 의한 '중첩적 합의'로 

'합당한 다원주의 사회'를 위해

서로 다른 포괄적 신념체계를 주장하는 

민주시민들이 정치적 정의관에서

 합의를 이루는 사회 



어렵지만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한다. 


'합당한 다원주의' - 여러 생각과 방법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사회

'중첩적 합의' - 모두가 받아들이는 공통된 정치관 


이 '중첩적 합의'의 예로 저자는 미국의 노예제도 폐지론을 말한다. 

노예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긴 후 문제가 되어 남북전쟁으로 이어졌지만 이 노예제도 폐지를 결국 미국 모든 사회가 받아들이며 하나의 법으로 합의를 보는 과정을 '중첩적 합의'가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간주한다. 


『판결 너머 자유』에서 저자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였던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 법들이 과연 다원주의에 맞게 또는 롤스의 자유주의 이론에 맞게 이 사회에 반영되는지를 저자는 검토한다. 


책에서는 여러 판례들이 소개된다. 전교조 법외노조 활동, 동성애 인정, 소수자의 기본권, 인공수정 자녀등 친권에 대한 개념,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 성전환 허용 사례등 많은 논란을 주었으며 한국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다. 


이 중 몇 몇 사건들 중 인상 깊은 사례를 살펴본다. 


1. 인공수정 자녀와 혼외 자녀의 친생추정 문제


한국은 유교사상이 깊게 뿌리박힌 사회이다. 가부장 중심이었던 한국 사회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가 얼마되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핏줄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는 가부장 우선주의 판결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피가 섞이지 않은 부자 관계를 끊을 수 있도록 할 것인가라는 쟁점이었다. 과학적으로는 혈연관계가 아닌 이 관계에서 대법관 별개의견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사회적 친자 관계" 




아직까지 법원은 가부장적 가족 제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대법관들의 일부 반대의견에서는 '사회적 친자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음을 표시한 법관도 있음을 밝힌다. 아직 롤스가 말한 '중첩적 합의'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법원에서  새로운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법적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음을 저자는 별개의견을 들어주며 설명해주며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 느리지만 조금씩 진척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2. 소수자들의 기본권

이 책에서는 주로 미성년자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성전환 사례들을 소개한다. 

아버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아빠가 되는 이 현실에서 성전환자의 기본권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혼란에 빠질 우려가 있는 미성년자 자녀들의 보호가 우선시되어야 하는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기본권도 중요하고 미성년자 자녀 보호 모두 중요하기 떄문이다. 


이 책에서는 '사회적 기본재' 를 강조한 롤스의 정의론을 주목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기본재란 무엇인가? 


'자존감의 사회적 기반들'로 그 태도를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사회적 기반들 을 의미한다. 


이 사회적 기반들이 없을 경우 성전환들에게는 '인간실존'의 문제와 직결되며 그들의 기본권이 침해된다. 그래서 예전에는 미성년자의 보호가 중요시되었지만 이제는 소수자들의 기본권 또한 중요시되고 있는 전원합의체가 있음을 저자는 설명한다. 




『판결 너머 자유』에  있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들을 읽다보면 비록 느리지만 법원이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법을 형성하기도 하고 해석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단지 문자 그대로의 해석이 아닌 변화되는 사회상을 반영하고자 하는 법원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롤스가 말한 '합당한 다원주의'를 위한 '중첩적 합의'가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을까. 

다수가 아니더라도 같은 편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서로 합의를 하며 하나의 행복한 결론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는 묵직한 질문은 앞으로도 사법부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중첩적 합의'가 사법부 혼자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회의 분위기가 자유로운 토론과 열린 마음으로 대할 때 비로소 사법부도 반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직도 우리가 갈 길이 멀지만 이 '중첩적 합의'를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판결 너머 자유』는 비전공자인 내게 다소 어려운 책이었다. 나와 같은 비전문가에게 이 책에 소개된 판결문들을 중점으로 읽어도 저자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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