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 나무처럼 단단히 초록처럼 고요히, 뜻밖의 존재들의 다정한 위로
정재은 지음 / 앤의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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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혼자 자취했을 때, 출장동안 엄마가 집을 봐 주신 때가 있었다. 출장을 마치고 와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엄마가 말씀하셨다.

"야, 너희 집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나 혼자 사는데 우는 소리라니? 이게 무슨 영문인가 싶어 엄마를 빤히 쳐다보니 엄마가 대답하신다.

"너희 집 화분들이 나 죽겠다고 막 울어. 야 다 죽기 직전이더라! 어쩜 그렇게 신경을 안 쓰냐?"

엄마의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매번 멋으로 화분을 사면서 한 번도 살리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 후 나는 더 이상 식물을 들여놓지 않는다.

에세이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 의 저자 정재은씨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신이 비록 식물들과 함께 한 이야기를 썼지만 식물과 함께 한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음을, 가장 오래 키운 식물이 4,5년이 최대이고 그동안 자신의 손을 떠나 고이 묻힌 식물들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자꾸 자랑하고 싶어지는 거라고.그 사랑을 말하고 싶어한다고. 이 책도 그렇다. 식물을 키우면서 알게 된 인생의 이야기들을 알리고 싶어하는 저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시간이 갈수록 더해가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담은 에세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네 가지에서 저자는 겨울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왜 가장 혹독한 겨울부터 이야기를 할까?


나무의 삶은 정해진 대로 그저 네 계절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떻게 겨울을 보내느냐에 따라 다른 봄을 맞는다.

봄이 온다고 해서 무조건 꽃을 피우는 건 아니었다.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27p


나무의 겨울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비를 떠오르게 한다. 나비는 번데기를 깨고 나와야만 진정 하늘을 훨훨 나는 나비가 될 수 있다. 안간힘을 쓰며 발버둥치는 나비가 안스러워 인간이 그 수고를 덜어주면 나비는 힘이 없어 날아오르지 못한다. 그 힘으로 나비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날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무 역시 춥고 쓸쓸한 겨울의 시간을 잘 견뎌내야만 한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이 겨울을 잘 견뎌내지 못하면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걸. 볼품 없고 보잘것 없는 시간을 통과해야 봄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신은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힘든 시간이 있어야 우리는 꽃이 피는 시간을 더욱 감사할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이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만물에게 거저 주어지는 시간은 없다. 모든 시기에 때가 있다. 그 시간을 묵묵히 견뎌낼 때 우리는 때가 오면 웃으며 꽃을 피울 수 있다. 그래서 나비에게도 나무에게도 인간에게도 겨울은 가장 외로우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계절이다.


스킨답서스가 쉽다고는 하지만, 모든 게 그렇듯 절대적인 건 없다.

누구에게나 쉬운 일이 나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쉬워지지 않는 일에 절망할 건 없다.

쉬워지지 않는 마음으로 남보다 조금 더 애쓰면 될 일이다.

쉬워지지 않을 뿐, 못 하는 건 아니니까.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107p


모두가 쉽다고 말해서 덜컥 도전했다가 당황한 경험들이 있다. 모두 다 해내는데 나는 왜 안 되지라는 생각에 내가 실패자처럼 느껴지는 경험. 그럴 때 나는 쉽게 포기했다. 어쩔 수 없다고. 식물을 키우는 저자에게는 스킨답서스가 그런 경우였다. 쉬울 줄 알고 가져왔는데 어라, 이거 만만하지 않은데? 그럴 때 저자의 답은 간단하다. 더 정성을 들인다. 안 되면 더 열심히 하면 된다. 남보다 조금 어려울 뿐이니 더 노력하면 된다.

앞서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키웠던 소국화 화분이 깨진 경험을 이야기한다. 극락조화에 지극정성을 다했음에도 끝내 식물이 죽자 저자는 겁을 낸다. 빈 화분 안에 다른 무언가를 채울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감을 잃은 상태에서 포기 상태에 방치해있는 빈 화분과 자신의 삶 속에서 포기 상태로 방치된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그 빈 화분에 새로운 식물을 들이며 계속 하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는다. 자신의 삶 속에서도 계속하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한다. 스킨답서스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도 더 노력하자고 다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어려운 거지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계속해 나간다.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게 하는 이야기였단 생각에 머문다.

나를 위로하게 하고,용기를 쥐어보게 하고, 충만해지는 마음을 알게 하여, 그렇게 조금 더 커진 마음으로

이 전부를 머금는 내가 되게 하는.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131p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유명한 유흥준 교수는 말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영화 유튜버 김시선씨 또한 <오늘의 시선>에서 말한다. 더 잘 알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영화를 보고 또 본다고.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역시 마찬가지다. 식물을 알아가는 것에 공을 들인다. 식물수분계가 있음에도 손으로 만져보고 느끼며 하나하나 알아간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오늘의 식물이 다르고 또 다른 날의 식물이 결코 같지 않음을. 사랑하기에 더 많이 알고 싶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한다. 사랑하기에 품이 들고 시간이 들어도 기꺼이 감수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다. 자신이 알아가는 만큼이나 식물들도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음을. 함께 하는 일상 속에 저자는 인생을 깨닫고 자신이 써야 할 글이 어떤 글인지까지 깨달아나간다.

『웅크린 나에게 식물이 말을 걸었다』 는 밑줄 친 곳이 많은 문장으로 번아웃인 내게 힘을 주는 책이였다. 뭐랄까. 또 다시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김질 해 주는 책이라고나 할까? 덕질을 극복하는 방법은 더 많이 덕질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알게 해 주는 책이였다. 그리고 살짝 나도 다시 식물을 키워볼까 하는 욕심이 들지만 감정에 휩쓸려 한 생명을 결정해서는 안 됨을 알기에 살포시 욕심을 접으려고 한다.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는 요즘, 책을 읽고나니 나무의 초록이 더욱 짙어 보이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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