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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 - 잭 더 리퍼에게 희생된 다섯 여자 이야기
핼리 루벤홀드 지음, 오윤성 옮김 / 북트리거 / 2022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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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더 리퍼'란 이름을 검색해본다. '잭 더 리퍼'의 뮤지컬이 컴퓨터 화면을 장식한다. 1887년 다섯 명의 여성을 죽인 살인마 '잭 더 리퍼'의 이야기가 각색되어 배우들이 연기하고 사람들은 환호를 보낸다. 불행한 상황 속에 있던 여성들만 죽인 '잭 더 리퍼'에게 왜 사람들은 환호하는가. 가해자인 그를 왜 사람들은 자꾸 불러내는가.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이 있다. 사건 발생 시 부당한 시선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을 말한다. 하지만 잭 더리퍼드의 연쇄 살인은 철저한 가해중심으로만 남겨진 사건이었다. 잭 더 리퍼의 손에 생을 마감해야 했던 다섯 명의 여성들의 이름은 온 데 간데 없고 오로지 가해자 잭 더 리퍼의 이름만 호명되고 있다. 핼리 루벤홀드의 논픽션 『더 파이브 The Five』 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죽음조차 관심을 받지 못했던 다섯 명의 여성들을 삶을 복원하며 이제는 가해자 잭 더 리퍼가 아닌 다섯 명의 여성의 이름을 호명하고 기억할 것을 요청한다.
폴리, 애니,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왜 사람들은 피해자들의 죽음을 기억하지 못했는가. 그들에게는 모두성노동자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폴리 또한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남편과 헤어지고 가난과 몰락의 길을 걷다 매춘부의 길에 들어섰고 엘리자베스 또한 세상의 편견 때문에 정부의 관리 하에 매독 검사를 받는 성노동자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1887년대의 런던에서의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은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에 어떤 서사도 주어지지 않는 시대, 여성과 성노동자라는 차별이 당연했던 시대, 어느 누구도 그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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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이브』에서 피해자 엘리자베스의 경우 성노동자라는 이유 만으로 매독 전파의 원인이라는 편견을 받아야만 했고 매번 굴욕적인 매독 검사를 받아야만 했다. 물론 엘리자베스는 매독을 앓았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제외된 매독 검사가 여성에게만 강제되고 책임을 오로지 여성들에게만 주어지는지 저자는 그 부당함을 설명한다.
정확한 기준도 없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성매매 담당관이 임의로 '난잡한 삶'을 결정하는 이 당시의 사회에서 억눌린 채 살아야 했다. 그들이 사회에서 받는 차별은 죽음에서도 유효했다.
'잭 더 리퍼는 매춘부를 골라 죽인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당시의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이 강화되었다.
죽음에 대하여 피해자에게 연대하기보다 사건을 부풀려 각색하여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미디어, 사건을 애써 축소 은폐하려는 관리자들 사이에서 다섯 명의 여성 피해자들은 사라져가고 오직 잭 더 리퍼라는 이름만 기억되었다.
'잭 더 리퍼'는 매춘부를 골라 죽인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이러한 선악의 도덕률을 강화하는 데 일조했다.
나아가 이 살인 사건들에 관하여
모든 사람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동의하는
유일한 '사실'로 남아 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의 날을 축하하고 메세지를 내 놓는 이 때, 모 대통령 후보가 유일하게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슬로건을 다시 강조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자, 피해를 줄이고 더 평등한 운동장을 만들고자 신설된 여성가족부의 의미를 폄하하며 잘못된 의미의 평등을 말한다. 나는 그 후보에게 이 서평을 빌어 루스 긴즈버그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법은 사회를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사회의 경험이 법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법이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관계없이
무미건조하게 논리적이라면,
그것은 성공적인 제도로 자리 잡지 못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