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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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크리스마스가 주는 힘은 크다.

이제 본격적인 추위로 들어섬을 알리는 12월 막바지에 있지만 크리스마스를 떠올릴 때 어느 누구도 추위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한겨울이지만 유일하게 따뜻한 날. 그 날이 바로 크리스마스다. 김금희 작가의 연작 소설집 『크리스마스 타일』또한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전하는 소설이다.

 

각각의 무늬가 모여 하나의 큰 모양을 모양을 만들어내는 타일처럼 이 연작 소설집 또한 『크리스마스 타일』 의 짧은 7편의 단편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닌 전체를 만들어간다. 첫 번째 단편인 「은하의 밤」의 주인공이자 방송작가인 은하가 마지막 단편 「크리스마스에는」 에서는 조연으로 등장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연결시켜준다. 내 삶에서는 주연이지만 다른 이의 삶에서는 기꺼이 조연이 되어주는 딱 우리처럼.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는 특별한 날이지만 그 날을 제외한 다른 날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음을.

12월 24,25일 그 이전과 이후는 그냥 평소와 똑같은 날일 뿐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은 여전히 힘들게 하고 영화처럼 짠 기적이 펼쳐지는 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타일』또한 마찬가지다. 소설 속 풍경은 크리스마스 즈음한 배경이지만 현실은 겨울처럼 춥다.

「은하의 밤」에서의 은하는 유방암으로 휴직 후 다시 복귀한 방송작가다. 오랜만에 돌아온 은하는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방송국의 파행 인사로 예능국으로 쫓겨나 겨우 자리만 지탱하고 있는 오태만을 보게 된다. 바깥에서 방송국의 부당한 처사에 파업 시위를 하는 동료들에게는 비겁한 사람으로, 안에서는 이런 수모를 감당하며 자리를 지키는 한심한 사람으로 찍힌 오태만. 그런 모습이 은하에게도 좋아보일 리 없다.

하지만 살려면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일. 오태만과 은하는 다른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두 번째 단편 「데이, 이브닝, 나이트」 또한 마찬가지다. 한가을은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현실은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틴다. 오랜 짝사랑을 하는 선배가 있지만 선배의 마음을 얻기란 요원하다. 짝사랑하는 선배 또한 영화감독의 꿈을 잠시 접고 유명 셰프의 유튜브 촬영하는 월급PD로 일하는 힘든 삶이다.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은 이렇게 크리스마스에도 별다른게 없는 우리의 현실 모습이다.

다른 단편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는 어떤가. 반려견을 세상에 떠나보내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건만 언니와 오빠는 육아의 짐을 엄마에게 떠넘기기 위해 세미에게 엄마로부터 독립하라고 눈치를 준다. 필요할 때만 엄마를 찾고 자신들 좋으라고 독립을 권하는 언니와 오빠가 얄미운데 엄마는 언니와 오빠 편을 들어준다.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 우리의 삶처럼 평범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작가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희미하게 남겨둔다. 암과의 투병 후 외로움을 지키려는 은하에게 쿠바에서의 여행 추억은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고 조카와의 연락은 그래도 누군가가 어떤 목적도 없이 함꼐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무능력해 보였던 오태만은 결정적인 순간 바깥에서 떨고 있는 동료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선사해준다.

 

반려견을 떠나보낸 아픔을 잊으려 다른 지인들의 반려견을 만나며 잊고 있던 옛 추억들을 소환하게 되고 자신의 삶을 더 이해하게 되며 그 삶 속에 자신과 함께 했던 반려견과 진정한 이별을 하는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서로의 평안을 건네는 의미로 사과를 준다는 중국의 풍습에 맞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진 「월계동 옥주」, 지나간 첫사랑을 떠올리며 새로운 만남을 예고하는 「하바나 눈사람 클럽」 등등. 각자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의 일상은 특별하지도 않고 쉽지 않지만 결코 끝이 아님을 이야기해준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지만 그 안에서 현실을 견디어나갈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준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에서 주인공 한가을이 언젠가 대단한 영화를 찍고 싶어하지만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에서 영화를 찍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만으로 대단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그러니 서로 평안하기를. 크리스마스처럼 따뜻함을 잃지 말기를 기원해준다.

 

크리스마스. 때맞춰 도착한 이 선물같은 소설 속에서 나 자신을 다독여본다. 그래. 잘 하고 있어. 너의 삶은 결코 작지 않다고. 그러니 아쉬움보다는 웃으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맞이하자.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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