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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질량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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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세계다.
사는 게 버거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만이
이 세계에 떨어져 또 꾸역꾸역 살아가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짊어져야 했던 지독한 가난, 결혼 후 남편 정준성에게 갖은 학대를 견디다 못해 한강에 투신한 서진. 서진은 죽은 후 자살한 사람들만이 머무를 수 있는 사후세계로 안내받았다.
이 곳에서 영원한 안식처로 가기 위해서는 목 뒤에 있는 매듭을 풀어야만 한다. 타인과의 긍정적인 스킨십을 통해서만 매듭이 풀리기까지 그들은 또 살아가야만 한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인 줄 알았는데 또 다시 살아야 하는 사후세계에서 서진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 네가 왜 여기 있어, 왜."
서진이 사후세계에서 만난 사람은 서진의 첫사랑 이건웅. 자신을 보며 해맑게 웃는 건웅이 왜 여기 있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건웅은 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그런데 신도 참 무심하다. 첫사랑 건웅을 만난 건 그렇다치고 또 다른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내가 누구때문에 죽었는데. 왜 이 얼굴을 죽어서까지 봐야 하는 거지?
"장준성 그 개새끼가, 왜 여기 있냐고.
왜 여기서 실실 웃으며 아무나 껴안고 다니는 중이냐고.
내 전남편이 왜 여기 있냐고."
서진을 죽음에 내몰게 한 전남편 장준성에 이어 만난 열네 살 소년 선형. 죽기엔 너무 어린 소년의 죽음에 전남편 장준성이 엮여 있음을 알게 된 서진은 이 아이를 위해 장준성과의 결단을 내기로 결심한다.
『우리의 질량』은 서진과 건웅, 그리고 장준성, 세 사람의 이생에서의 삶과 사후 세계가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난의 짐을 지고 다녀야 했던 서진과 부유한 집안의 건웅. 그들 사이에서 서진의 가난을 이용하며 서진을 불행에 이르게 한 준성. 이생에서는 자신의 삶에 허덕이느라 주위를 제대로 보지 못한 서진과 사랑하지만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라 결코 서진을 깊게 이해하지 못했던 건웅이 그려진다면 사후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떠나 온 아무 것도 없는 세계이므로 이생에서는 잘 알지 못했던 것들이 비로소 보인다. 특히 어린 선형을 위해 그리고 서로를 위해 움직이면서 이생에서 상대방이 했던 행동들을 그제서야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평생 타인이 살아야 했던 그 삶의 질량을 몰라.
저 행성에 갈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그래서 자꾸만 내 것이 가장 무겁다고.
가혹하다고.
내 것을 떨쳐내기가 가장 힘들다고.
그렇게 자기 행성에서 혼자 고래고래 소리쳐 왔던 것은 아닐까.
장준성과의 결단을 내기 위해 위험을 무릎쓴 서진과 서진을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
이들은 사후세계에서 가장 큰 용기와 도전을 하며 자신을 희생한다. 이생에서는 삶을 포기했던 그들이 사후세계에서는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며 적극 동참한다. 가장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선택을 한다.
이생에서는 자신의 삶의 질량에 허덕여 타인의 질량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그들이 함께 하면서 서로의 질량을 알게 되고 서로가 서로의 질량을 나눠진다.
사후세계라지만 타인의 짐을 지기까지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만의 질량일 때보다 우리의 질량으로 함께 짊어 질 때 더 이상 외롭지 않다. 함께 하는 우리가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사실을 서진이 죽기 전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강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다면 조금만 더 편해졌으련만. 그럼에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후 세계에서라도 함께 일 수 있으니. 외롭지 않으니까.
사후 세계를 그린 죽은자들의 세계이지만 나는 소설 속에서 강한 생명을 느낀다. 서로의 질량을 알아주자고 함께 나눠 지며 살아가자고 말하는 삶이 그려진다.
살아가자.
서로의 짐을 나눠가며 함께 견뎌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