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 때마다 가끔씩 꼰대가 되어 있는 내 모습에 놀랄 때가 많다. 젊은 시절, 잘 이해를 해 주지 않는다며 윗세대를 비판하던 내가 어느 새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볼 때 깜짝 깜짝 놀란다.
역시 나이가 들면 고집이 세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라는 생각에 씁쓸해지곤 한다.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 졀정판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감사함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총 46편의 글이 담긴 박완서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게 가장 많이 다가온 건 한 가지였다.
"끊임없는 성찰."
자신의 삶에서, 이웃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돌아보는 작가의 모습이 담긴다.
가장 많이 와 닿았던 건 바로 '자연'에 대한 성찰이었다.
작가는 어머니가 시골에 살던 자신을 서울로 데려가기까지 살았던 자연에 대한 풍경을 묘사한다. 시골에서 싱아를 먹으며 그리워했던 옛 시절, 개울이 있고 소나무, 잣나무, 밤나무 등 여러 나무들이 많으며 낙엽을 긁어 모으고 청솔가지를 태우던 송진 냄새 등 그 옛 시절을 그리워한다.
비록 어머니에게 떠밀려 서울에서 학교를 입학하고 서울 생활을 했지만 그럼에도 그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추억은 자신은 서울내기가 아닌 시골내기라며 홀로 자부하곤 한다.
도시에서 살아온 사람은 주변의 꽃과 나무가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 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온 사람은 우리 주변의 자연이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아차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던 꽃들이 뿌리 뽑히고 사라지는 지 또한 알 수 있다. 그건 바로 자연이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박완서 작가 또한 한국의 근대화에 따라 하나 둘씩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 속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자연과 농사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주말농장'이 아닌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주말농장'을 보며 생태 감수성이 사라진 시대를 안타까워하며 자연과 단절된 도시인의 삶이 '고아'와 다를 바 없음을 탄식한다.
자연과의 단절을 걱정하는 작가의 글이 2000년대가 아닌 1970년대에 쓰인 시절이라는 걸 알고 나면 저절로 탄식이 나온다. 아... 우리의 자연은 1970년대에도 이런 단절이 2024년대인 지금 우리 아이들은 자연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에 깊은 근심에 빠지게 한다.
내가 외갓집 뒷동산에서 쉽게 보았던 나무와 풀들을 이제는 돈을 내고 인공적인 목적으로 조성된 수목원에 가서 눈으로만 봐야 하는 현실. 과연 우리는 수목원과 아쿠아리움 속에서 아이들에게 진정 자연과 생물의 다양성을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의 가장 큰 백미는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아닐까 싶다.
사람의 본성은 나이가 들어가면 저항하는 것보다 지키려고 한다.
가족을 지키고,
명예를 지키고,
재산을 지켜야 한다.
변화나 개혁보다 안정을 택하게 되며 지키기에 급급하게 된다.
작가 또한 지키기에 바쁜 자신의 모습을 개탄한다.
데모하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이르고 도둑이 든다 해도 모른 척 눈감으라 타이른다. 위험하니 사회의 불의에 눈감으라 가족에게 말한다. 글쓰는 업이 힘들 때 그냥 예전처럼 전업주부로의 삶으로 돌아갈까하는 회피 본능이 싹튼다.
속물같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쓰며 개탄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구역질 나게 싫다는 작가.
글 쓰는 작가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냐고 고민하는 자신을 추하다고 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면서 왜 나는 위안을 삼는 것일까. 한국 문학계의 보물이라던 박완서 작가마저 이런 고민을 안고 이겨내려 한 내면의 투쟁이 박완서라는 작가를 더욱 존경하게 만든다.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 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 세계보다 내면에 대한 고민을 많이 엿볼 수 있다.
1970년, 80년대, 90년대 각 시대에 맞춰 달라져가는 한국 시대의 모습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범죄 사건을 통해 작가가 바라보는 문제의식도 볼 수 있게 해 준다.
작가 또한 사람이기에 현실과 욕망 사이에서의 고민, 부모로서의 고민, 점점 외로워지는 시어머니를 보며 이웃과의 단절과 자연과의 단절을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끝까지 고민하며 이 시대를 고민한 작가로서의 사명을 지닌 한 사람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작가가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을까?
끊임없이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며 반성하고 솔직해지고자 하는 작가의 투쟁이 곳곳에 보이는 이 에세이는 현재 자신의 안위에만 급급한 우리의 시대에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