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안부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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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린 작가의 첫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를 읽고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바로 "환대" 이다.


이 소설은 내가 28살에 홀로 호주워킹홀리데이를 떠났을 때 내가 받은 '환대'를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눈부신 안부』에서 주인공 해미는 가스 폭발사고로 언니를 잃는다.

집안 분위기는 급격하게 나빠지고 동네 사람들은 연민 또는 구경거리가 난 것처럼 수군거린다. 언니의 부재를 모르는 곳에 가기 위해 해미의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회사에 취직을 하고 엄마는 해미와 동생 해나를 데리고 독일 유학을 떠난다.

낯선 독일. 그 곳에는 1973년 가족 생계를 위해 파독간호사로 떠났던 이모가 있었다.

이제는 의사가 되어 병원을 운영하는 이모와 이모와 함께 일했던 파독간호사 출신인 다른 이모들은 해미의 가족들을 환대한다.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던 독일 생활에서 해미는 이모의 배려와 새로 사귄 친구 레나와 한수와 친해지면서 조금씩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간다.


해미의 가족이 장녀였던 언니를 잃은 후 독일에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던 건 '환대'이다.

파독간호사 출신인 이모들은 낯선 독일에 온 해미의 가족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어떤 사정으로 왔는지 묻지 않는다. 그저 한 공동체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 따뜻함 속에서 해미의 엄마도 해미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서 비로소 벗어난다.

무조건적인 환대.


2002년,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그 때, 시드니 공항에 내려서 막막함에 서 있던 때를 떠올린다.

나는 다른 사람이 '공항에 도착하면 백패커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라는 말을 철없이 믿었던가.

그 막막함 속에서 숙소를 잡고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는 이도 하나 없는 이 호주에서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우연히 길을 잃어 서점에 들렀고 책을 읽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여기 교회가 어디 있느냐고. 왜 그랬을까. 난 길을 찾아야 했는데 왜 교회를 물었을까.

정말 충동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내 질문에 그할머니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웃으며 말씀하셨다. 자신은 시드니에 사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그 친구에게 물어보겠다고. 그 분이 바로 Pat할머니였다.

내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으시며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싶다고 하신 할머니.

할머니는 말씀하셨다. 자기에게도 두 자녀가 있는데 딸은 결혼해서 프랑스에 살고 있고 아들은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다고. 그래서 외국에 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면서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겠다며 전화번호를 주셨다. 그 후 Pat할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꼭 나를 만나주셨다. 내가 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입버릇처럼 "I am your Austrailian mother"라고 말씀하시던 할머니. 내가 먼 도시로 떠나있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전화통화를 하시며 안전을 확인하셨던 분..

그 분의 환대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생활 내내 나를 지켜주었다.


『눈부신 안부』에는 이 환대들로 가득하다.

홀로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던 해미의 마음을 알아봐 준 이모의 환대,

비록 독일 다른 도시에 있지만 같은 파독간호사들이 강제 귀국해야 하는 상황을 모른 체 하지 않고 도와주는 환대. 그리고 한국인 동료들을 위해 팔 벗고 나서 준 현지인 또는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고 울분을 토한 파독간호사들..

그리고 친구 한수의 엄마 선자이모의 마지막 소원인 첫사랑을 찾아주기 위한 친구 삼총사의 맹세..

이 모든 환대들이 소설 속에 차곡차곡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그리고 결국 그 환대 속에 아직까지 마음을 열지 못하고 살아가던 해미가 타인을 향해 마음을 열 준비를 내딛게 해 준다.



이 소설은 결국 서로가 끝까지 사랑하는 소설이다.

그 사랑이 서로를 구원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소설.

타인의 상태를 물으며 걱정하는 안부에는 관심과 따뜻함이 가득하다. 이 『눈부신 안부』는 모든 이들이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걸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안부를 전할 누군가를 떠오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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