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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평점 :
내 인생 가장 신에게 질문을 많이 했던 때가 있었다.
바로 내가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임신했을 떄와 엄마의 파킨슨병 확진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쌍둥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매번 신을 원망했다.
"왜 제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주셨나요?"
"아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쌍둥이를 주시지 도움 받을 구석도 없는 제게 하나도 아닌 둘을 주셨나요?"
독실한 크리스천이셨던 엄마의 파킨슨병 소식을 들었을 때의 질문은 단 한 가지였다.
왜 하필 우리엄마인가?
더구나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면서 이 무서운 병을 두려워하는 엄마에게 왜 하필 이 병이 찾아왔단 말인가. 이게 평생 하나님을 믿으면서 헌신한 엄마의 믿음에 대한 대가란 말인가?
텔레비젼에서 7,80대 노인 연예인들도 건강하게 활동하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왜 엄마는 이제 50대에 이런 무서운 형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소설 『단 한 사람』 은 내가 힘들 때마다 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했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 질문하며 이유를 찾는 이야기.
물론 앞서 내가 말했듯 왜 내게 이런 아이들을 주셨느냐보다 더욱 심오하고 깊은 질문들이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장미수와 신일복 부부에게서 태어난 다섯 남매가 나온다.
일화, 월화, 금화 그리고 남녀쌍둥이 목화와 목수.
불행은 예고가 없이 찾아오듯, 이 가정에도 갑작스런 불행이 이들을 방문한다.
셋째 금화가 목화와 목수를 데리고 산에 가던 중 금화가 나무에 깔려 쓰러진 것.
어린 목화는 목수에게 어른들을 데리고 올 테니 언니를 잘 지키고 있으라고 말한다. 허겁지겁 어른들을 모시고 왔지만 이게 웬일인가. 금화 언니는 사라지고 멀쩡했던 목수가 나무에 깔려 쓰려져있다.
금화는 어떻게 된 것인가.
금화는 사라진 것일까?
금화는 죽은 것일까?
현장에 같이 있었던 목수는 이 사건을 끝내 기억하지 못하고 목화는 언니를 지키지 못했다며 자책한다. 십년이 지나도록 알 수 없는 금화의 실종. 누군가의 실종은 항상 불완전한 가정에 머물게 한다.
엎친 데 덮친 격. 또 다른 운명이 찾아온다.
쌍둥이 목화에게 어느 날 꿈속에서 사람들이 죽는 꿈이 펼쳐진다.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단 한 사람을 구하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엉겹결에 단 한 사람을 구한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속에 목화는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일이 할머니 임천자, 엄마 장미수 그리고 자기에게 걸쳐 이루어진 운명임을 알게 된다.
이 믿을 수 없는 운명 앞에 목화는 당연히 질문한다.
왜 단 한 사람을 구하는 운명이 자신에게 왔는가?
죽어가는 사람이 많은데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는가?
그 단 한 사람이 악인일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신은 있기는 한 것인가?
이 수많은 죽음과 생 속에서 죽음과 삶은 무엇이란 말인가?
매번 반복되는 수많은 죽음 속에서 삶은 한없이 작아보이고 부질없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자가 답을 찾는다고 했던가.
똑같은 운명에 체념한 할머니, 저항했던 엄마와 달리 끝까지 목적을 찾는 목화는 정반대에서 길을 찾는다. 바로 자신이 살린 단 한 사람을 통해서. 자신은 왜 단 한 사람만 살릴 수 있냐 했지만 단 한 사람은 결코 작은 게 아니라는 걸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세상의 수많은 질문과 분노와 좌절 속에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이야기한다.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이해할 수 없는 불행 앞에 슬퍼하고 두려운 미래 앞에 두려워하기보다
내가 살아가는 '오늘'을 살아가는 것.
'오늘'을 살아가는 일에는 끝내 인정하지 못한 사라진 금화 언니의 마지막을 인정하는 것과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자신의 운명을 수긍하며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늘'을 한없이 사랑하고 '오늘' 자신이 살릴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구하면서 비로소 삶을 즐긴다.
생의 마지막은 언제 올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음껏 그리워하고 슬퍼하며 기뻐하기로 한다.
그걸 누릴 수 있는 자는 오직 영원한 '오늘' '지금'을 사는 자들의 특권이기도 하다.
소설 『단 한 사람』 을 읽으며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떠올린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에는 참아라.
기쁜 날은 반드시 올 터이니
마음은 미래에 사니
현재는 항상 어두운 법
모든 것 한순간에 사라지나
지나간 것 모두 소중하리니
속이고 슬퍼하고 우울함 속에서 우리가 참아내고 살아가야 하는 건 결국 모두가 사라진다는 것.
우리가 미래만을 바라보니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어둡게 살아가는 것.
결국 푸시킨의 시와 최진영의 소설 소설의 『단 한 사람』 은 서로 닿아있다.
똑같은 운명 앞에 분노하고 저항한 삶을 살았던 엄마와 체념하듯 살았덨 할머니와 엄마는 현재를 살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을 받아들인 신목화는 '단 한 사람'을 인해서 감사하며 오늘을 기뻐하고 사랑하며 슬퍼한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내 삶의 가장 질문을 했던 그 순간들에 대해서 답을 찾았는가?
나는 알고 있다. 답은 없다. 답은 살아지면서 아는 것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니까.
며칠 전 쌍둥이 아이 하나가 우리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우리가 쌍둥이가 아니라 한 명만 있었으면 어땠을 것 같아?"
힘들었을 때 한참을 했던 질문과 상상들. 하지만 이제는 부질없는 질문인 걸 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오늘은 쌍둥이므로 그런 상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엄마의 병 또한 마찬가지다. 신이 왜 엄마에게 큰 병을 주시지 않았더라면 달라졌을까. 그 질문 또한 의미가 없다. 우리 가족이 할 수 있는 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