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볼래요? - 엄마들의 삶에 스며든 영화 이야기
부너미 기획 / 이매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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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볼래요?》 란 제목은 슬프다.

쌍둥이를 낳은 후, 명절을 제외하곤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 OTT로나마 볼 수 있을 뿐이다.

늘 시간에 쫓겨 급하게 영화 빨리감기를 하며 영화를 급히 보는 내게 기억에 남는 영화는 솔직히 드물다.

그런 내게 잊히지 않는 대사가 있다. 바로 <82년생 김지영>이다.

모든 걸 다 할테니 아이를 낳아달라고 말하는 남편을 보며 김지영은 혼잣말을 한다.

' 왜 나는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달라질 것 같지?'

남편은 아이가 생겨도 직장이 위험하지 않다. 관계가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퇴근 후 일상이 달라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엄마인 김지영은 다르다. 우선 잘 다니는 직장에서 복귀가 힘들어졌다. 그리고 엄마로서 직장 동료 및 친구들과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다. 남편이 도와주어도 김지영의 현실은 결코 똑같을 수 없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에서 이 한 대사 외에 어떤 대사도 들리지 않았다. 이 김지영의 독백은 지금까지 내 삶에 느낌표였고 물음표이기도 했다.

왜 여자는 아이가 생기면 남자와 달리 세상이 바뀌는가!

왜 여자만 세상이 달라지는가?

이 영화를 본 후 남편에게 말했다. 같이 <82년생 김지영>을 보지 않을래?

남편의 대답은 칼같았다. <82년생 김철수>가 나오면 보겠다고. 여자들의 푸념과도 같은 영화는 거부한다는 식으로 말하는 남편의 대답과 책 《우리 같이 볼래요?》는 함께 봐 주고 들어달라는 외침이 오버랩되며 책을 읽기도 전에 슬펐다.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니 서두가 너무 길었다.

엄마들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의 회원분들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이 책에서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나는 읽는 내내 한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얼마나 속으로 고민했을까?'

사람들은 모른다. 특히 엄마가 되고 나서 찾아온 혼란 속에서 엄마들은 고민한다.

"내가 힘든게 모성애가 부족해서인가?"

"내가 아픈 게 내가 잘못해서인가?"

모든게 자신 잘못같기도 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이 현실 속에서 여자들은 그저 속으로 고충을 감내한다.

엄마가 되면 다 힘든 법이다라는 정당성을 강제로 부여하는 세상 속에서 아프다는 말을 하기 주저하고

엄마가 되면 당연한 거다라는 통념 하에 힘들다거나 우울하다는 상태를 내뱉지도 못한다.

그러다 조심스레 꺼내 본 "애 낳고 아픈 데 없어요?"라는 한 용기 있는 질문은 놀랄 정도로 아픈 엄마들에 대해서 대답이 들려온다. 텔레비젼에서 보여지는 우아한 엄마 연예인의 몸매를 보며 기가 죽으며 자기 관리가 부족한가 채근하던 삶 속에서 주변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우리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점이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몸 추스리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날씬함까지 요구하는 잔인한 사회. 그래서 이 문제를 말해주는 영화 <툴리>를 보면서 엄마들은 공감했고 말하기 시작한다. 이 억압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고.

육아로 시간에 쫓기는 엄마들이 아무리 시간을 쪼갠들 주변의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엄마들, 돌봄 노동에 지친 목소리들을 들려주는 영화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반추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를 보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날개를 잊지 않기 위해 다짐하고 혼자 하는 돌봄이 아닌 함께 하는 돌봄을 실천하기 위해 조금씩 양보하며 공동 등하교를 시도한다.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들이 보는 영화도 극적인 해피엔딩은 없다. 그저 현재진행형이거나 또는 겨우 한 걸음 내디딜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러한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말하는 사람이 생겨나야 문제 해결의 전조가 보이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 함께 볼래요?》라고 독자들을 초청한다.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초대한다.



이제 쌍둥이 아이들이 9살이 된 지금. 내 자리의 현위치를 돌아본다.

시어머니보다 더 보수적인 남편을 만나 치열하게 싸웠다. 요리를 못하는 나를 향해 부끄럽다고 말하기도 하고

힘들다는 내게 "나는 노냐? 나도 힘들어!"하며 핀잔을 주던 남편. 힘들다는 소리를 하면 "그래도 어쩌겠어. 낳았으니 키워야지"하며 책임감만 부여하는 주변의 반응 속에서 나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내 힘듬을 신세한탄이 아닌 공감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비로소 나는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조건적인 희생은 사양하겠다고 말했고 이게 결국 결혼의 끝이라고 해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의 반복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조금씩 맞춰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직까지 "우리 같이 볼래?"라는 내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여기까지 힘들게 왔듯이 이 초청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할 때 비로소 조그마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을. 그 때가 되면 이 책의 제목 《우리 같이 볼래요?》가 더 이상 슬프게 다가오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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