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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밤 - 당신을 자유롭게 할 은유의 책 편지
은유 지음 / 창비 / 2024년 1월
평점 :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시대라고들 합니다.
책을 읽는다고 하여도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책을 은 바읽습니다. 성공하려면 책과 글쓰기를 해야 한다고 하기에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자기계발서나 투자법과 같은 재테크 서적은 베스트셀러를 차지합니다. 그야말로 유용한 책을 읽기에 사람들은 열심입니다.
반면 누군가의 삶이나 이야기를 쓴 에세이나 소설 등은 무용한 책으로 비춰집니다. 왜 허구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내 삶 살아가기도 바쁜데 왜 남의 이야기를 읽어야 하냐고 묻습니다. 실생활에 와 닿지 않은 이야기들은 시간 낭비처럼 느껴집니다.
은유 작가의 독서 에세이 『해방의 밤』은 일분일초가 바쁘며 시간의 가성비를 쫓는 이 시대와 맞지 않는 책일 수 있습니다. 은유 작가의 읽기는 집요하게 남의 삶을 들여다보는 읽기입니다.
내가 아닌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 무지의 상태에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 은유 작가는 책을 읽어나갑니다. 서로를 이해해야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해방'될 수 있다고 말하니까요. 『해방의 밤』은 바로 그 작가의 열정이 담겨져 있는 책입니다.
제목 『해방의 밤』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의 키워드는'해방'입니다.
그렇다면 '해방'이 되면 가장 먼저 바뀌게 되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건 바로 '정체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한민국이 45년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국민들은 식민지 백성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독립이 된 후 우리는 주권국가의 한 국민이라는 정체성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일제 통치에 지배적이던 시절 우리들은 해방이 되었음에도 식민지 시절의 습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권국가의 국민이라는 라벨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해방의 밤』 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작가라는 자신의 직업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던 걸 처음 알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저 또한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로 삶을 마감한 비운의 작가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삶의 결말이 비록 자살로 끝났지만 그건 극히 일부분이고 그녀의 삶 대부분이 작가로 인정받은 삶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살이라는 하나의 사건에만 중심을 맞춘 채 한 사람의 삶을 '불행'이라는 라벨로 정의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되었음에도 '식민지' 라벨을 쉽게 떼지 못했던 옛날의 우리모습처럼 우리는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우리의 무지대로 라벨을 붙이고 한 사람의 삶을 재단해왔습니다.
한 사람을 단면만 아는 건 그 사람을 '해방'시키지 못합니다. '엄마'라는 삶 단면만 강요하던 과거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여자의 삶을 옥죄었듯이 우리는 한 사람을 전인격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포기하지 않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고 똑바로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렇다면 질문해봅니다.
어떻게 해방을 할 수 있나? 어떻게 나와 우리는 해방될 수 있나?
저는 은유 작가가 책 속에서 인용한 김진영 선생님의 《아침의 피아노》의 문장에서 답을 찾습니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우리의 역사를 떠올려봅니다.
광복이 되고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5.18 민주화 운동, 전태일 등등 우리 나라의 역사는 나만이 아닌 남을 위한 선의가 기폭제가 되어 움직여 왔습니다. 전태일 열사 또한 자신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여성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박종철이라는 한 대학생의 고문치사에 분노하여 타자를 지키기 위할 때 비로소 역사는 움직여왔고 우리는 점점 민주주의로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나만 아니면 돼'처럼 나만을 지키려고 하는 이 때 우리는 더 많은 억압에 시달리게 됩니다. 더 많은 죽음을 목격하게 됩니다. 나만을 바라보느라 세상의 많은 위험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은유 작가는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질문하게 됩니다.
남이 해방되지 못하는데 과연 나는 해방될 수 있는가?
남이 해방되지 못하는 삶은 나의 삶까지 구속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목적이 있는 책읽기만 중요시 되는 이 시대, 소설이나 타인의 삶을 쓰여진 에세이는 과연 무용한 것인가? 과연 의미가 없는 것인가 생각해봅니다.
은유 작가 또한 고민합니다. 여전히 어렵고 명확하게 답을 해 줄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합니다.
하지만 이런 글들을 읽어주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우리 사회가 조금씩 움직여진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매우 더디고 때론 길을 잃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남을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해방'을 위한 읽기는 나만을 살리는 게 아닌 타인 또는 이 사회를 구할 수 있는 아주 위대한 첫걸음이기도 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이 시대야말로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보아주는 것. 그건 결코 무용하지 않다는 걸 말해주는 책이며 함께 헤쳐나가자며 내미는 작가의 초대장 같은 책입니다.
- 출판사로부터 책만 제공받았으며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