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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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임을 전혀 하지 못한다. 

어린 시절 그 흔한 오락실 한 번 들어가보지 않았다. 오락에 대한 편견은 없다. 다만 내가 게임을 잘 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질 게 뻔한 게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즉 나 혼자 게임은 어차피 지는 거야. 져서 기분 상하기 싫어 먼저 포기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게임에 대한 내 생각을 완전히 깨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아! 물론 이 책으로 게임이 재미있어 졌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지는 기분이 싫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게임이지만 져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라는 감정을 알려 준 소설이라는 의미다. 

 

먼저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저자 개브리얼 제빈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아마존 서점에서 작가의 도서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가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번역본이 출간될까 기대하면서도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바로 '게임'이라는 소재였다. 

 

그녀의 전작 <비바 제인>, <섬에 있는 서점> 매번 다르 주제이지만 게임은 난데없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전작 <섬에 있는 서점> 의 소재가 책인데 이번에는 독서의 방해물이자 대척점이라고 생각되는 '게임'이라니 이건 너무 전혀 다른 방법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더구나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개베르일 제빈은 나의 모든 우려를 뛰어넘었다. 개브리얼 제빈은 또 한 번 내 최애작을 써내려가며 자신의 작품에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자, 그러므로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꼭 읽었으면 하는 내 바램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와 닿지 않았다면 그건 순전히 내 잘못이다. 

 

1. 소설 한 권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을 그대로 보여준다. 

 

세상이 휘리릭 뒤바뀔 수 있다는 게, 

샘은 그저 놀랍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샘이 세이디와 함께 만들고자 했던

게임들의 주제가 되었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얼마나 자의식이 달라질 수 있는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게임을 만드는 친구 샘과 세이디의 이야기지만 이 책 한 권에 미국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하버드생이자 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국계 미국인 샘, 

부유하지만 일본계 미국인으로 끝내 주연 배우가 아닌 엑스트라에 머물렀던 친구 마크스, 

그리고 후배 동료이자 동료인 동성애 커플 사이먼과 앤트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 등 미국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주류가 아니기에 알 수 있는 아픔, 샘이 어린 시절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병실에서 지냈기에 느낄 수 있는 고통 등이 게임의 주제가 된다. 그리고 그 게임은 타인을 위로해준다. 

아... 이 게임은 나를 잘 알고 있구나 느끼게 한다. 

게임을 설계하면서 각자의 아픔이 노출된다. 그리고 그들이 현실에서 극복하지 못한 주제들이 게임을 통해 완성되며 우리가 원하는 모습을 대리만족시켜 준다. 

 

2. 게임이기에 알 수 있는 인생의 세이브 포인트 

 

뭐니뭐니해도 이 소설의 가장 큰 덕목은 바로 '세이브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인 샘과 마크스는 하버드 재학생 그리고 세이디는 MIT로 미국에서 알아주는 명문대를 다니는 천재적인 인물들이다. 그들이 야심차게 시작한 게임 만들기 프로젝트. 천재들이 모인 집단이니 승승장구만 계속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수재 소리를 들었던 어린 대학생들이기에 실패에 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우여곡절끝에 그들의 합작품 <이치고>로 데뷔 초기부터 히트작을 터뜨렸지만 세이디의 야심작 <세계의 양면>은 대중의 기대를 사그라들게 만든다. 

어린 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평생 통증에 시달려야 했던 샘은 다리를 절단하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 고통을 주는 주체였지만 자신의 신체 일부분을 절단해야 하는 상황은 쉽지 않다. 

세이디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이 주장해서 만든 <세계의 양면>이 실패해서 자신에 대한 실망을 멈출 수가 없었다. 영원할 것 같던 파트너 샘과 세이디 그리고 마크스의 관계는 때론 빛나기도 하지만 때론 위험하기도 하고 위기를 맞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나와 같이 게임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실패는 '끝'이라고 생각된느 반면 게이머들에게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세이브 포인트'가 있으니까 말이다. 

 


 

인생의 매 순간 고비고비마다 그들은 세이브 포인트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끝내 이길 때까지 다시 시작하면 된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느끼게 된다.

 

"아... 지면 끝인 줄 알았는데 다시 시작하면 되는구나."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게임이야기다. 

하지만 이 게임 안에는 게임을 만드는 샘, 세이디, 마크스 모두의 이야기가 압축되어 있다. 

게임을 만들게 된 배경, 게임을 만드는 태도, 게임을 해 나가는 과정 모두 각각의 삶이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 이건 게임 이야기이자 사랑이야기다. 

그리고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계속되는 그들의 삶의 이야기다. 

 


 

이 묵직한 책을 끝낸 후 이 소설을 떠나보내기가 매우 아쉽다. 

임볼로 음붸의 소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이후 이런 기분이 너무 오랜만이라 설렌다. 진심으로 꼭 모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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