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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 - 죽음 뒤에도 반드시 살아남는 것들에 관하여
델핀 오르빌뢰르 지음, 김두리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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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살았던 날들』의 저자 델핀 오르빌뢰르는 독특한 이력의 여성 랍비이다.
의학을 전공했지만 저널리스트로 근무했고 후에 랍비가 된 다양한 이력의 소유자인 델핀 오르빌뢰르는 수많은 장례식을 거행하고 유족을 만나며 죽음에 관한 통찰을 이 한 권으로 써내려갔다.
책 초반 저자는 의학도로서 해부실에서 한 여성의 시체를 보게 된다.해부 구조를 배우던 중 저자는 죽은 여성의 손톱에 장밋빛 에나멜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걸 보게 된다. 그 여성의 매니큐어에서 저자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매니큐어를 칠하며 삶을 살아가고 있던 여성을 생각한다. 그 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는 거부되고 해부학만 인정되는 의학의 진실에 저자는 회의감을 느낀다.
묘지는 히브리어로 '베트 아하임' 즉 '살아있는 자들의 집'이라고 한다. 죽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고 끝까지 삶을 택하며 죽음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유대인들의 의지가 인상깊다.
저자가 랍비로서 장례식을 집행하며 유족들을 만나며 겪은 일들 중 시몬 베유와 같은 유명인도 있고 평범한 사람들도 있다. 나치 시절에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할머니의 마지막도 있고 동생 이사악을 잃은 형제 의 이야기도 있다. 어디에 가야 이사악을 찾을 수 있느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을 마주하며 저자는 죽음을 설명하는 단어가 부족함을 애통해한다.
어린 손주의 장례식 참여를 거부한 할머니로 인해 할머니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던 저자. 할머니에게 죽음은 아이들에게 침묵으로 함께 애도를 하지 못하게 했고 저자는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사라의 아이들이 겪는 경험에 공감을 느낀다. 아이들에게 쉬쉬하며 죽음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그 일은 동생 이사악을 잃은 형에게 죽음을 설명하지 않으며 묘지에서 떨어뜨리려는 부모님의 태도와도 연관성을 불러 일으킨다.
한편 프랑스의 보건부 장관이자 낙태 위헌법을 통과시킨 정치인 시몬 베유의 장례식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킨 장례식이었다. 정통적인 유대인 장례식에서 남성들만이 기도 카디시를 낭송할 수 있다는 전통을 깨고 자신의 장례식에 친구인 저자가 함께 카디시를 낭송할 수 있도록 요청한 시몬 베유는 자신의 장례식까지 신념을 이어갔다. 그러한 시몬 베유의 신념은 여성 랍비로 살기 위한 길목에서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시몬은 자신의 무덤가에서까지
우리와 함께 '여성의 신념을 나누'었다.
심지어 삶의 저편에서도 그 일을 이뤄냈다.
남녀가 각각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카디시를,
자신이 참여한 투쟁의 형상을
방불케 하는 그 기도를 묘지에 울려퍼지게 하면서.
『당신이 살았던 날들』은 이해하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다만 히브리어로 '삶'이 '하임'이라는 복수형으로 삶들이 서로 얽혀 있고 그 엉킨 매듭을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미처럼 우리의 삶의 여정이 그 삶의 매듭을 풀어가는 여정이며 죽음 이후에도 그 매듭은 계속해서 풀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